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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Apr 29. 2020

나의 욜로 (YOLO) 이야기

- 당신의 'YOLO'는 무엇인가요? -

1. 첫 번째 YOLO '등산'


사무실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어떻게든 풀어야 했다. 뭐가 좋을까? 뭐에 이끌려 갔는지 모르겠지만, 동대문으로 갔다. 등산 용품점들이 즐비해 있다. 한 상점에 들어가 "등산을 시작할 건데, 초보라서 잘 모르니깐 대충 필요한 장비들을 챙겨달라"라고 했다. 고어텍스 등산화와 재킷, 티셔츠, 배낭 등을 챙겨주면서 이 정도면 등산을 시작할만할 거라고 하신다.


주말에 북한산을 찾았다. 서울에서 산지 10년이 넘었지만, 멀리서 바라만 보았을 뿐, 북한산을 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마침 서울에 폭설이 내렸다. 등산을 위해 북한산을 찾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그런데, 입구에서 관리 아저씨가 입산을 막는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못 올라간단다. 아니, 큰 맘먹고 50만 원 넘게 장비 사서, 2시간이 넘게 걸려 왔는데 못 가게 하시다니, 너무 하시네~ 사정을 얘기하고 읍소하니 종이를 한 장 내미신다. 서약서다. 사고가 발생해도 관리소 측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허락만 해주신다면야 백장도 쓰겠습니다.


북한산에 들어서니 온통 눈 천지다. 아무도 걷지 않은 눈 길... 뽀드득뽀드득, 뒤돌아보니 저 멀리부터 눈 위에 내 발자국만 남아있다. 중턱쯤 올랐을까?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이마엔 땀이 송송 맺혔다. 바위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산을 오르니 사무실 생각이 안 나네?"


산을 오르면서 온전히 내 호흡과 발걸음에 집중하니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 사람들의 생각이 눈 녹듯 사라졌다. 멋진 풍경은 보너스였다.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행복했다.


좋아! 앞으로 정신적으로 힘들 수 록 더욱 몸을 혹사시키는 거야. 즐겁게 사는 거야! 왜냐면 한 번뿐인 인생이니까!



2. 두 번째 YOLO '히말라야'


매주 주말에는 북한산을 찾았다. 거짓말 보태서 백번은 간 것 같다. 일요일만 가는 게 아쉬울 때는 침낭 하나 들고 토요일에 가서 일요일에 내려왔다. 사람들은 그걸 '비박'이라고 부른단다. 백운대 뒤로 돌아가면 2미터 정도 되는 넓적한 바위가 나오는데, 거기에 침낭을 펴고 잤다. 밤에 올라 서울의 야경을 보고, 아침에 해돋이를 보며 일어났다. 당일치기 산행이 부족하면 지리산으로 떠났다. 2박 3일 동안 지리산에 푹 파묻혀 있다 돌아왔다. 일이 힘들면 힘들수록 산으로 갔다. 몇 번 지리산을 갔더니 지리산도 부족했다. 그때 히말라야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안나푸르나였다.


안나푸르나는 8,091미터의 산으로 세계에서 8번째로 높다. 네팔에 있다. 2주짜리 휴가를 내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떠났다. 안나푸르나 산을 향해, 하루에 8시간 이상, 아침부터 저녁까지 걸었다. 땡볕에, 고산병에, 수많은 계단에 힘들었지만 내 인생 최고로 행복했다. 내친김에 안나푸르나 정상까지 가고 싶었지만, 그곳은 나 같은 범인이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안나푸르나에서 내려오며 안나푸르나 여신에게 두 가지를 약속했다.


"매년 안나푸르나를 찾아오겠습니다"

"어떤 여자라도 저의 안나푸르나 여행에 동행해 준다면 그녀와 결혼하겠습니다"


안나푸르나는 '풍요의 여신'을 상징한다고 한다. 나에게는 '약속의 여신'이었다. 나는 매년 안나푸르나를 찾았고, 나중에는 에베레스트, 랑탕까지 발을 넓혔다 (지금까지 네팔만 11번 다녀왔다).


수년 뒤 한 여승무원이 나의 꼬임(나는 '외모에 반해'라고 주장하지만 그녀는 '사기당해'라고 우긴다)에 빠져 안나푸르나 여행에 동행했다. 나는 약속을 잊지 않고, 안나푸르나 여신 앞에서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하였고, 우리는 6개월 뒤에 가족이 되었다.


북한산 비박 중, 잠이 덜깬 모습이다 / 둘만 가면 위험(?)하다고 동기 승무원도 데리고 가 달라고 했다. 두 여인 중 누가 나의 평생 인연이 되었을까? (고민할 필요 있나?).



3. 세 번째 YOLO '댄스, 댄스'


욜로 인생을 위해 '산' 다음으로 찾은 취미는 '춤'이다. 주중에는 산을 갈 수 없어, 아쉬웠다. 몸을 혹사시킬 수 록 그 고통을 잊기 위해 뇌에서 무슨 호르몬이 나온다고 하던데, 내게는 그 호르몬이 필요했다.


그 호르몬을 찾아 인재개발원 앞에 있는 88 체육관을 찾았다. 수십 가지의 운동 프로그램이 있었다. 어떤 걸 해야 호르몬이 많이 분출될까? 천천히 체육관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헬스, 스쿼트, 골프...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행복 호르몬이 별로 나오지 않나 보다. 멀리서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들린다. 무슨 운동을 하는 곳일까? 음악에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에어로빅이었다. 덩치 큰 아줌마들이 (에어로빅하는데 왜 덩치가 크지? 행복 호르몬을 많이 드셔서 그런가?) 신나는 음악에 맞춰 온 몸을 흔들고 있었다. 다들 즐거운 표정이다. 저런 표정이라면 행복 호르몬이 많이 나온다는 증거다. 이거다. 나도 해보자.


다음 날,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다시 에어로빅장을 찾았다. 나에게 집중된 아줌마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사의 동작을 따라 했다. 에어로빅은 전신 운동. 몸뿐만 아니라 고함도 외치며 미치도록 흔들어 댔다. 금세 온몸이 땀범벅이 되고, 심장은 터질 듯 쿵쾅거렸다. 그럴수록 행복 호르몬은 솟구쳤다.


나는 내가 이렇게 춤에 소질이 있는지 몰랐다. 강사가 한번 동작을 보여주면 다 따라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정확하게, 힘 있게, 때로는 요염하게.... 강사도 놀라는 눈치다. 1년 정도 했더니 나보고 "에어로빅 강사 할 생각 없냐"라고 묻는다. 잠깐 고민했지만, 안 하겠다고 했다. 나는 대한항공 칼맨이기 때문에.... 군대 시절부터 사모해왔던 대한항공을 떠날 순 없었다.


에어로빅 만으로는 부족해 나중에는 재즈댄스와 탭댄스, 스포츠 댄스도 배우러 다녔다. 배울 때마다 강사들이 나보고 "강사 해 볼 생각 없냐"라고 묻는다. 3년 정도 에어로빅을 했다. 이사를 가면서 88 체육관을 떠나야 했고, 승무원이 되면서 불규칙한 스케줄에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었다.


이후, 춤은 내 삶에서 멀어져 갔고, 내 삶에 군살이 끼기 시작했다. 에어로빅에서 멀어진 지 15년이 지났을 즈음, 동네에 에어로빅 체육관이 생겨 다시 시작했다. 너무 행복했다. 옛날의 행복 호르몬이 다시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이년 정도 에어로빅을 하다가 요즘은 줌바에 빠져있다. 처음 줌바를 배우러 간 날, 운동을 마치고 체육관을 나서는 데 아줌마들이 묻는다. "어디서 배우셨어요?" 오늘이 첫날이라니깐 놀라는 눈치다. 강사가 묻는다. "줌바 강사 해보실래요?"


인생에서 한번은 '춤'에 꽂혀봐라. 진짜 신나고, 행복하고, '짱'이다. 빨간 옷 입은 남자가 나다. 하긴 남자는 나 혼자다.




* 춤추는 회원들이 대부분 여자들이다 보니 남자들이 입문하기에 쉽지 않다. "무슨 남자가 춤을 춰. 바람나는 거 아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춤은 적어도 내게 있어 최고의 운동이다. 몸이 건강해지는 것은 물론 스트레스 풀기에 그만한 운동이 없다.


* 비행을 할 때는 호텔에서 체류하는 동안 GYM을 찾아 춤을 춘다. 요즘은 유튜브에 다양한 안무가 올라와 있어, 그걸 보며 따라 한다. 춤을 추는 동안은 세상 행복하고 자유롭다. 삶이 퍽퍽하고 재미없는 사람에게 한 춤 권한다. 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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