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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숲 Oct 16. 2023

이혼 후에 오는 남자들

이혼의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이혼을 한 사람은 암 발병률이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높고, 사망률도 훨씬 높다고 하더니. 나 역시 거칠고 추잡한 일련의 과정들을 지나오면서 그 말에 깊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수명이 한 10년쯤은 짧아진 느낌이었다.


본래 멘탈이 유리 같고 의존적이며 쉽게 예민하고 불안해지는 성격 탓에 아이를 혼자 키우게 된다는 사실은 어마어마하게 벅차고 몸서리치게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이전의 삶은 더 지옥 같았기에 물러설 곳은 없었고 무조건 앞으로 나갈 일밖에 없었다.


하루하루 외줄 타기 하듯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던 그때, 스무 살 적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프로게이머의 팬클럽에서 알게 된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결혼 전에도 자주 연락을 했었고 내 결혼식에도 왔으며, 결혼 후에도 한번 잘 지내냐는 안부전화를 걸어왔던, 나보다 두 살 위의 오빠였다. 알고 지낸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그가 이번에도 역시 잘 지내는지 가벼운 안부를 물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건네왔다.


지금은 직장 때문에 부산에 살고 있다는 그와 반갑게 얘기하다가 무심코 내가 아이와 함께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밝히게 되었다. 잠깐의 정적 속에서 그가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이후 몇 번의 연락을 더 주고받다가 그해 여름 처음 만나게 되었다. 내가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그는 조금 늦게 땀을 흘리며 뛰어왔다. 오랜만임에도 큰 키와 동글동글한 몸집에 작은 눈, 거기에 어울리는 둥근 안경, 하얀 얼굴에 수줍고 약간은 어색한 미소는 여전했다.


아이와 함께해야 했기에 늘 뻔했던 내 생활 패턴에서 그날은 오랜 친구와 정말 오랜만에 도심에서 밥도 먹고 카페도 가고 술도 마셨다. 젊음의 거리를 누비며 나도 젊음을 느끼고 속 깊은 얘기도 하면서 묵혀뒀던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다. 정말이지 가뭄에 단비 같은 하루였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걸 본 그는 자신이 더 자주 와서 놀아줘야겠다며 부산에서 2주에 한 번씩 올라와 이곳저곳을 데려가 주었다. 덕분에 지친 육아에서 벗어나 콧바람도 쐬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또 아이와 주말이면 뭘 하지 고민하는 나와 딸을 데리고 딸기 따기 체험도 가고, 동물도 보러 가고, 집 앞 놀이터에서 아이와 놀아주기도 했다.


아이에 대한 걱정이나 전남편과의 갈등, 미래에 대한 불안에 두렵고 우울한 날이면 언제나 전화해 울며 털어놓으면 그는 자기 일처럼 공감하며 위로해 주었다. 끝없이 내 감정을 들어주고 무조건적으로 내 편이 되어준 그 덕분에 내 정서는 많이 안정되었고 고된 일상에서도 활기를 찾았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잘해주는 걸까, 이쯤 되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알고 지낸 지 15년이 넘도록 나에게 한 번도 남녀 사이의 어떤 낌새조차 주지 않았던 그였기에 나에게 베푸는 이 친절이 고맙지만 이상했고 궁금했다. 이혼했다니까 나한테 갑자기 관심이 생겼나? 아님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혼자 고군분투하는 게 그렇게 안쓰러워 보이나?


몇 번의 만남을 지나온 어느 날, 슬쩍 물어보았다. 왜 이렇게 잘해주느냐고. 그는 말을 얼버무렸다. 그리고 그날 날 데려다준 후 헤어지면서 결심한 듯 말했다. 스무 살이었던 나를 처음 만난 날부터 좋아하고 있었다고.


이혼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내 모든 걸 앗아가 버리기도 했는데, 나에게 새로운 것들을 주기도 하니까.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경험, 혼자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리면서 자라나는 자립심과 독립심, 인생에 대한 새로운 고찰, 사람을 보는 다양한 관점, 인간관계에 대한 정의의 재정립…


그리고 지금은, 내 오랜 친구 같은 그가 말하지 못했던, 앞으로도 절대 말하지 않았을 사실을 용기 내 고백하는 생각지도 못한 시간을 맞닥뜨리게 한다. 그리고 그의 진실한 마음에 고마웠다. 솔직히 기분 좋았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설레고 생각하면 기분 좋아지는 존재로 오랜 세월 남아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여성성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아쉽게도, 나는 그가 전혀 남자로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그도 그걸 알고 있다고 했다. 그 뒤로도 우리는 친구인 듯 아닌 듯 그렇게 일 년을 만났고, 나는 물심양면 지원해주려 하는 그를 참 많이 의지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그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었고, 나는 점점 더 그에게 많은 것들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락이 끊어졌고, 우리는 또 그렇게 일 년이 훌쩍 넘도록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


내가 다시 연락을 하게 된 건 그때의 그가 베푼 많은 것에 대한 고마움이 종종 떠오르면, 나에겐 은인과도 같은 그에게 어떻게든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오랜만에 연락한 그에게서 우리가 연락이 끊길 당시 일하다 크게 다쳤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병원에 굉장히 오랫동안 입원해 있었다고 했다. 재활 치료를 하며 다행히 지금은 괜찮아 졌다고. 나는 서로가 자연스럽게 연락을 관두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인 줄 알았는데 의외의 말에 무척 놀랐다. 그리고 깊이 미안했다. 그가 가장 힘들 때 나는 옆에서 힘이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우리는 서로 잊을만하면 가끔 안부를 전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직도 그는 나에게 종종 나에 대한 애정을 에둘러 표현하긴 하지만 이제 그건 오누이 사이에서 주고받는 느낌이랄까. 부산의 일도 다 정리하고 올라올 거라고 누누이 말하지만, 그 말을 한지 거의 일 년이 넘어간다. 아무래도 그는 거기서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다. 지난번 아이와 함께 잠깐 그를 보러 갔던 부산 여행에서 살짝 눈치챘기 때문이다. 이젠 정말 그를 훨훨 날도록 보내주어야 할 때인 것 같다. 그가 앞으로 정말 행복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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