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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음 Sep 04. 2024

백반에 제격! 소시지, 계란, 닭고기

먹보가 환호할 근본 조합


손가락 칼질 이슈 후 약 2주 차에 실밥을 풀었다(토스트 편 참고). 초반에 염증 기운이 있어서 빨갛게 부어오른 손끝을 보고 잔뜩 겁먹었다. 손가락이 내 밥줄이니까. 그래서 항생제를 비롯한 알약 여러 개를 세끼마다 열심히 섭취하며 '식후 30분'을 칼 같이 지켰다. 어릴 땐 의사 선생님 말을 귓등으로 들었는데 조금 나이 들었다고 진료 볼 때마다 듣는 한 마디에 그날의 컨디션이 달라졌다. "선생님... 저 괜찮은 거죠? 잘 낫고 있지요?"라며 재차 확인하는 내게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님들의 눈빛은 일관적이었다. 무심함을 베이스로 한 약간의 연민과 공감, 그리고 직장 생활의 피로함. 미안해요, 염병은 약도 없는데 너무 무서워서 어쩔 수 없었어요.


근데 손가락 회복하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웬걸? 너무 든든히 먹는 바람에 살찜 이슈까지 벌어졌다. 퇴사하고 조금 줄었던 몸무게가 퇴사 전 상태로 복귀했다. 침착맨 가라사대 "왜 이렇게 쪘냐고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세포들이 알지. 나라고 해봤자 뇌야, 뇌. 다른 부서 일을 어떻게 알아. 여러분은 심장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요? (중략) 내가 아니야." 맞아 현실이 아니야. 자기부정 단계에 이르렀다.


배달 음식을 줄이면 마법처럼 빠질 줄 알았던 몸무게가 회복한 데는 요인이 있다. 첫째, 입맛이 좋다. 둘째, 가성비를 위해 재료를 대용량으로 구매한다. 셋째, 만든 음식이 아까워서 남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음식물 처리가 너무나 싫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비위가 지독하게 약한 편이라 음식물 쓰레기 특유의 냄새만 맡으면 헛구역질이 난다(그래서 매번 숨 참고 처리한다). 요컨대 잘 먹어야 빨리 낫는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먹었단 얘기다.



밥 두그릇 먹은 이슈까지!


오늘은 왕초보 자취생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메뉴를 선보인다. 자취생 근본 조합인 소시지와 계란에 닭고기까지 추가해 풍성한 밥상이다. 사실 원래 메뉴는 소시지 토마토 계란볶음이었다. 냉장고에서 낯빛을 잃고 있는 방울토마토를 어떻게든 소진하기 위해 고안한 메뉴였다. 하지만 토마토를 익히는 건 굉장히 섬세한 불질이 필요하단 걸 느꼈다.


나는 내 실력을 다시 한번 과대평가했다. 돈 내고 사 먹는 정도의 퀄리티를 기대했는데 현실은 어림도 없었다. 맛있는 재료로 개죽을 만드는 것도 재주다. 프라이팬에서 지옥에서도 외면당할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간장과 굴소스, 설탕을 추가해 어떻게든 만회해 보려고 했으나 소생 불가였다. 나는 여기서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도 식재료도 분리돼 있을 때 아름다울 수 있구나.


그래서 새 마음으로 재료를 따로 굽기 시작했다. 계란 2개를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곱게 펼쳤다. 이어서 비엔나 소시지에 칼질을 내 후추를 쳤다. 왠지 아쉬워 냉동실에 있던 닭가슴살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해동한 후 불에 찬찬히 익혔다. 양념은 굴소스와 설탕, 소금을 섞었고 며칠 전 덮밥 배달시켜 먹고 남은 칠리 오일을 둘렀다. 느끼함을 잡기 위해서다. 예전에는 배달시켜 먹고 남은 소스류는 몽땅 버렸는데 요새는 어떻게 재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순차적으로 플레이팅을 마치고 밥과 찍어먹을 소스까지 준비를 마치니 군침이 돌았다. 백반에 참기름 한 큰 술 두르고 깨까지 뿌렸다. 잠시 먹잘알 된 기분이 들었다. 돼지가 됐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해야겠다.


참, 새로운 소식이 있다면 퇴사 후 79일 만에 취뽀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인사팀에서 입사날 점심에 웰컴푸드로 뭘 먹고 싶냐길래 “아무거나(한식)요”라고 답했다. 맛집이 많은 동네인 만큼 센스 있는 메뉴 선정 기대한다. 과연 나의 자취 요리 도전기는 지속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금주 이슈 브리핑 끝.




주재료

닭고기, 비엔나 소시지, 계란, 밥

보조

소금, 후추, 굴소스, 파슬리가루, 머스터드, 케첩, 깨, 참기름

Point

• 굴소스 양념한 닭고기에 칠리 오일 살짝 곁들이면 꿀맛(버텍스 배달시키고 남은 거 활용)

• 백반에 참기름 한 스푼 두르고 깨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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