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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도, 떡볶이를 먹고 싶지도 않아

좀 더 나를 돌보아야겠어

여름이 이렇게 힘든 계절이었던가.
쨍하게 파란 하늘과 짙은 초록빛이 좋아
여름은 늘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었다.

지금껏 더워서 입맛이 없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날이 더워도 숭덩숭덩 썬 수박에 시원한

보리차 한잔이면 없던 입맛금세 돌았으니까.

그러나 어쩐 일인지 음식이 도통 먹히지 않는다.

매번 대충 끼니를 때우던 라면도 질려버렸고

인덕션 덮개를 걷고 물을 끓일 의욕조차 없다.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해왔건만

새삼 요리에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지 놀 뿐이다.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내게 특별한 것이다.

내가 사랑표현방식 중 가장 큰 방법이니까.

요리는커녕 생존을 위한 음식조차 주지 않다니...

알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나는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뜨거운 아침 햇살 더워서 눈을 뜨지만

옴짝달싹 할 기력이 없어서 종일 누워있는다.

그렇게 마치 병든 닭처럼 힘없이 앉아있거나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하는 게 일과다.


해 질 녘 선선한 바람이 창을 타고 들어와도

선뜻 집 밖으로 나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좀 나가서 걷고 나면 몸도 맘도 좋아지련만

한 달 째 집안에 박혀 숨쉬기 운동만 겨우 하고 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온종일 통증에 시달린다.

어떤 날은 목 머리가, 어떤 날은 등 허리가.

그냥 뜯어내서 갖다 버렸음 싶을 만큼 아프다.

아파서 우울하고 우울해서 아픈 악순환 속에서

나는 하루를 버티기 위해 매일 진통제를 먹는다.


원인도 해결책도 없는 막연한 심신의 고통은

사람을 부정적이고 예민하고 무력하게 만든다.

무언가 나아질 거라는 기대 없는 마음속에

무망감이라는 무서운 감정이 나를 자주 휩쓴다.


마치 4년 전 그 해 여름 같다.

세상과 단절하고 집에만 박혀있던 그 여름.

그때도 지금처럼 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고

그때도 자주 삶을 내려놓고 싶었다.



예기치 않게 아파서 큰 수술을 받고 한동안

중환자실 신세를 지던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삶이 주는 여러 과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는데

3시간 남짓한 대화 중 한 문장이 유독 맴돌았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어차피 다 이곳에 눕게 될 텐데 왜 다들 그렇게

아등바등 애쓰면서 살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 하고 싶은 거 다하 살아야겠다' 하구요"


그가 삶과 죽음의 언저리를 돌아다니며 배운 건

섣부른 YOLO나 단순한 냉소 따위가 아니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언제든 끝날 수 있는 삶을

좀 더 풍성히 누리며 살아야겠다는 일종의 이었다.


그의 눈에 나는 하고 싶은 것들을 다하며 살아온

부럽고 대단한 인생선배였지만, 내 눈엔 낭만과

꿈에 대해 얘기하며 눈을 반짝이는 그가 부러웠다. 그의 의욕이, 그의 희망이 훨씬 대단한 거였다.


누군가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댔는데

나는 죽고 싶지도 떡볶이를 먹고 싶지도 않다.

꿈도 많고 열정 넘치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체력도 의욕도, 생기도 동기도 모두 잃어버린 기분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내게 그 노래를 추천했다.

들으면 힘이 난다며 언젠가 공연하고 싶댔다.

김없이 잠들지 못하고 깨어 서성이던 어느 새벽, 득 생각나 들은 그 노래는  큰 위로가 되다.

아무리 울어도 울어지지 않는 날에
조용히 파도가 말을 걸어오는 길에
언제까지 머물 거냐는 누군가의 말은
금방 돌아가겠다고 대답해 보지만
나만 또 제자리에 서성이며 남아 있는데

어느 새벽달이 지나가네
난 오늘도 전하지 못한 말들이 있나
파도에 소리쳐봐도 들리지 않으니
그렇게 억지라도 웃어 보이는 건
내일이 있어서야

- 하현상, 등대 -


한참을 없이 듣던 중 한 가사가 귀에 들어왔다.

그리도 나도 모르게 입꼬리에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그것은 나를 좀 더 돌봐줘야겠다는 다짐이자 도망쳐도 아침이 올 거라는 말에 대한 수긍이었다.


나를 좀 더 돌봐줘야겠어
외로움도 저 바다에 날려버리겠어
아무리 도망쳐봐도 아침은 올 테니
그렇게 너를 보며 웃어 보이는 건
등대가 빛나서야


모른 척 외면하고 있던 내 마음에 소리가 들린다.

제발 나를 돌아봐달라는 나의 외침이 들다.

아무것도 고 싶지 않은 지금의 시간이 나면

그래 떡볶이 먹고 싶어 질 때가 오겠지?


https://youtu.be/-P_XC85PgJ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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