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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숲 Oct 10. 2023

가장 빛나는 순간이 가장 아프다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은 꽤 많다. 무심하게 흘러가는 지루한 일상도 아이의 미소와 함께라면 눈부시고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로 인해 생기가 넘친다.


아이를 낳고 더 행복을 느꼈던 이유는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아이라는 존재 그 자체 때문이었다. 막 태어나 내 손안에서 느껴지던 연한 피부의 감촉, 처음 젖을 물리던 그때의 감격, 조리원을 나와 집에서 처음 조심스레 목욕시키던 그 떨림, 내 장난에 아이가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리던 순간, 어느새 뒤집을 줄 알게 되어 엎드려 고개를 바짝 들고 날 바라보던 조그만 눈빛, 한 발 한 발 내딛던 소중한 첫걸음마…….


따스한 햇살 아래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환희로 가득했고 이제 내 인생에서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나와 아이의 아빠, 그리고 소중한 우리의 아이. 이렇게 우리 셋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따스하게 안고 서로를 마주 보며 웃고있는 부녀를 바라보면서 그들과 나란히 걸어가고 있노라면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이 세상의 주인공인 것만 같았다. 더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새벽녘,

한겨울에 태어난 아이가 두 돌을 맞이하기까지 몇 달이 채 남지 않았던 가을날.

어쩌다 나는 아이 아빠의 핸드폰 안의 내용들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그 시간 이후.


우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눈물과 비명, 원망과 절규, 지옥과 고통의 기나긴 날들이 꾸역꾸역 지나가고 결국에 나와 아이는.


둘이 살게 되었다.


둘이 함께하는 일상은 나쁘지 않았다. 길고 어두웠던 터널의 구간이 있었기에 오히려 감사했다. 해방감과 안도감마저 들었다. 이렇게 다시 행복을 찾는구나 싶기도 했다. 둘만의 공간에서 아이와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아이를 데리고 나가 놀이터에 들르고, 밥과 간식을 만들어 먹이고 가끔 외식도 하고, 집에 와 씻기고 놀아주다 책을 읽어주며 재우는 삶. 다시 평범한 일상을 되찾은 듯 했고 다시 완전한 우리가 되어간다고 느꼈다.


그런데 아이가 조금씩 성장하거나 무언가를 성취해 내는 순간, 기특하고 기쁘면서도 동시에 아이의 이런 모습을 나 혼자 보고 느끼고 간직한다는 사실에 가슴 한편이 따끔따끔했다. 엄마 혼자서만 이 순간을 함께 해주는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우리 가족은 완전체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오는 서글픔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웃음이 새어 나오면서도 코끝이 함께 시큰해지는 이상하고 복잡한 감정. 마음에 꽉 차오르는 따스함을 느낀 지는 오래되었다. 언제나 마음 한구석은 시렸던 것 같다.


아직은 말이 서툰 아이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와 귀여워 죽겠을 때, 아이가 어린이집에 마침내 적응했을 때, 원에서 귀엽고 예쁜 사진들을 보내줄 때, 학부모 면담을 처음 다녀왔을 때, 아이의 생일날, 처음 이빨이 빠지던 때, 교회에서 무대 위에 올라 율동을 발표하던 날...


그 모든 처음의 순간들을 즉시 함께 웃으며 나눌 사람이 없었다. 친구와 가족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무언가 매우 부족했다. 깊고 진하게 공감하고 그 누구보다 기뻐해 줄 사람이 우리 옆에는 없었다.


누군가 이혼은 행복해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덜 불행해지기 위해 하는 거라고 했다. 이혼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내 삶이 막 신나 미칠 것 같은 것은 아니다. 죽지 않고 제대로 숨 쉬고 살기 위해 그때 했던 가장 나은 선택이었을 뿐.


엄마가 아이를 혼자 키운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아이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 마냥 예쁘고 행복하지만은 않다. 그 속에 길고 복잡한 이야기들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운 장면이 내게는 가장 아픈 순간이기도 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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