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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황작물 Jan 03. 2023

비건에 가깝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비건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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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2편의 이야기와 이어집니다.)


사람을 불편하게 하며 선의라는 말로 포장할 수 있을까. 살아오는 내내 누군가의 악의보다 선의로 인해 더 자주 곤란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또는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해 내 입에 죽은 동물을 넣으며 나름의 신념을 버려야 하나. 나는 여전히 답을 알지 못한다.


곱창집에서 말하기에 적합한 화제는 아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밝히는 것이 낫겠다 싶어 비건을 지향한다고 답했다. 입에 맞지 않아 안 먹는 것을 남들 먹이려고 불러낸 거라면 이상하니까. 하긴 비건인데 불러낸 것도 이미 이상하다만. 


친구의 남편은 내게 언제부터 비건이 되었는지,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물었다. 오빠는 그의 질문까지 듣다가 자리를 떠났다. 


내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취해서라기보다는(그 때문도 있지만) 랜덤으로 아무거나 말했기 때문이다. 내겐 수없이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고 그것들이 별개가 아니며 서로 엮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육식을 접기로 했다. 하지만 그 고리를 설명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라, 마치 추첨을 하듯 때마다 아무거나 꺼내든다.


오빠는 십여 분쯤 뒤, 다시 우리 테이블로 왔다. 그의 손에는 두툼한 돈까스가 있었다. 오빠가 직접 튀겨온, 메뉴에는 없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돈까스가. 



내가 곱창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오빠는 분명 내가 비건이라는 말을 들었다. 친구의 남편이 내게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물었을 때도, 오빠는 곁에 있었다. 그 대화는 오빠도 합세해 술을 따르고 건네받고 또 술잔을 부딪치며 마시는 동안 이뤄졌다. 


내가 대답하기 전에 오빠는 자리를 떴지만, 내가 비건이라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오빠는 돈까스를 튀겨왔다. 오빠는 비건이 뭔지, 몰랐다. 


즉각 상황을 파악한 우리 일행은 오빠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동생 챙기는 건 오빠밖에 없다며, 이건 또 뭐 이렇게 맛있게 생겼냐며 감탄했다. 오빠는 뭐라도 먹여야죠, 웃으며 말했다. 곧이어 오빠는 자리를 떴고, 나의 당황스러움을 아는 친구와 남편은 우리가 다 먹을게, 걱정 마, 했다. 친구의 남편은 혹시 대체육이 아니냐며 확인했지만 아니었다. 영락없는 돼지였다. 


비건을 알고 모르고는 별게 아니다. 나는 내가 모르는 외국어를 섞어서 말하는 사람들을 마주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문맥상 뜻이 파악되지 않는다면,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뜻을 묻는다. 굳이 그 상황에서 누군가 부끄러워해야 한다면 묻는 사람이 아닌, 정확한 한국어를 말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좀 다른 문제였다. 그 누구도, 일말의 의도도 없었지만, 우리는 정보의 비대칭으로 4:1이 되었다. 오빠는 아무것도 몰랐고, 다들 금세 잊을 테지만, 어쩐지 따돌림의 가해자가 된 것만 같았다. 오빠는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었고 나는 가장 좋지 못한 것으로 보은했다. 


돈까스를 먹고 싶었다. 단언컨대 식욕 때문은 아니다. 하지만 먹을 수 없었다. 금방 나는 내 입으로 나를 정의했으니까. 곱창으로 이미 배가 부른 남편은 나를 대신해 돈까스를 먹었다. 그릇을 비울 때까지. 결국 나는 그에게도 죄를 지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오빠는 볼일 때문에 나가봐야 한다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빠는 내가 가져가 냉장고 속에 넣어 둔 케이크를 잊지 말고 챙기라 했고, 나는 애초부터 오빠를 위해 사 온 것이라 했다. 오빠는 놀라며 고맙다 했다. 오빠가 떠난 뒤, 다른 직원에게 계산을 하며 나는 준비해 간 상품권을 건넸다. 물론 오빠에게 전해달라 부탁하며.


오빠는 곧 전화했다. 이건 대체 왜 주고 가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조카들 핑계를 댔다. 애들 선물이라도 한 번 사주고 싶은데 내가 뭘 아나. 오빠가 좀 챙겨줘. 내가 이래뵈도 고모잖아. 무심한 척 말했지만 준비한 말이다. 남편에게 제일 그럴 듯한 말을 골라달라 했고, 상품권과 현금 사이에서 무수히 고민했다. 하지만 나는 까치도, 제비도 되지 못했다. 


친구네 집에서 2차가 이어졌다. 친구의 남편은 안주를 사왔다. 그 중에는 설탕토마토가 있었는데, 나는 제일 많이, 우걱우걱 먹었다. 친구의 남편이 나를 위해 사왔기 때문에. 그는 완벽한 비건 메뉴는 이것말곤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설탕이 씹히는 걸 싫어하고 설탕 뿌린 토마토도 질색하지만, 맛있게 먹었다. 끝까지. 


그리고 생각했다. 왜 이건 되고 그건 안 되나. 그건 오빠가 '파는', 오빠가 '내어준' 음식인데. 누군가는 비건이 '연결'을 의미한다 했다. 눈에 보이고, 또 보이지 않는 이들과의 연결이라고. 그러나 나는 곁에 있는 이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고, 타자와 제대로 연결되지도 못했다. 모든 것이 어정쩡하고 엉망진창이었다. 그날의 일은 이걸로 끝이다.




나는 비건적인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인간도, 비인간 동물에게도 해를 덜 끼치고 싶다. 그러나 그날 이후, 비건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가급적 식물을 먹지만 비건은 아닌 사람. 그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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