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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음 Aug 28. 2024

식칼 내리고 빵칼 들어, 토스트

깝죽이가 합죽이 된 이유


운전 미숙이 위험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종대를 꺾는 각도와 페달을 밟는 정도에 대한 데이터가 적다는 거다. 기술을 체득하고 익히기까지 경험을 쌓아야 하는 건 두말하면 입 아프다. 요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식기를 핸들 잡듯 손에 꼭 쥐고 식자재를 조준해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듯 적당한 힘으로 제어해야 한다. 운전과 요리 모두 늘 하는 반복적인 행위지만 위험한 도구를 다룬다는 점에서 백번 주의해도 모자라다. 몸에 익더라도 과신은 절대 금물이다. 특히 주방에서는 불까지 다루니 화재 위험까지 고려하면 고든 램지 같은 유명 셰프가 독설을 쏟아내는 것도 일말의 이해가 간다(그는 맛평가가 가혹한 편이지만 아무튼.) 레시피 일기 쓰다가 웬 안전 운전 들먹이며 허튼소리 하나 싶겠지만 사실 내 얘기다. 난 최근 토스트 만들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피 봤다. 무척 아팠고, 회복은 현재진행형이다.


사건 발생 경위는 다음과 같다. 때는 지난주 오후. 냉장고 파먹기를 하던 나는 문득 냉동실 구석에서 숨죽이고 있던 슬라이스 햄을 떠올렸다. 잘 걸렸다 요놈. 그날의 메뉴는 바질 페스토 바른 토스트. 노릇노릇 구운 식빵에 햄과 계란을 넣어 야무지게 한 끼 먹을 요량이었다. 나는 너무 배고픈 나머지 해동을 생략하고 요리를 시작했다. 문제의 단초였다. "꽝꽝 언 식재료는 되도록 해동해서 사용하세요~"라고 백날 떠들어도 모른다. 얼마나 딱딱한지 본인이 체감해 봐야 안다. 흉기가 따로 없었던 햄 덩어리를 무식하게 식칼로 분절하던 중 힘조절과 방향성 둘 다 잃은 칼질로 그만 손끝을 동강 썰고 말았다. (자세한 묘사는 생략하겠다.) 평소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겨도 웬만하면 후시딘과 반창고로 해결해 왔지만 이번에는 아픔의 정도가 달랐다. 바닥에 뚝뚝 떨어진 피를 닦고 지혈하며 고민했다. 이걸 병원 가, 말어.


평생 살면서 식칼을 다뤄본 경험이 올해만큼 없는 나는 요리하다 다친 적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순간 판단을 망설였던 것 같다. 근데 멍청한 고민은 길게 하면 안 된다. 직감 무시 못 한다. 쏜살같이 동네 병원을 향했지만 꿰매야 한단다. 여기서 처리할 수 없으니 더 큰 인근 병원을 어서 가 보란다. 가자마자 응급실로 안내받아 침착하게 병실에 누웠는데 그제야 조금 무섭더라. 1인 자취생이 보호자 없이 움직일 땐 서러움이 곱절이다. 요즘처럼 의료대란으로 응급실 뺑뺑이 얘기가 나오는 가운데, 정말 크게 다친 이가 있었다면 손가락을 붙들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아프면 안 되는, 수상하고 무서운 시절이다. 나는 운 좋게 빠른 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께 "선생님, 저 손가락으로 밥 벌어먹는데 제발 잘 부탁드려요ㅜ"라고 말하며 덜덜 떨었다. "아-악!" 마취를 위해 왕주사를 맞을 때는 눈물이 찔끔 났다.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엉덩이 주사까지 한 대 맞으며 간호사님께 "제발 안 아프게 놔주세요ㅜ"라며 추잡을 떨었다. 바늘이 무서운 삼십대다. 약을 지어 병원을 나서는 길에 화창했던 날씨가 순식간에 흐려지며 하늘에서 수도꼭지를 튼 듯 비가 콸콸 쏟아졌다. 가지가지하는 날이네 진짜. 집에 도착한 뒤 사건 현장의 토스트를 버리지 않고 이어서 만들어 먹은 나 역시 소름 돋는 부분. 물론 게시글의 메인 사진은 다른 날 요리다.



슬프고 아팠던 그날 하루. 집 가는 길이 어느 때보다 짠내 났다.



토스트 얘기로 운 띄워 다친썰 얘기만 주구장창한 나의 글을 여기까지 읽어준 이에게 감사하다. 내 브런치 북은 이제 막 요리를 시작한, 그리고 요리에 재미 붙이기 시작한 이들에게 자신감과 즐거움을 공유하는 데 목적을 두는데 이번만큼은 부주의한 행실로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여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나는 흥이 과다했던 것 같다. 빵보다 밥, 밀가루보다 쌀을 외치던 내게 왜 이런 시련이.. 자초한 일이다. 그래서 당분간 식칼 사용을 줄이고 빵칼만 쓰기로 했다. 요리 포트폴리오에 비해 화려하게 갖춘 장비 덕을 좀 봤다.


토스트 제작 얘기를 짧게 하겠다. 대중적인 음식인 만큼 작업 준비 별로 어렵지 않다. 식빵 사이에 끼워 넣을 무언가만 기호대로 마련하면 된다. 나는 앞서 언급했던 슬라이스햄과 계란을 주재료로, 잔반인 당근 절임을 활용했다. 식빵 한 편에는 바질페스토를 듬뿍 발라 완성했다. 내 메뉴는 짠맛에 가까웠다. 조화로운 단짠단짠을 원한다면 달콤한 음료를 곁들여 보시길. 참고로 나는 밀크티를 같이 마셨다. 속도 없이 맛 좋다.



한 피스는 만들며 날름 먹어버렸다.  


요리하며 깨달은 게 있다면 파슬리 가루는 아무 데나 뿌려도 있어빌리티한 미감을 선사한다는 거다. 마치 내가 요리왕 된 거 같은 뿌듯함을 안겨 준다. 아차차, 안전 요리. 이 글의 매듭을 지하철 탈 때 종종 보는 입간판 문구로 마무리 짓는다. '조금 늦더라도... 제대로 고치겠습니다.'




주재료

식빵, 슬라이스햄, 계란, 바질페스토

보조

당근 슬라이스, 방울토마토

Point

• 칼조심

• 단짠단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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