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는데 듣는 사람이 잘 모르는 이유나 사실을 간단하게 말할 때 쓰는 구어 표현 ~거든요를 가르치는 중이었다. 필리핀에서 온 케넷 씨가 머뭇거리며 그건 화났을 때 쓰는 말 아니냐고 물었다. 우리는 어떤 일이 내키지 않을 때, 혹은 누군가의 말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을 때 됐거든! 아니거든? 싫거든?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보통은 친구 사이에 쓰는 말인데 케넷 씨는 어떤 상황에서 그런 표현을 들어봤을지 궁금했다.
S: 회사에서 회식할 때, 사장님이 술을 따라주는데 그만 달라고 하고 싶어서 “됐거든요.”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라면서 기분 나빠했어요.
케넷 씨는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당시 상황을 이야기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되다를 be done, be completed 정도의 의미로 쓴 것 같았다. 술이 충분히 찼다는 의미로. 서로 마음을 상하게 할 의도는 없었으되, 한국인으로서는 상대가 괘씸했을 테고, 외국인으로서는 당황스러웠을 풍경이 절로 그려졌다. 하여 케넷 씨는 됐거든요라는 표현이 나쁜 거라 여겼을 텐데 수업 시간에 ~거든요를 가르치니 혼란스러웠을 수밖에. 머리에서는 그때의 일만 맴돌아 수업 내용은 들리지도 않았을 테고.
나는 됐거든, 아니거든, 싫거든, 이런 표현이 더는 듣기도 싫다, 네 의견에 반대한다, 그런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고 알려줬다. 그럴 때 보통은 발음이나 표정에서 화난 느낌이 들 거라며 시연도 해 줬다. 물론 때로는 친구 간에 장난으로 할 때도 있고, 무미건조하게 하면 어쩐지 더 화난 느낌이 들 수도 있다고 했다.
설명하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배우는 입장이라면 아, 쫌!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