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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름바름 Dec 10. 2021

청운 빌라

-약간은 동화, 조금은 에세이

청운 빌라     


 미야와 미야 언니 희주, 경민이와 강훈이와 강훈이 누나 강미는 나와 함께 청운 빌라에 살았다. 두 동짜리 청운 빌라는 산복도로 꼭대기에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저 멀리 항구가 보여 멋들어진 전망을 자랑했지만, 사는 사람들의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시골 어느 언저리에 살다 일을 찾아서, 도시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젊었던 우리 아빠는 운수회사에 다녔고, 미야네 아빠는 원양어선 선원, 경민이 아빠는 요리사였다. 강훈이네는 아빠 직업은 알 수 없었고 엄마가 일수 아줌마였다. 참 우리 엄마도 아줌마였다. 화장품 아줌마 또는  아모레 아줌마로 불렸다.


  얼굴이 희고 예쁜 미야, 그런데 주근깨가 있어서 정작 자기는 못생겼다고 했다. 나이가 같아서 나와 미야는 학교든 가게든 어디든 꼭 붙어 다녔다. 경민이도 또래였다. 좀 통통했다. 별명은 돼지, 경민이 엄마는 하필 경민이에게 분홍색 옷만 입혔다. 그래서 꽃돼지라고도 불렸다. 청일점 강훈은 괄괄한 누나와 엄마 때문인 지, 비쩍 마른 데다 작았고 코피를 자주 흘리는 동갑이었다. 희주 언니는 미야의 연년생 언니다. 세 살 많은 울 집 친언니보다 더 언니 같았다. 조숙한 외모에 늘 청치마만 입고 다녔다. 강미는 나에게 분명 언니였지만 한 번도 언니라 부르지 않았다. 그냥 ‘깡미’였다. 깡미는 종종 일수 돈을 받으러 우리 집에 심부름을 왔다. 오늘은 꼭 일수 도장 세 개를 받아오라고 했다며 우리 집 대문 앞에서 버티는 깡미가 나는 미웠다.     


  비가 오는 날 우리는, 빌라 1층 복도에서 놀았다. 우산 두세 개를 텐트처럼 겹쳐 펴곤 소꿉을 가져다 놀았다. 강훈은 종종 딱지치기나 구슬치기를 하고 싶어 했지만, 뾰로통한 여자애들은 강훈에게 맨날 아빠만 하라고 했다. 깨진 장독을 분필 삼아 땅따먹기며 하늘땅을 그려댔고, 빌라 계단에서 가위 바위 보를 해 ‘오르기 내리기’도 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얼음땡’을 할 때면 밖에서 잘 놀지 않던 손 위 친언니까지 나와 놀았다. 밀고, 잡고, 웃고, 떠들다 보면 밉던 깡미도 덜 밉고, 뚱뚱한 경민이도 날렵하기만 하고, 미야는 항상 내편이고, 약해빠진 강훈도 슈퍼맨이 됐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겨울, 나는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도 왔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한 번도 성탄 선물을 받아본 적은 없었지만, 그 해 겨울에 나는 알고 있었다. 몇몇 친구들은 나 몰래 산타 할아버지에게 예쁜 마로니 인형이나 포근한 곰 인형을 선물로 받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종이 달력 찢은 것을 돌돌 말아 트리를 꾸몄다. 어디서 났는지는 모르지만 오색 전구 비슷한 것도 달았다. 내 양말 중에 가장 큰 양말을 머리맡에 걸어두고 순진한 꿈을 밤새 꿨다.     


 다음 날 아침 빌라 입구에 경찰차가 섰다. 반장 아저씨며 동네 어른 몇이 불안하게 서성였고, 가겟집 할머니는 궁금해하는 아이들을 저리 가라며 쫓았다. 경민이 아빠가 밤새 목을 맸다고 했다. 경민이네에 가면 자주색 공단 천으로 덮인 무슨 무슨 조리사 자격증과 황금색 메달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우리 아빠는 호텔 요리도 할 수 있다며 경민이가 그렇게 자랑하던 아빠였는데... 말수가 적다 싶었던 것이, 알고 보니 마음에 큰 병이 있었단다.      


청운 빌라 아이들, 미야와 미야 언니 희주, 경민이와 강훈이,

강훈이 누나 강미, 그리고 나. 무수한 시간을 넘어 성탄절을 앞둔 이 겨울, 덜 슬프게 살고 있을까?산타가 없단걸 뻔히 알면서 기적 비슷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순진한 꿈을 남몰래 꾸고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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