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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숲 Oct 05. 2023

엄마 껌딱지

누군가로부터 이렇게 열렬히 사랑받게 될 줄 몰랐다. 그것도 여자에게.


나는 아마도 세상에 태어나 받을 사랑을 한 사람으로부터 온전히 다 받은 것 같다. 바로 내 딸로부터 말이다.


생후 7개월쯤부터 아이는 엄마인 내가 없을 때 타인을 필사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했다. 내가 없으면 아이는 세상이 무너진 듯 그 누가 옆에 있어도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며 바락바락 울었다. 그게 모든 것의 시작인 줄을 그땐 몰랐다. 커다란 올가미에 갇힌 듯한 기분이었다. 어디든 가도 상관없지만 반드시 나를 사랑하는 어린 여인과 함께여야만 가능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아이를 놓고는 볼일도 제대로 못 본다는 것. 최소한의 기본적인 욕구 충족도 어려운데 나만의 시간을 가질 여유는 사치일 뿐이었다.


 딸은 예민한 아이였기에 모든 것이 처음인 나란 엄마가 맞추기는 쉽지 않았고 아이의 예민함을 충분히 잠재울 만큼 노련하지 못했다. 그래서 애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는지 분리불안이 매우 심했다. 그리고 정말 힘들었던 건 이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왜 이렇게 예민할까 하는 원망과 내가 이렇게 만든 걸까 하는 자책은 참 감당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던 아이 덕분에 강제로 독점 육아를 해왔고, 아이와 둘이 살게 되고 나서부터는 대부분 한 몸처럼 붙어 있었다. 친정이 근처였지만 계속 울거나 징징거리는 탓에 맡기고 외출하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고 당연히 아이가 네 살 때부터 다닌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것도 그 자체로 큰 도전이었다. 처음 적응 기간 며칠 동안은 원장님께 사정을 설명하고 특별히 부탁해 원장실에서 대기하다가 가끔 찾아오는 아이에게 얼굴을 비추고 집으로 가기를 반복했고 우여곡절 끝에 아이는 겨우 원에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분리불안이 심했던 만큼 아이는 상당히 오랜 기간을 낮잠 시간에 울거나 내 사진을 붙들고 잠들었다. 가슴이 아팠지만 나도 살아야 했기에 어린이집에는 보낼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집의 도움마저 없었더라면 아마 우울증이라도 걸렸을지 모른다.


그렇게 힘들었어도 아이는 너무 예뻤다. 아이를 위해서는 뭐든 해주고 싶고 좋은 것만 주고 싶었다. 내가 엄마가 되니 자연스럽게 일렁이는 이 감정, 사랑. 나는 그게 참 신기했다. 밤이나 낮이나, 미우나 고우나 붙어있다 보니 아이에 대한 감정의 밀도가 남들보다 아주 조금은 남달랐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여덟 살이 되어 모든 것이 거의 지나가고 있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딸의 분리불안은 신이 내게 주신 축복이자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시도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로부터 확인받는 내 존재의 당위성. 나는 세상에 무조건 존재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한 생명을 위해 무조건 살아있어야 했고 그걸 매일매일 확인받을 수 있었다. 크고 작은 인생의 시련을 겪을 때마다 아이는 내 삶의 강력한 이유가 되어 주었다. 이제 친구 좋아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매일매일 나를 사랑한다고, 엄마가 제일 예쁘다고, 나를 세상에서 가장 필요로 한다고 말해준다. 그래서 내 가슴은 항상 따뜻하고 빈틈없이 충만하다.


일반적으로 자녀가 사춘기가 되면 엄마 품을 떠나려 한다. 그 시기를 엄마들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매 시각 확인받던 자신의 존재감을 더 이상 아이로부터는 확인받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오히려 어떨 땐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니 어서 눈앞에서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눈빛으로 바뀌어 버리기도 한다. 엄마를 향한 아이의 갈망을 이제 더는 느낄 수 없을 때의 그 배신감. 그만큼 아이가 엄마를 원한다는 것은 그 아이 엄마의 존재감에 힘을 실어주는 것일 테고 나 역시 그랬던 거다.


우리에겐 둘이 함께 보낸 촘촘한 시간이 고스란히 추억이 되어 마음속에 남았다. 내 어린 시절 부모님은 일하시느라 바쁘셔서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깊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껌딱지 아이를 위해 자의 반 타의 반 일을 미루고 줄여가며 육아에 전념하다가 그 시절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만큼 최대한의 시간과 에너지를 온전히 쏟았더니 딸과 나 사이에 끈끈한 무언가가 존재하게 되었다. 허전했던 내 어린 시절 엄마와의 빈 공간들이 딸과의 시간으로 채워진 느낌이었다.


아이와의 시간은 미치도록 힘들었지만 그만큼 행복했던 기억이 되었다. 당시에는 전혀 그렇게 느낄 수 없었을지라도. 어쨌든 시간은 흘렀고 그 과정을 오롯이 지나왔다. 실수하고 깨닫고, 잘못하고 고치고, 화내고 사과하면서 그래도 어떻게든 둘이 꽉 끌어안고 모든 걸 거쳐 왔다. 그 사실이 딸도, 나도 참 대견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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