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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음 Aug 21. 2024

감초는 파프리카, 두부유부초밥

내가 만들고 반한 맛


자취 요리 도전을 선언한 지 약 한 달 차, 식습관에 큰 변화가 생겼다. 우선 뱃고동이 울리면 자연스럽게 배달 앱에 접속하던 알고리즘을 끊어냈다. 대신 뭘 해먹을지 포털에 검색한다. 이젠 어느 정도 기본 재료는 구비하고 있기 때문에 재료 준비에 처음보다 품이 덜 든다. 또 한 달 식비가 놀라울 정도로 줄었다. 직장 생활하며 주 3회 이상 점심을 사 먹었으니 엥겔지수가 비명을 지를 만한 수준이었다. 가끔 시켜 먹는 순살 치킨은 내 통장 잔액까지 순살로 만들었다. 가계부 대수술이 불가피했다.


본격 요리 시작 후 지난 한 달간 배달을 포함한 외식 횟수는 총 8회다. 적다고 보기 어렵지만 하루 2~3끼, 최소 월 60끼 이상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름 선방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장 보는 날을 주 1회로 정하는 등 나만의 요리 규칙을 세우는 중이다. 예상보다 식재료 구입에 과소비하는 경우가 많고, 신선식품의 경우 제때 소비하지 않으면 폐기하게 되는데 이러한 변수를 줄이면서 주간 소비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사실 가끔 '이 정도면 사 먹는 게 더 저렴하지 않을까..?' 하며 꽤가 날 때도 있었다. 요새 물가가 너무 올라서 해 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게 경제적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하지만 한 손을 가슴에 얹어 보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 진실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물론 시간당 페이를 엄청나게 받는 프리랜서나 애초에 식비 절감의 필요성에 무감각할 정도의 부자라면 이런 짠내 나는 고민할 필요 없다. 그저 요리를 취미로 즐기면 되니까. 내 경우는 요리의 목적이 분명하다. 식비 절감과 건강 관리, 그리고 약간의 자기 효능감 상승(내게도 요리 부문의 기능이 있다 정도)..?


이제 초석을 잘 다졌으니 나만의 요리 경험치를 쌓아 올리면 된다. 그 여정을 가끔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는데 지난 참치 김밥 글이 메인 포털에 노출되며 일일 조회수 1만 이상을 기록했다. 이제껏 내가 브런치에 써온 글 가운데 누적 조회수가 가장 높다. 요리 초짜인 내가 음식 만들며 하는 이런저런 생각을 썰풀듯 적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져줘서 신기할 뿐이다. 사실 스스로에게 놀랍고 대견하다. 내가 요리를 한다고? 심지어 요리 소재로 글을 쓴다고? 나는 앞으로 내 미래를 단언하지 않기로 했다.



파프리카의 아삭함과 부드러운 두부의 식감이 조화로운 두부유부초밥. 당근 라페를 곁들이면 환상이다.



김밥의 늪에서 헤어 나온 후(지난 글 참고) 새롭게 도전한 음식은 바로 유부초밥이다. 근데 밥 넣은 평범한 유부초밥 말고 두부유부초밥. 근데 파프리카까지 추가한 컨디션으로. 이미 누군가 개발해 널리 알린 레시피다. 결론부터 말하면 진짜 맛있다. 친한 사람들 불러놓고 입에 하나씩 넣어주고 싶을 정도다. 한때 다이어트하면서 두부유부초밥을 주문해 먹은 적 있는데 사 먹는 것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해서일까, 내 손맛에 취한 덕일까. 입맛에 맞춰 만드니 당연히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의 묘미는 내가 원하는 간에 맞춰 만들 수 있다는 거다. 게다가 이 메뉴는 시판 유부에 배어 있는 소스만으로도 이미 맛이 훌륭하기 때문에 나 같은 초짜도 상타치에 근접한 결과물을 낼 수 있다. 보장된 맛이란 의미다.


두부유부초밥의 핵심은 역시 두부다. 김밥에서 밥이 중요하듯, 두부 손질만 잘해도 반은 완성이다. 두부를 면 보자기(이하 면포)에 넣고 영혼까지 쥐어짜 물기를 제거해 줘야 한다. 물기 대충 빼면 나중에 형태 잡을 때 흐물거리는 데다 맛도 반감된다. 매번 느끼지만 요리도 앞단을 착실히 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자취생에게 면포는 기본값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 가격이지만 굳이 이 요리 하나 때문에 구비해야 하나, 다른 방법 없나 싶었다. 처음엔 비닐 끝에 구멍을 뚫어보면 흉내는 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시도해 보진 않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로 빙의해 비닐에 두부를 넣고 물기를 즙짜듯 짜다가 비닐이 터져 두부가 바닥에 엉망으로 흩어지는 경우의 수를 봤다. 맞다 나는 불안계획형이다. 이럴 바에 면포 써서 안심요리 하는 게 낫다. 뭐든 장비빨이다. 면포까지 구매해도 한 번 배달시키는 것보다 저렴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점도 구매 요인이었다. 여러 번 활용하면 본전 뽑는 거지 뭐!


또 하나의 주재료는 파프리카다. 두부만 넣었을 때보다 비주얼부터 식감까지 비견할 수 없는 수준으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부드럽고 연한 두부맛에 아삭하고 새콤한 파프리카의 조합은 그야말로 환상. 파프리카의 다채로운 색상은 근사한 식탁의 방점을 찍어준다. 음식은 눈으로 먼저 맛본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파프리카 손질은 좀 귀찮지만 방법은 간단하고(마구잡이로 다지기) 남은 재료를 볶음밥이나 주먹밥 등 다양한 요리에 활용하기 좋아서 눈감을 만한 수준이다.


시판 유부가 멱살 잡고 끌어올린 맛에 극한의 완결성을 더해줄 사이드 메뉴가 있다. 바로 당근 라페다. 나는 홀그레인 머스터드가 없어서 생략하고 레몬즙과 꿀, 소금, 올리브유만 넣었는데 그냥 채 써서 절인 당근 수준이다. 이마저도 손질된 당근을 활용했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말해줬다. 감자칼이 없다면 나대지 말라고. 내 브런치북 이름에 '날로 먹는'이 들어가는 이유가 있다. 인생도 팍팍한데 요리라도 날로 먹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작명이다. 처음부터 잘하려고 하면 시작조차 어렵다. 요리에 애정 붙이는 중인 초심자라면 지름길도 찾아보시길!




주재료

유부, 두부, 파프리카

보조

깨, 파슬리가루, 참기름, 소금

Point

• 두부 물기를 싹 다 제거한다(요리용 면포 활용).

• 당근 라페를 곁들여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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