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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ELYST Nov 25. 2021

생각보다 가까운...

그러나 아직은 손에 닿지 않는, 일본

지금 전 세계 경제를 작동시키는 시스템은 국가 간 분업 체계, 이들 간의 자유무역, 기축통화를 통한 결제의 과정으로 구성됩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로, 그 출발점과 시작점에 기축통화를 쥐고 있는 미국이 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기축통화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 편입된, 사실상 대부분의 국가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여기에 덤벼들어 성공했던 나라는 없습니다. 1980년대 전 세계 경제를 집어삼킬 것 같던 일본은 플라자 합의를 통해 무너졌고, 여러 방법으로 미국의 달러 패권에 도전해온 중국 또한 최근 체력이 부치는 듯 보입니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하에서 분업 체계의 일부를 담당한 각 국가는 자국의 기업을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공급할 가치를 창출합니다. 한 국가에서 1년 동안 창출된 가치의 합계를 GDP라고 하는데, 국가의 경제 규모를 측정하는 지표로 가장 널리 사용됩니다. 아시아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중국의 GDP(명목)는 1조 달러, 일본은 4조 달러, 한국은 3천7백억 달러였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2010년 6조 달러로 5조 7천억 달러의 일본을 누르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섭니다. 이후 중국은 2020년까지 연평균 9.2%의 성장률을 이어가며, 연평균 1.5%의 감소세를 기록한 일본과의 격차를 더욱 벌렸습니다. 같은 기간 미국은 3.4%, 우리나라는 3.6%의 성장률을 유지했습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쓴 2020년에는, 중국이 3.1% 성장했던 반면, 미국, 일본, 우리나라는 각각 2.3%, 3.4%, 1.0% 감소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중국처럼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던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감소세가 이어지면서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 또한 조용히 일본과의 거리를 좁혀왔습니다. 위 그래프에서 회색 막대는 일본 대비 우리나라 GDP(명목)의 비율을 나타냅니다. 1980년대에 일본의 7% 수준에 불과했던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는 2014년 30%를 돌파한 후, 꾸준히 30%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일본이 잠깐 성장세를 회복했던 2008-2012년 동안, 비록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제 규모 간 격차는 다시 벌어졌지만, 우리나라의 호텔 시장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고 2012년 정점을 찍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호텔 시장이 지녀온 속성을 극명하게 대변하는 통계입니다만, 이 상관관계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한편, 과거에는 한 국가의 경제 규모를 판단하는 지표로 GDP보다 GNI가 더 널리 사용됐었습니다. GDP가 한 국가의 영토 안에서 생산된 가치의 총량을 의미하는 반면, GNI는 한 국가의 국민들에 의해 생산된 가치 총량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현대차가 울산 공장에서 만든 자동차들을 수출하여 매출이 발생하면 우리나라의 GDP가 늘어납니다. 반대로, 몽고메리 공장에서 만든 자동차들을 팔아 매출을 발생시키면 미국의 GDP가 늘어납니다. 다만, 미국 공장에서 창출된 이익이 본사에 배당으로 돌아오는 경우, 우리나라의 GNI가 늘어납니다. 이때 우리나라의 GNI에서 우리나라의 GDP를 뺀 수치를 우리나라의 해외순소득이라고 합니다.



2019년 기준으로 일본의 해외순소득은 GDP(명목)의 3.6% 수준인 반면, 우리나는 0.8%에 불과합니다. 금액으로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해외순소득은 일본의 10% 내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GDP가 30%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한참이나 낮아 보입니다. 일본의 경우, 자국 내에서 돈을 벌어가는 외국 기업보다 자국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오는 소득이 우리나라에 비해 더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들과의 사이에서 보이는 현금흐름을 판단하는 지표가 BOP(국제수지)입니다. BOP는 크게 경상수지와 자본수지로 나뉩니다. 경상수지는 해당 국가에서 생산한 재화나 용역을 다른 국가에 팔아 서 벌어들인 돈에서 다른 국가에서 생산된 재화나 용역을 사느라 지출한 돈을 뺀 금액입니다. 즉, 재무제표 상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영업 활동에 따른 현금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자본수지는 해외에서 유입되는 자본에서 해외로 유출되는 자본을 뺀 금액입니다. 이를테면, 다른 국가로부터 빌려오는 돈에서 다른 국가에 빌려주는 돈을 뺀 금액, 또는 다른 국가로부터 받는 이자에서 다른 국가에 지급하는 이자를 뺀 금액, 즉 '재무 활동에 따른 현금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상수지가 흑자를 이어가는 중이고, 그 규모가 상당히 큽니다. 2018년에는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 폭이 급감하면서 중국과 비슷한 규모를 기록하기도 했고, 2011년 이후 흑자와 적자를 오가는 일본에 비해서는 한참 앞서 있습니다. 참고로, 미국은 원가 절감 차원에서 제조업 기반을 해외로 내보낸 1980년대 이래로 경상수지가 적자입니다. 즉, 그들은 더 이상 뭔가를 만들어 파는 국가가 아닙니다.



그러면, 열심히 일을 해서 그럭저럭 돈을 벌고 있는 우리나라와, 그렇지 않아 보이는데도 돈을 한참이나 더 많이 버는 일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사람에 비유하면, 우리나라가 월급 같은 근로소득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 일본은 임대료 같은 자산소득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 알 수 있는 지표가 해외순자산인데, 다른 국가에 빌려준 돈에서 빌린 돈을 뺀 금액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해외순자산이 꾸준히 늘어나고 일본의 해외순자산이 2015년 급감하면서 격차가 많이 줄었지만, 우리나라의 해외순자산은 아직도 일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재무상태는 자본수지에서도 어느 정도 판단해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자본수지 흑자 규모는 우리보다 한참 큽니다. 위의 해외순자산 데이터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일본은 다른 국가에서 빌리는 경우가 많지 않아 국가부채에서 대외부채의 비율이 낮습니다. 즉, 일본의 자본수지 흑자는 다른 국가로부터 받는 이자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일본과 우리나라 간의 자본수지 격차는 경상수지 격차보다 컸습니다. 다만, 2020년 들어 격차가 줄었고, 여기에는 올림픽이 1년 지연된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멀어지고 우리나라에 가까워지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보이기는 합니다. 그리고, 최근 일본의 해외순자산이나 자본수지 변동 추이 또한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드는 생각은 다소 복합적입니다. 한편으로 해방 이후 우리나라가 이렇게 일본과 가까워졌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 기쁘기도 하고, 일본이 당면한 고민들이 어렴풋하게나마 보이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합니다. 일본이 원하는 반전의 기회가 점점 한 곳으로 수렴되는 것 같아서인데, 그런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한편, 전체 경제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아직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자꾸 신경 쓰이는 통계가 있습니다. 바로 지적재산권 수지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 한류 열풍을 몰아치며 문화 콘텐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지적재산권과 관련하여 우리나라는 벌어들이는 것보다 더 많이 지출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일본은 주요 아시아 국가들 중 유일하게 지적재산권과 관련하여 지출하는 것보다 더 많이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이미 그 흑자 규모도 상당한데, 우리나라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문화 콘텐츠뿐만 아니라 산업이나 기술 관련 지적재산권이 포함된 통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류라는 문화 콘텐츠가 남 좋은 일만 시키기에는 아까운 자산입니다. 우리의 문화 콘텐츠들이 차곡차곡 무형자산을 축적해가는 시점에서, 당장의 수입보다는 산업 구조의 고도화를 안착시킬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넷플릭스에 이어 디즈니 플러스가 우리나라에 진입했고, HBO 맥스 또한 곧 상륙을 앞두고 있습니다. 대형 글로벌 플랫폼들이 전 세계 콘텐츠 유통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장악해가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콘텐츠 플랫폼들은 여전히 우리나라를 벗어나지 못하고 출혈 경쟁 중입니다. 늦기 전에 문화 콘텐츠의 생산 시스템 수출과 글로벌 유통망 구축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 자료출처: World Bank Open Data


[2021.12.04. 추가] 위 글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대외' 재무 건전성에 초점을 둔 내용입니다. 즉, 우리나라의 '대내' 재무 건전성에 대한 부분은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단연 대내 재무 건전성, 특히 '가계부채'입니다. 2020년 OECD 국가들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대략 60~90% 내외 수준인 데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 98% 수준으로 세계 1위를 기록했습니다. 2020년 우리나라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로, 이 또한 일본 114%, 미국 105%에 비해 한참 높습니다. 부동산이 사회적 불평등의 중심에 있고 해결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대출금리가 급등하거나 집값이 폭락하기라도 한다면 또 다른 거대한 문제를 불러올 수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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