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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이작가 Feb 14. 2020

달을 보며, 7살 아들이 엄마의 행복을 빌어주었다.

흔들리지 않게, 두 주먹을 꽉 쥐고.

하루 종일 몸이 좋지 않았다.

차가운 물 마저 몸에 닿는 것이 끔찍한 그런 날이었다.

여태 멀쩡했던 사랑니도 욱신욱신, 존재감을 알리는 날이기도 했다. 원래 모든 근심은 여러 개가 켜켜이 쌓이기 마련이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쯤 되는 알약 2개를 꿀꺽 삼켰다.

무언가 넘기는 것조차 귀찮았지만, 버티기 위해.


그리곤 약기운에 쓰러져 잠에 취했다.

아들은 내가 없는 세상에 취했고. 그렇게 이방 저 방을, 이것 저것을 기웃거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밖은 깜깜했다.

빨래와 간단한 집 정리, 아들의 밥 한 끼를 겨우 챙긴 후 내 시간은 훌쩍 밤까지 멀리 뛰기를 했다.


우리 아들, 배고플 텐데...

정신이 번쩍. 아들은 배고프다는 말을 호떡이 먹고 싶다는 말로 대신했다. 배가 아무리 고파도 밥 달라는 말은 하지 않는 입맛이다.


잠시 고민하다, 후딱 밥을 해먹이기로 했다. 밥을 먹으면 호떡이 먹고 싶단 말은 하지 않게 되겠지..


아기새처럼 주는 밥에 입은 또 크게 벌린다.

금세 한 그릇을 뚝딱. 그럼에도 호떡은 먹고 싶단다. 호빵 동생 호떠어어억~~귀여운 녀석.


그래 해주자!

대신 마트엔 홀로 다녀오고 싶었다.

모든 걸리적거리는 것쯤 훌훌 털어내고 잠깐 자유롭고 싶었다. 시원한 밤공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혼자 보내줄 아들이 아니었다. '엄마 나도 밤공기 먹는 거 좋아해.' 크크..항복이다.


주섬주섬 빠른 스피드로 옷을 챙겨 입고.

호떡믹스에 대한 기대감만 챙긴 채 문을 나서자마자 훅, 느껴지는 찬 공기. 이제 좀 살 것 같은 청명함. 장식처럼 예쁘게 떠올라 준  눈 앞의 둥근달까지.


아들은 보름달이 뜨면 무조건 소원을 빌어야 하는 줄 안다.


아들: 하느님, 아니 달님. 엄마랑 저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해 주세요.

엄마: 그게 아들 소원이야?

아들: 응. 내 소원은 그것뿐이야.


그리곤 다다다 뛰어가며 네모 밟기를 하는 내 소중한 보름달.

장난감도, 군것질도 아니고. 엄마와 자신의 행복을 빌다니.. 그건 늘 내가 빌던 소원이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둘이서 꼭 행복하기를. 불행할 것 같은 내 미래와 내 아이의 미래에 간절함을 더해. 제발 그리 해달라고 했던 소원이었다. 그랬던 소원을 내 아이가 빌어주다니, 벌써 그 소원은 이루어졌다. 참 빈틈없이 행복하다.  모두 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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