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트레드밀에 올랐습니다. 가벼운 워밍업으로 5분간 걸으며 몸의 긴장을 풀었습니다. 익숙한 벨트가 조용히 움직이는 가운데, 달리기 초보에게 맞는 속도로 조금씩 높였습니다. 1.5km쯤 지나자 숨이 가빠왔지만, 이내 호흡이 안정되면서 달리기의 기분 좋은 리듬을 찾았습니다.
이마를 타고 땀이 흘러내릴 때, 더 힘차게 달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참았습니다. 내일과 모레를 위해 오늘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선택임을 압니다. 건강한 체력은 속도도 거리도 아주 조금씩, 나만의 리듬에 맞추어 나아갈 때 길러집니다. 꾸준함이 순간의 질주보다 훨씬 가치 있는 힘이 되니까요.
트레드밀 위에서 호흡을 조절하다 보니, 문득 아이의 고단한 하루가 떠올랐습니다. 개학 첫날, 첫째 아이는 하교하자마자 인사를 대충하고 방으로 향했습니다. 평소와 달라 방문을 열어보니, 가방을 멘 채 침대 위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습니다.
사춘기에는 잠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이의 고단한 모습은 일 년간 지속되었고, 중학교 시절 제 기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아무리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잠이 늘 부족했던 그때, 담임 선생님은 저에게 잠을 정말 많이 잔다며 웃으시곤 했지요. 하지만 저는 괴로웠습니다.
아이 역시 성장의 과정 중에 학기 시작의 긴장감, 호르몬 변화, 복잡한 교우 관계 안에서 자연스러운 욕구조차 마음대로 다루지 못하는 시기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저 피곤해서 자는 잠이 아니라, 갑작스레 자란 몸과 마음을 따라잡기 위한 자연스러운 성장통일지도 모릅니다.
아이의 겉모습이 잠시 헛되게 보일지라도, 그 시간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아이 스스로 알 수 있도록 부모는 자책하지 않게 도와야 합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역할은 아이의 일정을 살펴주고, 따뜻한 밥을 챙겨주고, 무엇보다 묵묵한 이해와 격려를 보내는 것입니다.
벌써 한 해의 마지막 달력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찬 공기의 무게가 더해졌다 가벼워지는 시기가 오면, 아이는 중학교 3학년이 됩니다. 같은 학년이라 해도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달릴 수는 없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기 위한 남은 1년의 시간은 여전히 단거리 달리기가 아닙니다. 억지로 속도를 높이기보다, 아이의 '신체와 공부 체력'을 생각하며 속도를 조절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 체력이란 단순히 오래 앉아 있는 힘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지식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좌절 속에서도 회복 탄력성을 발휘하며, 스스로 공부의 의미를 찾아가는 내면의 근육입니다. 아이 스스로 자기 호흡에 맞는 방법을 찾고 몰입하도록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삶이라는 경주에서 아이는 언젠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발걸음을 멈추고 싶어지는 순간을 맞이할 것입니다.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친구 관계에서 갈등을 겪고, 때로는 자신의 꿈이 희미해지는 것 같은 순간들 말이지요. 그럴 때 부모는 다그치기보다, 아이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도록 쉬게 해주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곁에서 건네야 합니다.
부모의 역할은 마치 트레드밀 위에서 묵묵히 옆을 지키는 것과도 같습니다. 남들과 비교하며 속도를 높이거나, 무작정 앞서가라고 등을 떠미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내 아이만의 속도를 존중하며 옆에서 함께 걸어주고, 하루에 한 걸음이라도 어제보다 나아질 수 있도록 묵묵히 동행하면 됩니다. 그것이야말로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든든한 힘입니다.
결국, 천천히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튼튼한 체력을 만들고, 그 체력이 미래를 향한 완주를 가능하게 합니다. 학기 마무리 시점에 흔들릴 일들이 생길지라도 부모는 등 뒤를 지켜주는 존재로서 아이가 자신의 길을 잃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도록 돕는 사람임을 잊지 않습니다. 트레드밀 위에서 조절한 한 걸음의 리듬이, 오늘도 아이 곁에서 함께 숨 쉬겠다는 부모의 든든한 다짐이 됩니다.
표지 이미지 : Gemini Generated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