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분홍숲 Nov 22. 2022

오늘 친구 때문에 울었던 딸에게

사랑하는 딸아,

오늘은 네가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친구 문제로 울며 내일은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 했지.


한참을 너와 대화하고 나니 네가 어느덧 이렇게 커 엄마와 친구 문제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엄마의 조언을 주의 깊게 들어주는 나이가 되었나 하고 마음속으로 조금은 놀랐단다.


긴 이야기 끝에 한결 밝아지고 가벼워진 너의 표정에 엄마도 그간 너의 불편한 심리를 모르고 너를 대했던 미안함과 그 이유가 친구 때문이라는 걸 눈치채고 난 후 느꼈던 자책감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다.


너는 참 맑고 상냥한 아이인데 너와 맞지 않게 조금은 어둡고 딱딱한 엄마를 만나서 너의 기질을 맘껏 발휘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 조금씩 너의 삶의 어려움으로 드러나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많이 불편했었다.


타고난 성격을 어쩌지 못하겠어서 읽기 시작한 육아서는 제 역할을 발휘하지 못했고 삶에 치여 제대로 너의 마음을 보듬어주지 못한 것 같아 오늘은 많이 스스로를 뒤돌아보게 되었네.


그래도 엄마의 조언 같지 않은 조언을 듣고 혼자 마음을 다독여가며 기분 좋게 책을 읽자고 하고, 책에서 나온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가 감기 다 나으면 기프티콘으로 아이스크림을 배달시켜 먹자고 하는 말에 활짝 웃으며 잠든 너를 보며 엄마는 너무 행복해 눈물이 나려고 한다.


인생은 즐기며 살 수도 있는 건데, 돈과 교육이라는 압박감에 널 가두고 통제하려고 할 때가 많은 것 같아 뜨끔한 마음이 들기도 해.


너를 위한 거라는 허울 좋은 말은 하지 않아야 하겠지. 하지만 정말로 너를 위해 한 행동이었음이 핑계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 정말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세밀히 관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를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무섭기도 하네.


이럴 때 육아전문가에게 마음껏 도움을 요청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들지만, 사실 그건 모든 엄마의 바람일 테고, 다 각자의 삶과 신념 속에서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 거겠지. 전문가가 늘 엄마의 곁에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야.


중요한 건 너와 나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이겠지, 애착이라고 부르는.


그게 요즘은 많이 소원해졌던 거라 생각이 든다. 내가 요 며칠 너를 대하기 힘들었던 걸 생각하면.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이 이런 기분이겠구나, 하고 새삼 그들이 정말 존경스럽게 느껴졌었어.


내가 그때가 되어 너를 너무 어렵게 느끼지 않으려면 지금 너와의 사이가 견고해야겠지. 어렵지만 다시 한번 노력할게. 엄마가 그동안 미안했어.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내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 널 잘 키우고 싶어서 잠시 다른 것들에 스트레스를 받아가고 그것이 너에게 오롯이 전해졌을 거라는 생각을 이제는 할 수 있게 되었어.


우리 다시 시작하자. 우주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우리 딸, 엄마가 정말 사랑한다. 늘 너를 믿고 응원할게. 네가 삶에서 만나는 것들을 마주했을 때 등 뒤에는 항상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길. 사랑해!





이전 05화 '아빠'라는 금기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