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30분 깊이 자고 있다가 갑자기 한 단어가 머리에 떠오르면서 번쩍 눈이 떠졌다. 좀 뜬금없긴 하지만
어떤 단어가 불현듯 머리에 스치면서 어떤 영감이 떠올랐던 것. 이걸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가장 밑에 있는 기억들
내가 꾸었던 최초의 악몽은 철을 생산하는 용광로였다. 이것은 나의 가장 아래층에 있는 지하실 같은 기억이다. 용광로는 용광로인데 그 깊고 어두운 구멍을 들여다보면 말할 수 없는 공포와 허무가 느껴졌었다. 그 이후로 나는 그 비슷한 것만 봐도 왠지 모를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의 직장은 제철소였다. 어린 시절 철물이 콸콸 쏟아지는 용광로 사진을 자주 본 적이 있다. 공장 견학도 그 동네 사는 아이들에게는 단골 견학 코스였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는 제철소로 견학을 가는 일정을 당연히 잡았고 나도 가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병이 났다. 아프다는 이유로 다른 아이들이 다 가는 견학을 가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꿈 이후로 용광로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는 최신식 컴퓨터를 보유하던 학교로 전산실을 자랑스러워했지만 1학년 때 나는 컴퓨터실에서 길을 헤매다가 실수하고 말았다. 나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표현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대는 80년대였고 우리가 살던 그곳의 문화는 '산업적'인 것이었다. 모든 목표는 경제적인 것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가끔 근처 공대에 부속된 서점에 가서 책을 봤다. 그 지역 사람들의 목표는 내 아이가 커서 이런 공대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창립자의 동상을 무심히 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시선에는 사실 이렇다 할 친밀감 같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수직 상승은 무서웠다
좀 더 커서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 중 하나는 '엘리베이터'였다. 나는 항상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갑자기 멈추거나 떨어지면 어떡하지 이렇게 생각했다. 밤에는 엘리베이터가 끝도 없이 올라가서 층수도 없는 곳에 멈추거나 흔들리는 꿈을 꾸거나 놀이동산의 놀이기구처럼 공중으로 날아가는 이상한 꿈을 꾸기도 했다. 나는 맞선 도시에 만난 기계장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무서워했던 이유 중에는 9살 이전까지는 우리가 주택에 살았기 때문이다.
9살에 처음으로 서울로 집을 옮기고 고층아파트에 살게 된 나는 사람들이 꽉 찬 비좁은 엘리베이터가 부담스러웠다. 주택에 살던 시절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높은 곳이 좋다는데 나는 아니었다.
마음의 무늬
적어도 9살의 눈높이엔 그렇다. 막상 내가 딸을 키워보니 9살이란 정말 별것 아닌 나이다. 세상에 태어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것저것 할 것 없이 겁나는 것 투성이인 그런 나이인 것. 나는 9살에 새로운 학교에 가면 낯선 친구들과 선생님이 앉아있다. 모르는 환경에서 새로운 것을 배워야 했다. 익숙하지 않은 맛의 급식을 꾸역꾸역 먹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왜 학교를 다니는 거지. 혼자 이런 질문에 답하면서 밥을 먹다 보면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흘렀다. 나는 그때 나는 새로운 것에 탐구하고 실지 않았다. 내일 책가방 쌀 생각을 하다 보면 학교에 안 가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엘리베이터 괴담을 넘어
왜 엘리베이터가 무서운지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엘리베이터에 대해 알 수도 있었을까. 엘리베이터가 단지 비좁은 공간에 사람이 구겨타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 가능한 범위에서의 생활의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우물에 두레박을 내리듯 도르래를 이용해 올리고 내리는 것이라는 것을. 엘리베이터는 진작부터 안전 브레이크라는 장치가 만들어져서 자유낙하라는 것을 안 한다는 것을. 엘리베이터라는 게 공중에 매달린 박스(카)라서 거기서 뛰면 박스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문을 세게 두드려서 고장 나면 박스에서 나올 수가 없다'라며 원리를 설명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터무니없는 두려움도 좀 적어졌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무리하고 닫힘 버튼을 누르는 것도 사실 닫히는 시간이 자동 설정되어있다는 걸 깨닫고 좀 덜 누를 수도 있을 텐데. 박스에서 나가고 들어가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날마다 구름 한 점. A Cloud A day
10대에는 수학도 과학도 삶의 의미라는 것을 몰랐다. 공부가 생각하는 것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저 많이 배우고 빨리 익혀서 남들보다 빨리 좋은 자리에 가서 살면 다행인 줄 알았다. 그런데 40이 되어보니 그 시절 나보다도 훨씬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도 어디선가 평범하게 산다. 그 친구들이 아직도 공부를 재밌어하는지 모르겠다. 다들 어딘가 어른으로 살아가겠지. 그 자체만으로도 위안인데 싸이월드로 돌아가 그때 얼굴을 보니. 성적이 아니라 그냥 그 시간에 함께 놀았다는 것만 남았다. 나도 그들이나 다를 것이 없다. 조금 낮은 층이냐 높은 층이냐 그 차이일 뿐 우리 모두는 모두 규격이 정해진 아파트에 사는 사람일 뿐.
어제는 자다가 깨니 평소에는 못 보던 달이 창밖으로 환하게 보였다. 달은 포물선을 그리며 낮은 곳에서 공중을 향해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 저쪽이 동쪽이었던가 서쪽이었던가. 앗 생각해보니 지금이 보름이구나. 보름이라서 저렇게 꽉 찬 달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구나.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매일 커튼을 치고 쿨쿨 잠만 잤는데 달 빛 만으로도 저렇게 환할 수가 있구나.
달은 엘리베이터 없이도 저렇게 환하게 오르는데. 공중에 떠서 저렇게 우아하게 7층 높이의 눈높이 맞출 줄이야. 그렇게 가까이서 환하게 피어오를 줄은 몰랐다. 늘 하늘 어디선가 보이지도 않는 높이에 멀리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작년에는 우연찮게 베란다에서 쌍무지개 사진을 찍기도 했었지.
최근에는 산 구름 사진만을 전문으로 모아 책을 낸 개빈 프래터 퍼니의 <날마다 구름 한 점>을 본다.
이 몽환적인 책을 보다 보면 우리가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가 하늘에서 펼쳐지는 기상 쇼를 바라보는 것보다 더 훌륭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른 다는 것이 늘 수직일 수는 없는 법. 무지개도 하늘에서 보면 달라지는 데.
사람들은
늘 그 모습을 알고 있을까
그 높은 구름도 하늘에서 보면
저렇게 달라 보이는데 시각을 바꿔서 한번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보노보노가 높은 나무에 처음 올라 했던 말처럼 말이다.
"나는 늘 땅 높이에서만 살았는데 말이죠. 새나 지렁이가 보는 높이에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