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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황작물 Dec 29. 2022

소곱창집에 간 비건 지향인

까치가 되고 싶었습니다만

https://brunch.co.kr/@ssngle/151

(위 글과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지난 몇 년 간 비건을 지향했다. 빈틈은 많았지만 방향만큼은 확실했다. 세상에 널린 동물 소비를 내가 막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가담하지 않고자 했다.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겠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에 기대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덕분에, 날 쥐고 뒤흔들던 죄책감의 무게는 조금씩 가벼워졌다. 나는 부끄러움 없이 인정한다. 타자가 아닌, 나를 위해서 비건을 지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런 내가, 공장식 사육으로 동물을 학대하고 죽이고 토막내 구워 먹는 사업이 잘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온 세상 모든 고깃집과 가죽 브랜드들이 뿅 하고 사라지길 소망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줄어들길 바라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것이 흥하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빠의 소곱창집이 잘 되길 바랐다. 수 년 간 지속해 온 나의 실천에 우드득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식이라면, 내가 비건을 지향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뭐가 남는가. 


곱창집 영업이 잘 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무척 기뻤다. 코로나 시국에 장사가 잘된다니 어찌나 다행인가. 그러나 곧바로 찾아온 것은 나의 이중적인 태도에 대한 뜨악함이었다. 언제 한 번 가봐야 하는데, 하는 마음과 더이상 심란해지기 싫은 생각이 부딪치며 차일피일 시간은 또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소식이 들렸다. 고모와 아빠를 거쳐 온 이야기에 따르면, 이 시국에 장사가 잘 된 적은 없다고 한다. 허세인지, 걱정을 끼치기 싫은 건지 오빠는 여전히 잘 된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거였다. 새언니는 이제 생활조차 어렵다고 그녀의 시어머니에게 하소연을 했다 한다. 


아찔했다. 내가 한 번 간다고 매출이 급상승할 것도 아니고, (당시 코로나로 인한) 9시 이후 영업 금지가 종료될 것도 아니지만, 가만히 있는 것이 옳은 것인가. 나는 보답할 기회를 그토록 찾지 않았나. 큰 도움은 아닐 지라도 작은 응원을 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비건을 지향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름의 신념을 걸핏하면 버리고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마구 흔들리는 것이 옳은 것인가? 공장식 축산에 돈을 지불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고민은 빙글빙글 돌며 내 발목을 잡았다. 고마운 이들을 살피지 않고 외면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구체적인 대안들을 고민했다. 돈을 보낼까. 말이 되지 않았다. 선물을 보낼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직접 가는 것이 답이었다. 무엇보다 직접 응원을 전하고 싶었다. 내가 진정 오빠의 성업을 바란다면. 


나는 공장식 축산으로 소를 키우고 죽이는 곱창집의 번창을 바라나? ... 바랐다. 


곱창을 무척 좋아하는 친구가 떠올랐고 약속을 잡았다. 의문이 졸졸 따라왔다. 내가 먹지 않는 것, 먹고 싶지 않은 것, 누구도 먹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대접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주는 것이 진정한 배려라지만, 진짜 그런가. 의문이 떠오를 때마다 애써 무시하려 했다. 


곱창집으로 향하는 길엔 현실적인 고민을 했다. 팔아주겠다고 온 손님이 음식을 먹지 않는 것 또한 실례 아닌가. 나는 무엇을 먹을 수 있나. 검색으로 메뉴를 살폈다. 채식인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서비스로 나오는 찌개에도 선지가 듬뿍 들어있다 했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친구 커플과 우리 커플이 모였다. 나는 넉넉한 양의 곱창을 주문했다. 다 먹고 더 많은 양을 주문하길 바랐다. 많이 먹지 않을까봐 애가 탔다. 그러면서도 생각했다. 이게 무슨 짓이지. 나는 지금 뭘하고 있는 거지? 많이 먹길 바란다니, 제정신이야?


남편을 제외한 누구도 내가 곱창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안주 없이 소주를 먹다가,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기름에 구운 떡과 감자, 부추를 먹었다. 덕분에 확인할 수 있었다. 더이상 이건 내게 음식일 수 없구나. 


얼큰히 술이 들어갔을 때, 홀과 주방을 부지런히 오가며 일하던 오빠가 다가와 물었다. 


"너, 곱창 못 먹지?"



내가 답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리자, 친구와 친구 남편도 물었다.

"지금까지 안 드셨어요? 전혀 몰랐어요. 설마 비건은 아니시죠?"


결국 나는 또 한 번의 실례를 저질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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