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ppy Flight Apr 30. 2020

내가 가장 잘하는 일

- 나의 천직 (天職)을 찾다 -

1.

좋아하는 것에 '꽂'히면 뵈는 게 없다. 신나게 춤추며 땀 흘리고, 산에 올라 멋진 풍경 감상하며, 틈틈이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오니 스트레스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 나를 압박하는 업무 보고서, 프로젝트에 골몰하느니 내가 좋아하는 것 - 춤, 등산, 트레킹 - 만 생각하기로 했다.


놀기만 한건 아니다. 평소에 좋아하던 외국어 공부도 시작했다. 주말에는 중국어 학원, 일본어 학원, 영어 학원까지 세 개를 한꺼번에 다녔다. 학원을 마치고 침낭을 들고 북한산에 가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마라톤 (하프까지 뛰어봤다)을 뛰러 갔다.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동호회를 찾아 여러 사람들과 함께... 주중이나 주말이나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신나게 놀았다. 에어로빅, 등산, 마라톤 외에도 산악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 사진 등 여러 가지 취미를 한꺼번에 즐겼다 (산악자전거 타고 가서 등산 하기. 인라인 스케이트 타고 가서 사진 찍기. 산에서 내려와서 마라톤 뛰러 가기). 일을 잊기 위해 논건대, 열심히 놀수록 일도 더 재밌게 느껴졌다. 죽을 것 같았지만, 그럴수록 행복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니 어느 순간 업무도 손에 익어 처음큼 힘들지도 않게 되었다. 내 아이디어도 상사에게 어필하고, 보고서도 금새 써냈다. 사무실 업무가 톱니바퀴 마냥 딱 맞진 않았지만, 원활하게 굴러갈 정도는 해낼 수 있었다.


그럴 즈음 '강사 교육'을 받게 되었다. 각 부서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모였다. 다들 짧게는 수 년에서, 길게는 십 년 이상 남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 베테랑들이었다. 강사 경력이 없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2박 3일 동안 연수원 (나의 10년 뒤 소원이 묻혀 있던 소나무가 있는 그곳)에서 합숙 교육을 받았는데, 강의 자료를 만들고, 시범 강의를 준비하느라 다들 새벽까지 작업을 해야 했다.


나는 '수하물 업무의 이해'로 강의 계획과 교육을 짜고 강의 파일을 만들었다. 교육 마지막 날, 각 부서 팀장님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데 베테랑 강사들도 긴장감에 버벅대거나 실수를 한다. 강의 경험이 없는 나는 어떻겠는가! 싶었는데 의외로 나는 전혀 긴장이 되지 않고, 너무 재미있었다. 강의 내용을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아이디어가 팍팍 떠올랐다. 중간중간 우스개 소리도 해가면서 강의를 진행했더니 반응도 좋다. 교육을 마치고 과정을 진행한 팀 소속 팀장님이 나를 부르신다.


"오늘 들은 강의 중에 네가 제일 잘했다. 기존 강사들보다 훨씬 낫더라".


평소 무뚝뚝하고, 거친 언사로 직원들이 무서워(?) 하던 팀장님이셨는데, 내게 그런 칭찬을 해주시다니, 의외였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리고 몇 달 뒤 사내 강사가 되었다. 얼굴 빨간 내가 남들 앞에 서서 얘기하는 강사 업무를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있게 강의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관련 책을 읽으며, 유명 강사들의 강의를 쫓아다니며, 강의에 '꽂'혀, 강의를 배웠다. 그렇게 배운 강의 스킬은 나중에 객실 부서에서 신입 승무원 훈련강사 업무를 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대한항공 직원이라면 교육을 받기 위해 일 년에 몇 차례 인재개발원에 와야 했다. 승무원들과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친절하고 스마일도 좋아서 서비스도 잘하겠다"며 솔깃한 칭찬을 헸다. 인재 개발원 근무 경험을 통해 회사 내 다양한 부서 사람들과 인맥을 맺을 수 있었고, 훗날 비행을 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2.

인재개발원에서 근무한 지 어느덧 4년이 지났다. 새로이 시작한 강의 업무도 재미있고, 내 밑에 후배들도 들어왔다. 그리고 떠날 때가 되었다. 일반직은 보통 3년이나 4년 주기로 부서를 옮기는데, 나에게도 그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어디로 갈까? 고민할 것도 없이 현장으로 가야지. 사무실도 좋지만, 나는 현장 체질. 머리 쓰는 업무도 싫진 않지만, 4년 동안 너무 많이 썼더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소나무에 묻어둔 10년 뒤 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장으로 가야 한다.


팀장님도 "원하는 부서로 보내주겠다"라고 하시더니 어느 날, 넌지시 물으셨다. "너 승무원 한번 해볼래?"


지금은 남승무원 (스튜어드)을 공채로 뽑고 있지만, 당시 몇 년 동안 남승무원 공채가 없었다. 기내 업무는 남승무원도 필요한데 공채가 없다면 어떻게 남승무원을 충원했을까? 바로 '사내 파견 제도'를 통해서다. 일반직에서 근무하는 남직원 (여직원 포함) 중에서 몇 가지 조건만 맞으면 객실 승무원으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 조건 (외모와 미소?)에 내가 딱 맞았다. 마침 이번 팀장님께서는 객실 부서에서 근무하신 경험이 있어,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나를 승무원으로 적극 추천해 주시겠단다.


객실 승무직은 대한항공에서의 내 경력 개발 계획 (Career Path)에 들어있지 않았는데, 신갈 연수원 소나무 아래 묻어둔 내 '10년 뒤 소원' 메모지에 '승무원 되기'가 적혀 있지 않은데....


"너 여행 좋아하잖아. 너 사진 좋아하잖아. 너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잖아. 내가 보니 넌 승무원 하면 딱!이다. 그리고 너 싱글이잖아. 객실에 괜찮은 여자 많다. 참한 승무원 만나 결혼해".


여행, 사진...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참한 승무원... 귀가 솔깃해진다. 사실 몇 년 동안 열심히 놀았지만 항상 마음 한 켠은 허전했다. 취미 생활과 동호회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도 내 인연을 만나지는 못했다 (내 눈이 높았음을 고백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즐길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좋을 텐데. 그동안 회사에서  업무상 수많은 여승무원을 만났지만, 그때마다 마음에 드는 승무원이 있었지만, 수줍음에 고백하지 못하고, 고백도 못하면서 혼자 백 그릇의 김칫국물을 들이키며 혼자서 가족계획 (1남 1녀, 조절 실패 시 2남 2녀 정도?)을 세웠으면서도 왜 난 여전히 혼자일까? 나저나 군대 시절 내 펜팔 여고생... 비행 잘하고 있을까? 승무원 돼서 그녀를 만나볼까? 팀장님의 제안을 듣고 나는 '꽃밭'에 뛰어들기로 했다. 연수원 땅속에 묻혀 있는 내 소원 리스트에 없는 승무원의 길로 들어선 것이었다.





* 현재 대한항공은 '공채'와 '사내 파견'제도로 남승무원을 충원한다. 둘 다 장점이 있는데, 남승무원을 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일반직으로 입사 후 '사내 파견'제도를 활용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항간에는 일반직 공채 입사가 더 힘들다고 하는데, 경험자로서 그 말이 맞다고 동의한다. 대신, 남승무원 공채 입사자들이 더 잘생겼다. 몸도 좋고 ^^)


* 일반직 근무 경험은 비행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항공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항공기가 어떤 업무 절차로 운항하는지 이해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비행 중 발생하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물론, 남승무원으로 입사해서 일반직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어쨌거나, 승무원을 하는 데 있어서 일반직 업무 경험은 많은 도움이 된다.


* 승무원이 돼서 '그녀'를 만났을까? 궁금하시죠? (안물안궁?) 10명 이상 리플이 달리면 다음 글에 공개하겠습니다 (안물안궁!!!)


https://youtu.be/eSd7rF5POUc -

* 2016년 공채 남승무원 환영회 동영상이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나온다. 참고로 나는 여기에 없다. 다들 '존잘'이다.



이전 05화 나의 욜로 (YOLO)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