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코비드의 실존주의
-살아남는 건 바이러스인가 사람인가-
8월은 대단했다.
마치 지금까지 3년이나 모아놨던 폭죽들이 한꺼번에 터지는 것 같았다.
3년간을 피해 다녔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오는 순간. 나는 이 병의 실체를 알아버렸다.
그건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후기도 아니고 언론 매체에서 들려온 메시지도 아니며
내가 지금껏 생각해온 병의 그림도 아니었다. 그건 그냥 비교가 불가능한 독보적이고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와 전쟁이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겪었듯 바이러스는 매우 통상적인 방식으로 다가왔다. 7월 말에 친정가족 중에
한 명이 걸리고 부모님이 걸리고 그리고 그 부모님을 만난 우리 집으로 건너왔다. 우리 가족 중에 면역이
가장 약한 큰 아이를 통해 제일 먼저 유입된 바이러스는 둘째 아이를 거쳐 나와 남편에게로 건너왔고 우리는
한 명 씩 차례로 드러누웠다. 우리 모두는 이 익숙한 드라마를 이미 몇십 번이나 간접 경험했지만 네 명이
다 아플 것이라고 믿고 싶진 않았다. 그게 사람이니까. 하지만 실체 없는 믿음이 항상 우리를 배반하듯 결과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우리는 그렇게 모두가 격리되어 2주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나가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너무 아파서 나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처음에 걸린 아이들이 조금 나아지자 남편과 나는 동시에 침대에 누워서 허우적거렸다. 열 때문에 땀을 질질 흘리면서 자다 보면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듯 이마를 만져보는 게 고작이었다. 대화를 하거나 웃거나 말을 할 기운도 없었다. 그저 네 사람은 밥을 모여서 먹고 각자 흩어져 집 여기저기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잔소리를 할 기운조차도 없었지만 그래도 3끼는 먹고 치워야 하니 부엌에 서서 일을 했다. 일을 하는 것이 피곤했지만 그래도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프다고 호소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심지어 그럴 사람도 없으니 울면서 어쨌든 밥 세끼를 차리고 숟가락을 입에 쑤셔 넣으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뉴스에서는 계속 응급실이 더 이상 받아주는 곳이 없다고 나왔다. 아이들은 퀭한 눈을 한 채 기침만 하는 부모를 보다가 이내 저희들끼리 방에 들어가서 놀았다. 그래도 치울 수 있을 만큼은 치우고 외부에서 음식을 사다가 저장하고 옷을 빨고 화장실을 닦고 이불을 정리했다. 그리고 남는 시간은 잤다. 그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책도 영화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전까지 겨울철에 감기를 많이 걸리는 나의 경험 덕분에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온갖 바이러스라는 바이러스는 다 겪어본 2명의 아이들 덕분에 웬만한 바이러스와의 만남은 경험치를 다 갖고 있었다. 목이 찢어지는 듯한 인후염 무섭게 열이 나는 편도염. 기침이 끊이질 않는 기관지염. 콧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부비동염. 폐렴. 그리고 여름철 장염. 수족구. 독감. 아데노바이러스. 항상 있는 알레르기. 그리고 비염. 자가면역질환..
아이를 키우면서 겪었던 질병의 이름만도 이렇게 많은데. 솔직히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 모든 바이러스와
유사성을 갖고 있지만 똑같지는 않았다. 목이 아픈 것도 사실이고 기침이나 가래 콧물 전신증상도 다 있는데
어느 한 곳만 몰아서 특별하게 통증을 주진 않았다. 인후염은 보통 목이 찢어질 듯이 아프지만 났고 나면 그 부분에 대한 해소만 있는데, 코로나는 전신에 대해 전체적인 징후가 굉장히 강하고 길었다. 단지 며칠 좋아진다 싶으면 여지없이 그다음 날 다시 아팠고 한 군데가 아니라 단계별로 여기저기 모든 곳을 공격하는 느낌이었다. 특히 지금도 힘든 것은 이 병이 집중력 감퇴와 어지러움 피로감을 지속적으로 준다는 사실이다. 우울감이나 멍한 느낌 머릿속에 안개가 있는듯한 느낌도 그중 하나였다. 미열이나 기침 끊임없이 올라오는 잔기침도 참기 힘들다. 반면 아이들은 열이 심했지만 회복력이 빨라서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하지만 활동력이 좋은 아이들은 그만큼 옮기도 잘 옮아온다.
유튜브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보니. 어차피 나 같은 재택 치료자들은 롱 코비드의 범주에 속하지도 못하고, 집에서 물을 많이 마시고 몸 관리를 잘하라거나, 약국에서 단일제제로 된 기관지 약을 사 먹으라는 내용이 나왔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시간낭비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대부분의 후유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물 마시는 법을 몰라서, 약국에서 기침약을 살 줄 몰라서 의학전문기자나 전문가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좋아지는 건데 왜 병원을 다니냐며 흥분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방송을 듣다가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어서 꺼버렸다.
양성 판정을 받은 후 내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은 보통 감기약 수준이거나 혹은 그보다도 더 적은 약의 수준에 불과했다. 아이들도 해열제와 항생제 두 가지가 다였다. 심지어 의사들도 확진 다음날은 감기 환자 치료하듯 대면 진료를 했다. 하지만 의문스러운 건 내가 겪은 질병의 정확한 실체를 그 누구도 잘 모른다는 것.
초기 2년 동안 그렇게 난리를 쳤던 이 질병이. 마치 가까이만 가도 소독제를 뿌리면서 구급차가 달려와서 격리시켰던 이 병이. 감기처렴 다뤄지고. 감기약을 먹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변이에 따라 2019년 보다 병이 약해진 건가? 그것도 알 수 없었다. 치료제도 없고 백신도 의미가 없고 다 나은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선별 진료소가 사라진 요즈음. 걸린 사람들은 많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없다. 그러면서 일상생활을 하고 다시 재감염된다. 그것이 바이러스의 가장 큰 전략임을 나는 결국 알게 되었다. 만약 코로나가 치사율이 높은 콜레라나 급성 페스트 같이 센 강도로 왔다면 사람들은 더 심한 공포심을 가졌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몰랐던 이 질병이 치사율이 떨어질수록 사람들의 경각심은 떨어졌지만 전파력은 강해졌고 차단시키기도 어려워졌다. 바이러스는 일종의 유화정책을 쓰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래 남는 쪽을 택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집단면역이 생겼다거나 바이러스에 대한 대항력이 높아졌다는 것도 아니다. 8일이 지나면 정확하게 바이러스가 내 몸에서 사라지는가? 바이러스는 잠을 안 재우거나 사흘 내내 설사를 하게 하지도 않았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몸안에 머무는 전략을 취하고, 그걸 아는 건 과학전문기자가 아니라 환자 본인들이다. 격리기간 혹은 격리가 끝이 나도 병원을 가고 쓰레기를 버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면서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만날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타는 병원 엘리베이터에 소아과 환자들이 같이 탄다는 것이 가장 싫었다.
알베르 카뮈가 페스트의 마지막에서 언급했듯. 어느 집의 옷장이나 옷가방 같은 곳에서도 바이러스는 살아있다가 나오는 존재라는 걸. 조건이 맞으면 언제든 다시 쉽게 점령하는 점령군이라는 걸. 이 병을 옮기는 가장 확실한 동력이 더 이상 집에 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나가는 끓어오르는 한 여름의 욕망이라는 걸.
아는 건가. 모르는 척하면서 사는 건가. 나에게 다시 묻는다. 문득 실존주의가 궁금해졌다.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선택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