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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숲 Sep 23. 2023

나는 더 이상 연애하지 않기로 했다


처음 연애를 시작한 건 이혼 후 2년이 지나고서부터다. 그전까지는 연애에 관심이 없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두려웠다. 누군가를 만나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을 수밖에 없는 갈등을 해결하며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꽤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상대를 통해 받게 될 수도 있는 마음의 상처가 가장 무서웠다.


그러다 처음 연애를 시작하게 됐는데, 상대는 나에게 '마음 가는 대로' 해보자고 했다. 연애는 두려웠지만 그 사람을 향한 강한 끌림은 있었기에 잠시 고민하고는 눈을 질끈 감고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이 이혼 후 첫 연애의 시작이었다.


이혼 후에 하는 연애는 기존의 그것과는 달랐다. 특히 아이가 있는 우리에게는 더더욱 새로운 국면이었다. 헤어지고 처음 하는 것이어서 모든 것이 낯설었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았다. 아이가 아빠를 만나러 간 날 둘이 가까운 교외로 나가 데이트를 하고, 유명한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며 사진을 찍고, 나의 건강을 걱정해 주는 상대에게 고마움도 느끼면서, 그동안 남자친구가 생긴다면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같이 해보고 오랜만에 엄마로서의 내가 아니라 여자로서의 나를 느끼며 그것만의 독특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하지만 행복은 절대 오래가지 않지. 곧 현실이 눈앞에 펼쳐질 테니까.

그에게는 ADHD를 겪고 있는 초등학생 남자아이와 내 딸보다 두 살 언니인 딸이 있었다. 내가 딸을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딸을 대하는 것은 할만했다. 그런데 ADHD라는 조금은 특별한 남자아이를 대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아이는 나를 경계했고 그걸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하는 말들이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그건 그렇다 쳐도, 연애 상대였던 그는 가끔 분노를 과하게 표출하는 경향이 있었다. 소리를 지른다거나 어떤 사물을 팽개치듯 던진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세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에서 갈등이란 게 생길 수밖에 없을 텐데, 그때마다 마주하는 그의 분노의 세기는 용납이 안 됐고 그러다 보니 그와 있을 때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하지 않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헤어졌다. 노력하겠다며 다시 만나고 싶다는 그의 말에 흔들려 다시 만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끝은 늘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정리했다.


돌아보면 나도 상대에게 완벽하지 않았고, 그래서 갈등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혼 후에는 모든 것을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내가 더 이상 그 관계를 위해 무언가 더 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 관계를 끝내야 하는 이유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아이다. 아이 기준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다 보니 이 사람과 계속 함께 하는 것이 아이에게 최선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연애 시작은 쉬운데, 그 관계를 지속하고 이어가는 게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대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많은 사건과 상황들도 보통의 연애와는 다르다. 새로운 가족을 내 마음속에 받아들여야 하고,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하고, 만나는 상대에게서 발견되는 단점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미 혼자인 것이 익숙해져 버렸고 내 아이만을 생각하면 됐던 일상이 자연스러워진 나는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것이 몹시 거북하다. 내 안의 사랑이 부족한 걸까, 생각해 보지만 없는 사랑을 억지로 쥐어짤 만큼 삶이 여유롭지도 않다.

물론 정말 좋은 상대를 만난다면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아니면 정말 모든 조건이 나에게 딱 맞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건 그냥 꿈, 나의 바람인 것 같다. 현실은 다르고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몇 번의 연애와 스쳐 간 인연들이 더 있었다. 그 여러 만남들을 통해서 나는 관계에 기대는 마음을 점차 내려놓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연애를 하지 않기로 했다. 정말 진정한 사랑으로 감쌀 수 있다면, 내가 하는 것이 연애가 아니라 사랑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나는 그런 넓은 사람은 못될 것 같다. 내 딸 하나에게만 그 사랑을 주기에도 매우 벅차기 때문이다.

삶은 장담하면 안 되는 것이라서 이런 마음이 또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정말 큰 사건이나 계기가 없다면 아마 내 마음은 영 변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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