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위험에서 벗어나는 방법
< 눈여겨 보아야 할 위험신호 >
1. 입맛이 없다.
2. 계속 잠을 잔다.
3. 자꾸 멍을 때린다.
4.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5. 자기 & 주변 관리가 안 된다.
6. 희망이 없다는 무망감이 든다.
7.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
8. 뭐든 다 내 탓인 것 같다.
9. 사회적 관계를 끊어낸다.
10.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건지
뭐가 그렇게 계속 슬프고 아프고 힘든지
닦달하며 구박하는 건 잠시 미루기로 했다.
그래 뭐가 됐든 우선은 살려내고 보기로
일단은 덮어놓고 정성껏 보살펴주기로 했다.
그렇게 나를 살리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나를 살아나게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필요했다.
돈이 아까워서 못 먹던 음식을 먹이고
좋아할 만한 책과 영화를 보여주었다.
절망을 딛고 일어선, 고난을 이기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돌보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남들에게 해주던 것들을
나에게 해주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왜 나에겐 단 한 번도 해주지 않았을까
어쩌면 이렇게 박하고 가혹했을까 싶다.
혼자 방안에 처박혀 있으니 계속해서
부정적인 생각들이 내 마음을 좀먹었다.
어둑해질 무렵 무작정 집밖으로 나와
냇가 근처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그곳을 거닐고 있었다.
운동하는 사람들, 산책 나온 강아지들
길가에 두꺼비와 물가의 수달까지.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에 있으니
이 모든 이들과 함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혼자 있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 주변에 있는 좋은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굳이 좋은 모습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내 이야기를 듣고 다독여 줄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은 힘없이 앉아있는 내 곁에 머무르며
나의 슬픔과 우울, 눈물과 분노를 받아줬다.
'그럴 수 있지. 그럴만하다. 오죽하면 그럴까'
아무것도 해결해 줄 수 없는 말들이었지만
공감과 위로가 담긴 말은 아주 힘이 셌다.
나는 그들의 지지에 힘입어 나를 이해했다.
어쩌면 내 힘듦을 이해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7년 전 대학원생이었던 그 시절에도
밑바닥을 치며 무너졌던 적이 있다.
아무 보잘것없고 쓸모없이 느껴지는
나를 일으키기 위해 4년 치 대학서류를
몽땅 뽑아 펼쳐놓고 글을 적었었다.
'4년 내내 성적우수 장학생을 놓친 적 없고
과탑과 총대는 물론, 학비와 생활비를 벌며
가족들을 돌본 나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삶의 기록들 속에서 내가 해낸 것들 찾고
그 속에서 존재가치를 확인하며 칭찬했다.
이번엔 내 삶의 기록이 담긴 상자를 열었다.
그 속에는 지금껏 내가 걸어온 삶의 흔적과
20년 간 받아온 편지뭉치가 가득 들어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편지를 눈으로 좇아 읽어가며
종이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마음을 느꼈다.
나는 참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아 왔구나
또 참 많은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왔구나 하고.
마치 죽으려 벼랑 끝에 홀로 올라서 있는데
나를 사랑하는 수백 명이 그곳을 찾아와
우리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금껏 살면서 여러 번 위험신호들을 느꼈다.
가끔은 지인들이었고, 대부분은 내담자였는데
이번에는 내가 나에게 신호를 보내왔다.
늘 남을 살리고 돌보는 일을 해왔으면서
정작 나 자신은 돌보지 못했다니 슬프다.
한편으론 그 신호를 빨리 알아차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 겨우 벼랑 끝에서 뒷걸음질 쳐
한 발자국 아래로 내려왔을 뿐이다.
아직은 안심하고 내버려 둘 수 없다.
고개를 돌려 그 앞의 생을 바라보고
삶을 향해 발걸음을 힘껏 내딛기까지
계속해서 나를 지켜보고 돌봐야겠다.
이렇게 그냥 나를 잃어버릴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