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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숲 Oct 22. 2023

그리고 그 후

어느 집이든 사연 없는 집은 없습니다. 화목한 집도, 그렇지 않은 집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만의 아픈 가시가 하나쯤은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애 딸린 이혼녀, 싱글맘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삶 속에서 다져온 평범한 생각과 가치관. 그것들이 모조리 뿌리째 흔들렸습니다. 모든 것이 뒤엉켜 나뒹굴었습니다. 앞이 깜깜했고, 이제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밤에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두렵고 황망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거짓말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아이에게 부끄러운 엄마였습니다.


그렇게 둘만 살기 시작한 지 5년,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지는 8년이 되었습니다. 세월 참 빨리 간다고 생각했는데, 지나온 시간을 글로 적다 보니 참 많은 일들이 빼곡히도 있었네요. 그 연속된 시간 속에서, 내 필름은 천천히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내 옆에 있는 아이의 손을 잡고 가만히 바라봅니다.


그동안 저도, 아이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와 보니 모든 것이 축복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나와 아이의 평범한 일상이, 내 옆에 있는 너의 존재가, 더없이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상처 있는 과거가 더 찬란합니다. 그것을 통해 더 성숙해 갑니다.


과거가 어쨌든, 어떻게든 하루하루가 살아졌고, 그렇게 여기 살아남았습니다. 아직 더 성숙해 가야 할 날들이 많이 있지만, 이전의 불안은 기대로 바뀌어 오늘을 힘 있게 살게 합니다. 과거의 아픔은 미래로 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딸의 눈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솜사탕 같은 아이의 미소에 은은한 행복감으로 충만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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