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방장 양조장 Jan 29. 2020

[월간 주방장 2020] 1월호

酒방장의 새해다짐? 더 여럿 마실 거예요.

2020년입니다! 두 숫자가 반복되고 맞물려있어 딱 떨어지는 듯한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가 야무지게 밝아올 동안 방장의 브런치는 잠잠했다고 합니다. 2019년 12월호가 이전 글이라니. 가장 애정 서렸던 공간에 너무 소홀했던 건 아닌지, 새해의 첫 글부터 반성으로 시작합니다.


지각생에게 왜 늦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늦잠을 잤기에 늦었겠지만, '시계를 잘못 봤다', '버스를 놓쳤다' 등 비난의 무게를 덜 그럴듯한 핑계를 대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酒방장 브런치가 왜 잠잠했는지 핑계를 대보자면, 작년과 올해 초에는 공간에 집중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었습니다. 유형의 오프라인 공간이 생기자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 신경을 써야 했고 손봐야 했어요. 양조장이니 술을 부지런히 빚어야 했고, 비스트로이니 음식과 술은 항상 부족하지 않게 만들고 채워두어야 했어요. 더불어 한국술을 즐길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있었기에 양조 클래스와 전통주 시음회까지 준비하고 여러 애주가들을 공간에 모셨습니다. 모든 게 처음인지라 익숙해지고, 글을 쓸 여유가 생길 때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2020 <월간 주방장> 한국술과 음식 그리고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마시듯이 편하게 읽을  있게 바뀝니다. 주방장양조장 한국술 시음회나 클래스에서 빚는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기록할 예정입니다.

2020년의  글은 <월간 주방장>으로 시작합니다. 새해의  <월간 주방장> 지난 크리스마스에 열렸던 <와인 말고 전통주 디너 시음회> 특별한 한국술과 음식,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굳이 술이 아니어도 만날 이유는 많지만, 술을 마실 이유로 만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하겠죠.



춥지도 않고 눈도 안 오니 정말 겨울 맞나 싶었습니다. 날이 따듯해서 설레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캐롤 덕분에 조금은 들뜨는 크리스마스 연휴였습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설레기에 주방장양조장에서는 조금은 특별하게 기념해보고자 했어요.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커플세트 같은 케이크와 와인 말고, 한국술과 한식이 주인공이 되는 자리를 꾸몄습니다. 총 8가지의 탁주와 전식(에피타이저)로 시작해 본식(메인) 그리고 후식(디저트)로 이어지는 간단한 코스요리까지 말이죠.



酒방장이 공간을 열면 가장 먼저 만들고 싶었던 시간이 바로 '시음회'입니다. 술만 한 잔씩 조금씩 맛보는 시음회가 아니라, 술도 넉넉하게 마셔보고 어울리는 음식까지 페어링 해서 즐길 수 있는 ‘디너 시음회’를 염두에 둔 것도 그런 이유예요. 제가 좋아하는 걸 해야 타인 역시 한국술에 대한 낯섦을 거두고 좋아해 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탁주 시음 리스트도 최대한 다양하게 선정했습니다. 물론 술과 함께 제공되는 음식들의 밸런스를 맞춰 순서를 조정했고요. 식전 빵과 애피타이저로는 막걸리 발효빵&이화주 스프레드 그리고 단감 치즈 샐러드/ 메인 음식으로는 소갈비찜&삼색 나물무침/ 디저트로는 酒방장 표 쑥떡과 곶감말이를 준비했습니다. 페어링 한 한국술은 점층적인 알코올 도수도 고려했지만, 술의 질감과 당도와 산미를 우선으로 했습니다. 음식이 겉돌지 않고 우리술과 좋은 마리아주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선택해야 하는게 좋기 때문이죠.




2019/12/24-25 주방장 양조장 디너 시음회 페어링 리스트


#식전빵

'배꽃이 필 무렵 담그는 술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 이화주(梨花酒)' 그리고 '막걸리로 발효해 직접 만든 빵'

: 이화주는 술샘의 이화주를 스프레드처럼 빵에 발라서 먹도록 제공되었습니다. 약간의 알코올 향이 마치 잘 발효된 크림치즈같이 부드러워 막걸리 발효빵(사워도우)과 잘 어울렸어요. 처음엔 스프레드인 줄 알고 드신 분들은 '이거 술이야!'하고 놀라셨죠. 옛날 옛적 부인들이 술을 편하게 마시지 못하니 이화주를 주전부리처럼 떠먹었다고 하는데, 티 내지 않고 뉘엿뉘엿 취했을 생각을 해보니 역시 술은 어떻게든 마시고 즐기면 좋은 것 같습니다. 술샘 이화주는 8도이며 100ml로 작은 잼병에 담겨있어 설마 취할까 싶지만, 뭉근한 취기를 불러일으키기에 이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에피타이저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논산 찹쌀로 빚어 깔끔한 맛을 자랑하는 우렁이쌀dry', '청량감이 인상적인 김포금쌀로 만든 선호생막걸리' 그리고 '겨울철 아삭한 식감으로 최고인 단감과 숙성치즈를 곁들인 샐러드'

: 단감을 깎아 먹는 과일로만 생각했다면, 겨울 단감의 진가를  맛본 거라 생각합니다. 쌉싸름한 채소와 곁들여 샐러드로 즐기면 감의 단맛과 연한 향이 치즈 풍미와 어우러져 색다른 조합을 자랑합니다. 상쾌한 샐러드엔 비교적 가벼운 탁주를 매치하면 거부감 없이 꿀꺽꿀꺽 넘어갑니다. 깔끔하게 감도는 찹쌀 풍미가 매력적인 7.5도의 우렁이쌀 드라이, 그리고 보다  가볍고 청량한 선호 생막걸리 식전주로써 입안에 뉴질랜드 초원이 펼쳐질 정도로 상쾌함을 선사합니다. 물론 막걸리이기에 충청남도 시드니 같은 느낌으로 말이죠.



#메인 : '감칠맛에 와인보다 바디감이 풍부한 술취한원숭이', '석류와 히비스커스라는 신선한 발상으로 만들어낸 걍즐겨', '발효 중인 술에 증류주를 넣어 여름을 지내는 술인 과하주' 그리고 '저온조리 기법으로 부드럽게 만들어낸 갈비찜에 세 가지 나물무침'

출처 - 시음회 참석자 인스타그램 포스팅

: 갈비찜을 정말 사랑합니다. 사실 고기라면 다 좋아하지만, 갈비찜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달콤하고 짭조름한 양념이 뼈 속까지 베어 들어가 다른 소스가 필요 없고, 결대로 찢어져서 몇 번 씹지 않아도 입안에 녹아들기 때문이죠. 보통 갈비찜을 먹을 때 간이 세지 않고 슴슴한 나물을 자주 곁들이기에 삼색 나물도 함께 준비했습니다. 갈비찜엔 빨간 술인 술취한 원숭이와 걍즐겨, 그리고 과하주로 깔끔하게 끝날 수 있게 페어링 했어요. 백팔번뇌가 떠오르는 10.8도의 빨간 술, 술취한 원숭이는 보기와는 달리 약간은 텁텁할 수도 있지만 묵직한 쌀의 드라이함으로 고기 맛의 차원을 높여줬습니다. 다들 '토마토 주스'를 떠올리고 마셨지만 예상을 완전 빗나간 맛과 향에 기시감을 느꼈죠. 다음 술 8도의 #걍즐겨는 원숭이보다는 약간의 단맛과 미미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힙하고 쎈 이름과는 달리 츤데레같은 느낌으로 입안을 즐겁게 만들어줍니다. 메인의 마지막 술, 과하주는 처음 달달함에 속아 뒤따라 오는 증류주의 기운이 느껴지는 술이었습니다. 여름을 그냥 보내기 싫은 우리의 마음처럼, 과하주는 끈적한 질감과 여운으로 아쉬움을 남겼죠.



#디저트 : ‘돌아누우면 자꾸 생각나는 꽃잠막걸리', '입에 머금은  있고 싶을  삼키기 아까운 석탄주' 그리고 '거피팥고물에 버무린 /단호박떡과 피칸 곶감말이'

: 한식 하면 디저트가  떡이냐고 하지만, 떡만큼 포만감을 더해주고 기분 좋게 식사를 마무리해주는 후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직접 떡도 직접 찌고 만들었습니다. 거피팥고물을 단호박/쑥떡에 버무려 폭신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을 살렸고, 곶감말이는 곶감이 피칸을 품어서 촉촉함속에 아삭 거리는 재미를 찾도록 했죠. 그럼 크리스마스 디너의 대미를 장식할 술은 어떤 술이었을까요?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다고 하듯이 酒방장이 아끼는 꽃잠 막걸리 함께 마셨습니다. 병뚜껑을 돌리면 취익-하고 지개미가 뭉게구름 피어오르듯 승천하는  술은 참한 이름과는 달리 조심히 다뤄야 하는 예민한 술이기도 합니다. 꽃잠은 톡톡 쏘는 탄산과 함께 일품인 산미가 특징이며,  잔을 비우면 입안에 곡물향이 맴돕니다. 다음에 이어졌던 석탄주 시음회를 끝내기에 애석하고 탄스러울 정도로  맛과 , 그리고 알코올의 매끈함이 매력적인 술입니다. 아쉬움을 남겨야 다음이 기약되는 만큼 주방장 양조장의 , 석탄주로  탁주 시음회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전통주라는 새로운 분야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시간. 앞으로 자주 찾아가고 싶다.'

시음회에 찾아주셨던 한 분이 남겨주신 후기처럼, 한국술은 알면 알수록 더 찾아가고 싶은 그런 세계일겁니다. 무궁무진한 세계를 더 맛있게 그려나갈 수 있도록, 주방장양조장을 다양한 술과 맛으로 다채롭게 채워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의 새해 다짐은 바로 더 여럿 마시는 것입니다. 날마다 새로이 출시되는 한국술을 미루지 않고 경험해보면 폭넓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술에 한해서는 사치스러운 한 해가 되길 바라며 2020년 첫 월간 주방장을 마무리합니다.



▶ 다음 2월호에서는 설날을 맞이해 보약처럼 즐겨 본 <미리 설날 약주 시음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월간 주방장> 12월호 ver.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