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잠에서 깨 새벽 내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전날 우롱차 한 잔을 마셨는데 차에 든 카페인 탓에 잠을 설쳤다. 더불어 부른 배도 조였다.
“이제 낳으셔도 되겠어요. 많이 걸으세요. 이제는 되도록 빨리 나와야 합니다.”
자궁선근증을 앓고 있어서 자궁 내 벽이 두꺼운 탓에 아이가 있어야 할 자리가 모자라 최소 기간을 채우면 되도록 빨리 출산해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그 말을 듣고 다음 날 바로 신호가 오다니.‘
병원에 다녀온 바로 다음 날 진통을 겪으며 생각했다.
나는 남편에게 진통이 시작됐으니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자고 말했다. 남편은 급한 일이 있어서 안 된다는 말을 내뱉듯 남겨놓고 출근해 버렸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급한 대로 짐볼을 꺼내 들고 그 위에 앉아 버티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진통이 참을 만한 정도로 변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남편이 돌아왔고 파주에서 병원인 일산까지 또 한참을 가야 했다.
늦게 도착한 탓에 자궁문이 너무 많이 열려 문명의 이기인 무통 주사의 은혜를 받지 못한 채 11시간의 진통을 온전히 날것으로 감당해야 했다. 난산이었고 막판에는 정신을 차려보니 간호사가 내 위에 올라타 배를 짓누르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아이. 참 작고 가벼웠다. 햇빛 한번 보지 못했는데 얼굴은 또 왜 그리 까무잡잡한지. 캥거루 케어를 위해 내 가슴팍 위에 엎드려진 작은 생명은 내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꿈인지 생시인지 시공간이 흔들리는 듯한 어지럼증이 느껴졌고 그 와중에 정신을 놓지 않으려 애쓰며 아이에게 첫인사를 건넸다.
“빵글아, 안녕? 반가워.”
기껏해야 나온 말이 안녕, 반가워라니. 열 달 내내 부르던 태명을 이제는 아이의 눈을 보고 불러줄 수 있었지만 니가 내 딸이고 내가 니 엄마인 것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와 눈을 맞추고 품 안에 안고 젖을 물리던 순간, 이상한 감정이 가슴 한구석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묘한 에너지가 마음속에 퍼져갔다. 이런 걸 모성애라고 하는 건가?
짧고도 강렬했던 만남은 잠시. 아이는 곧 옮겨졌고 차디찬 분만대 위에 덩그러니 한참을 방치돼 있었다. 온몸이 오들오들 떨릴 정도로 한기가 들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철분주사를 맞고도 온몸이 얻어맞은 듯 아프고 손가락 들 기운조차 없이 축 늘어졌다. 그때 내 몰골이 어땠을지 짐작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마 참 흉했을 것이다.
한참 만에 옮겨진 병실에 누워 사경을 헤매고 있었으나 시아버지가 오고 싶다는 말에 오늘은 너무 힘드니 다음날 오셨으면 한다고 전하자 돌아오는 말은 섭섭하다는 반응. 누가 더 섭섭한지 내기할까 싶었지만, 흉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은 건 고사하고 내 몸이 죽을 것 같아 모른 척 계속해서 사경을 헤맸다.
아름다운 탄생, 축복받아 마땅한 생명의 존귀함을 만난 날이었지만 결국은 그저 수많은 날 중 하루였다. 그것도 나쁜 축에 속하는 날. 당시에는 그런 탄생의 신비를 느낄 여유조차 없었고 전혀 와닿지도 않았으니까. 지나고 보면,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들을 그리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했었다. 아니, 느낄 수 없었다. 그럴듯한 결과로 수렴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과정이란 게 수반될 테니까.
출산의 기쁨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겪고 나면 넘기 힘들었던 하나의 산이었을 뿐. 진통의 급박함과 빨리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던 초조함, 첫 출산이라 어쩔 수 없는 긴장과 불안을 지나 나의 고통을 몰라주던 남편과 시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분노라는 감정까지. 사랑했으나 동시에 너무도 미웠던, 애정과 증오를 온탕과 냉탕처럼 오가며 벌어지던 감정의 널뜀. 내 삶의 가장 가까운 단면은 사실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기 싫고, 추하고, 껄끄럽고, 아팠다. 지나고 보니 그것의 본질은 공교롭게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과 맞닿아 있었을 뿐. 아주 잠깐 아이와 눈빛으로 교감했던 단 그 몇 초로 다른 모든 순간이 대체되어 머릿속에 각인된다. 우리는 그래서 그것만을 기억하는 게 아닐까. 아름다움은 고통과 동시에 오지만,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서 고통을 잊는 방식으로. 그래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는 걸까.
그날 태어난 그 아이는 사랑스럽게 잘 큰다. 내게도 그날의 기억은 잊힌 지 오래다. 사실 육아의 고통이 너무 커 출산의 고통쯤은 이제 와 보니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그때 그런 일들이 있었지, 그런 감정이 들었지, 그렇게 아팠었지, 하는 정도뿐. 사랑하는 이가 내게 와준 가장 소중한 날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