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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숲 Sep 20. 2023

우리만의 세계

딸과 단 둘이 베트남 여행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던 지난겨울의 2월, 나는 딸과 함께 도망치듯 베트남으로 떠났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겨울만 되면 괴롭다. 몸 상태도 나빠지고 일조량도 부족해 우울한 날들이 많다. 집안일과 바깥일, 육아와 살림을 홀로 분주하게 오가며 살아온 지도 이제 5년 차. 아이와 함께하는 삶이 분명하게 행복하지만 동시에 지독히도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나를 위해 진즉에 더운 나라로의 왕복 비행기표를 충동적으로 끊어놓았었다. 조금은 무모하게 9박 10일의 일정으로.


 아이를 데리고 혼자 가는 여행이기에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이 어린아이를 잘 데리고 다닐 수 있을까, 딸과 둘이 열흘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채워 나가지? 수많은 생각과 머뭇거림이 있었지만 여행준비를 하다 보니 지루한 일상에 생기가 돌았다.


 여권을 챙기고, 여행지를 검색하고, 숙소를 정하고, 가서 입을 옷들을 고르고, 아이와 밤에 자기 전 앞으로 하게 될 여행에 관해 소곤소곤 이야기 하는 것들은 모두가 설렘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흐르는 시간은 우리를 베트남으로 데려다주었다.


 한국과는 다르게 덥고, 습하고, 푹푹 찌는 2월의 베트남. 따사롭고 화사한 햇살 아래 투명하고 맑게 비치는 수영장의 물냄새. 물감을 풀어놓은 듯 파랗게 펼쳐진 하늘 아래 퍼지는 타국의 여름향기. 그 냄새를 맡으며 눈을 감으면 엄마!라고 부르며 깔깔대는 딸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가끔씩 두런두런 들리는 주변 투숙객들의 말소리와 발자국 소리도 반가울 만큼 고요한 리조트. 가끔씩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풀벌레와 새소리가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살며시 상기시켜 준다.


 감았던 눈을 떠보니 딸아이가 빌라의 풀장 위로 다이빙을 한다. 나는 썬베드에 느긋하게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본다. 그러다 문득 지나가 버리면 다시는 보지 못할 순간일 것 같아 서둘러 카메라를 집어 든다. 셔터를 연달아 누르던 순간, 아이의 점프가 절묘하게 포착된다.


 아이는 나에게 끊임없이 놀이를 제안한다. 물안경 던져서 찾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다이빙 놀이 등. 평소 공동수영장에서는 제한되는 놀이들도 풀빌라인 그곳에선 원 없이 할 수 있다.


 그렇게 놀다 보면 어른인 나는 지루함에 점점 지친다. 그래서 튜브에 올라가 앉아 쉬려고 하면 아이는 어서 물속으로 내려와 함께 놀자며 자꾸만 튜브를 빼앗는다. 엄마에게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을 안고 태어난 나의 딸은 잠시도 엄마가 쉬는 꼴을 보지 못한다. 그렇게 놀아주다 틈틈이 썬베드에 앉아 쉬었다 불려 갔다를 반복한다. 내가 어쩌자고 애랑 둘이 이 먼 곳까지 왔을까, 너는 왜 혼자 놀지를 못하니, 자책 반 원망 반의 시간들을 보내고 나면 9박 10일의 길고도 짧았던 여행은 어느새 꿈결처럼 모두 지나가 버린다.


 보통은 아이와 나는 거의 한 몸처럼 붙어있다. 여행을 가서는 더더욱 그렇다. 아이가 엄마 껌딱지이기도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우리 둘만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기 때문이리라. 혼자 하는 여행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아이와 여행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힘들고 고생스럽더라도 자꾸 둘만의 여행을 계획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만 세상에 덜렁 떨궈진 것 같은 데서 서로 전우애 같은 것을 느낀다. 서로만을 온전히 의지하면서 깊어지는 애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잠시 잠깐 아이가 혼자 놀아주기라도 하면 우리 둘 뿐인 세계에 너와 내가 따로 온전히 서 있다는 참 괜찮은 느낌이다. 물론 길어야 몇 분이겠지만 말이다. 완전한 의존과 완전한 독립. 그것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순간이 바로 내 어린 딸과 나와의 둘만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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