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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숲 Oct 12. 2023

'아빠'라는 금기어

이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딸과 나는 봇짐을 싸 들고 서울과 파주를 오가며 난민 아닌 난민 생활을 했다. 


더 이상 얼굴도 보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한 지붕 아래에서 일주일 내내 함께 숨 쉬는 것은 고역이었다. 일주일에 3일은 기존에 살던 파주에서, 나머지 4일은 친정 부모님이 계신 서울에서 지냈다. 결혼해서 분가한 동생 방에 임시로 거처하며 그렇게 몇 달을 이쪽저쪽을 오가며 짐을 쌌다 풀었다 정신없이 살았다.


아이는 겨우 두 돌을 갓 지났을 뿐이라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았기에 이렇게 피난민 같은 생활을 납득하지 못했고 나 역시도 설명할 수 없었다. 


늘 아빠를 볼 수 있었던 넓고 깨끗한 새 아파트인 원래 집을 놔두고 일주일의 나흘이나 불편하고 오래되고 지저분한 남의 집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게 아이 입장에서는 참 힘들고 괴로웠을 것이다. 


나 역시 내 집을 떠나 이미 독립해 버렸던 부모님 댁에 다시 기어들어 간다는 게 눈치도 보이고 괴로웠다. 그러나 쾌적한 집에서는 함께 사는 사람이 지옥이었고, 극한의 환경이었던 분가 전 친정집에서는 그래도 숨은 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아이를 키우기에는 최악의 환경이었고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나는 이방인처럼 외롭고 답답했다.


그 와중에도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었다. 조금씩 말도 하게 되고 세상을 보는 눈도 점점 트이는 듯했다.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말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 아이를 위해 책을 사들이고 낮이건 밤이건 무수히 읽어주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책을 보다가 새벽 두세 시에 잠이 들기도 했다. 고행을하는 것 같았지만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육아였다.


그러다 책에서 ‘아빠’라는 단어가 나오면 나는 흠칫 놀라곤 했다. 한두 번 읽어주다가 그 단어가 지속해서 나오면 일부러 안 읽고 지나가기도 했다. 아니면 발음을 뭉개버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게 하기도 했다. ‘아빠’라는 말을 들려주는 자체로도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은 마음에 그 단어가 보이면 심장이 내려앉았고 그런 책은 골라내어 아예 다른 곳에 치워버리기도 했다.


주말이면 아이의 손을 잡고 나들이 나온 아빠들이 보인다. 그러면 질끈 눈을 감고 싶어졌다. 아이가 그들을 보고 자신의 아빠를 떠올리며 가슴 아파할까 봐  내 가슴은 졸아들었다. 주말에 외출하는 것이 두려웠다. 


이런 식의 결핍을 아이의 인생에 주고 싶지 않았고 설마 내가 내 아이에게 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이에게서 아빠라는 커다란 존재를 앗아가 버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일은 벌어졌고 아이 삶의 큰 부분을 내가 싹둑 오려내 버린 것만 같은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피하면 피해지는 것도 아닌데, 외면한다고 바뀌는 것도 아닌데, 최대한 회피하고 싶어서 늘 그렇게 도망 다녔다. 일은 어른들이 저질렀는데, 피해는 왜 어린 네가 받아야 하는 건지 묻고 있는 듯한 네 눈빛에 대답해 줄 수가 없어서.


어린이집에서는 가족사진을 가져오라고 했다. 아빠와 찍은 사진을 보내면 실제로는 함께 살지도 않는데 제출하면서 아이 마음이 아플 것이고 그마저도 옛날 사진들뿐이다. 그렇다고 둘만 찍은 사진을 보내자니 주변 아이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아이와 함께 둘이 여행을 가면 전혀 물을 필요가 없는 상황인데도 아빠는 어딨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둘만 왔다고 웃으며 말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몹시도 불편하다.


길 가다가 만나는 할머니들은 아이가 하나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면 둘째는 왜 안 낳느냐고 묻는다. 살아보니 형제는 꼭 있어야 한다며 얼른 낳으라고 종용하면서 내 가족계획을 대신 세워준다.


친근함과 무례함의 사이에서 나는 종종 갈 곳을 잃는다. 화가 나기도 하지만 이 화의 정당성이 의심스럽고 표현하는 것은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아이에게도, 타인의 시선 앞에서도 죄인이 된다.


사회적 소수자는 이렇게 배려받지 못한 말과 시선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그것이 주는 생채기를 온전히 감당하고 언젠가는 무뎌지기를 기다리면서. 무뎌지지만 절대 잊히지 않는 가슴에 박힌 가시가 일상에서 수시로 건드려진다.


그래도 그렇게 도망치고 외면했던 날들이 무색하게 지금은 참 맑고 밝게 크고 있는 아이를 보며 안도한다. 아이 가슴 속 어딘가에 상처는 있겠으나 그 아픔이 아이를 잠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애초에 주지 않았으면 좋았을 상처였겠지만 더 큰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차악을 택한 거라 믿는다. 지금의 ‘아빠’ 없는 일상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고 지금도 둘이 함께 즐기며 ‘잘’ 살아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마다 한 번씩 만나는 아빠와의 일상에서 아이가 부녀간의 추억 곳간을 잘 채워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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