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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음 Aug 13. 2024

엄마가 두 줄 순삭한 맛, 참치 김밥

국도 네가 만들었냐?


요즘 내 주식은 김밥이다. 딱히 원해서라기보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연어 김밥을 만들어 먹은 지 약 2주가 지났는데 여전히 김밥의 굴레 속에 있다. 물론 틈틈이 이런저런 메뉴를 만들어 먹긴 했다만 이제 좀 물리는 시점이랄까.


속사정은 이렇다. 김밥 속재료가 빌 때마다 한두 개씩 보충하고, 그럼 또 다른 속재료가 남으니까 다시 채우면서 김밥늪에 빠진 것이다. 재료 한두 개쯤은 포기할 수 있지 않느냐 하면 그것도 맞다. 내 김밥도 정석은 아니다. 김밥의 상징적인 속재료인 당근, 햄, 맛살을 생략했으니까. 만드는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 근데 단무지와 우엉은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엉을 빼자니 감칠맛이 반감되고 단무지를 생략하자니 그건 김밥이 아니다. 이뿐인가. 오이 하나 손질하면 최소 김밥 4줄 이상의 분량이 나온다. 아니면 통오이 김밥을 먹던지. 나는 낱개가 아닌 3개입에 한 봉인 백오이를 사용했는데, 초보자스럽게 몽땅 김밥용으로 손질해버렸다. 그래서 정말 오이를 여물처럼 먹게 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김밥용 구운 김도 최소 10장 이상 소진해야 한다. 밀봉을 잘하면 괜찮겠지만 눅눅해지는 건 정말로 참을 수 없다. 나는 녹은 콘아이스크림을 혐오한다. 진심으로 충언하건대 1인 가구가 김밥 만들기에 도전한다면 정말 일주일 내내 김밥만 먹을 각오하길 바란다.


그간 만든 김밥만 20줄가량 되다 보니 김밥 싸는 실력이 꽤 늘었다. 눈대중으로 재료를 얼마나 넣으면 되는지, 간은 어느 정도로 맞춰야 하는지 파악한 정도. 종종 옆구리 터지는 김밥을 만들 때도 있지만, 참기름으로 수습하는 기지와 스킬도 생겼다. 재료 손질 시간이 확연히 줄었으며 우리네 아주머니들처럼 드라마를 라디오마냥 틀어놓고 김밥 써는 여유도 생겼다. 실로 장족의 발전이다. "점심 챙겨 먹어라… 저녁 챙겨 먹어라…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다… 맨날 그런 거만 먹냐… 영양가 없고 살만 찐다…" 등 걱정과 잔소리를 늘어놓는 엄마한테 인증샷도 빼놓지 않았다. 당신 딸 생각보다 야무지니 끼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키는 동시에 자랑하고 싶었을지도.


돌이켜 보니 우리 가족은 같은 식탁을 공유하는 일이 드물었다. 가족끼리 도란도란 대화 나누며 밥상 앞에 둘러앉은 풍경은 남의 집 일이었다.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은 있을지언정 친밀한 가족은 아니었기에 시간 날 때 대충 끼니를 해치우듯 먹었다. 저마다 좋아하는 메뉴도 달라서 각자 존중하자, 뭐 구태여 같이 먹나, 할 말도 없는데 이런 식으로. 지금 생각하면 좀 아쉽다. 개인 일정과 취향을 핑계로 가까워지려는 품조차 아꼈으니 말이다.


그래도 내 기억엔 초등학교 5학년까지 아빠와 엄마 셋이서 나란히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엄마가 끓여준 된장찌개 맛이 아직도 선명하다. 마치 청국장 같은 걸쭉함과 깍둑썰기한 돼지고기, 고추를 곁들이면 맛이 더 깊어진다는 엄마의 요리 지론에 과다하게 투여한 고춧가루 등 총체적 대환장 메뉴였지만 생각보다 준수한 맛이었다. 별점 3.5/5 정도? (엄마 미안) 맛이 탁월해서라기보다, 당시의 분위기가 더해져 더 든든한 밥상이었던 것 같다. 추억 보정 덕인가.


엄마에게 싸준 참치 김밥과 닭가슴살 김밥. 파슬리 가루를 뿌린 게 닭가슴살 김밥이다. 실력에 비해 너무 갖추고 요리하고 있다.


아무튼 대단한 밥상 한 끼는 아니더라도, 김밥 행색을 갖춘 요리를 하게 됐으니 엄마에게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자랑만 하면 쓰나, 그럼 아무리 가족이라도 재수 없다. 엄마에게 무슨 김밥이 좋으냐고 물으니 언제나처럼 네가 해주는 건 다 좋다고 답했다. 나처럼 먹는 데 까탈 안 부리고 해 주는 사람 마음을 곱게 보는 엄마다. (다만 엄한 데서 나를 쥐 잡듯이 잡지만) 그래서 참치 김밥을 싸주겠다고 했다. 미리 손질해 둔 재료와 함께 일부 부족한 재료를 추가로 다듬었다. (이렇게 나의 김밥 굴레는 지속되었다만) 참치에 마요네즈를 적당량 섞고, 설탕과 후추로 메인 재료를 준비했다.


이제 나머지 재료를 모두 때려 넣고 야무지게 말아서 적당한 간격으로 썰어주면 된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백종원 선생의 가르침에 의하면 밑간 한 밥을 김의 2/3 정도에 ‘고른 두께로’ 잘 펴 발라야 김밥 모양이 예쁘게 완성된다는 거다. 역시 뭐든 앞단을 착실히 해야 뒤가 탄탄대로다. 또 하나는 김밥발로 동그랗게 말 때 손바닥을 쥐어짜듯 쥐지 말고 손끝을 활용하라는 거였다. 마치 티라노사우르스 앞발처럼. 칼질은 김의 이음새 부분을 아래로 두고 썰어야 한다는 걸 대부분 느낌적으로 알 거다.


이렇게 완성한 김밥을 락앤락 도시락통에 차곡차곡 쌓았다. 한 줄 반에서 두 줄 정도 넣으면 꽉 찰 사이즈다. 우리는 최소 두 줄 이상 만들어 먹을 요량이었다. 근데 두 번째 김밥을 싸고 보니 거의 빈 통이었다. 엄마가 옆에서 허버허버 김밥 싸는 내게 감 놔라 배 놔라 하면서 전부 집어먹은 거다. 맛이 좋단다. 네가 나보다 실력이 나은 것 같단다. 무척 뿌듯했다. 이게 요리해 주는 사람의 심정이구나, 근 30년 만에 깨달았다. 반성한다.


참, 된장찌개로 빌드업한 건 내가 김밥에 미소 된장국을 함께 먹었기 때문이다. 김밥만 먹으면 조금 목 막힌다. 분식점에서 장국을 괜히 주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물론 내껀 보급형 국이다. 한 포당 880원 하는 가루형 분말을 사용했고 파만 쫑쫑 썰어 넣었다. 엄마한테 자랑용 사진을 보내니 "국도 네가 끓였냐?" 한다. 그럼 나는 "그럴리가"하지.




주재료

김, 밥, 참치, 단무지, 계란, 우엉, 오이

보조

미소 된장 분말, 파, 깨, 참기름, 마요네즈, 설탕, 후추, 소금

Point

• 모르는 사람 없겠지만 참치 기름 제거하기

• 김밥 안터지게 말기(유튜브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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