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되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전직 심리상담자의 백수일기 2

학교를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 회복되었다. 입맛이 돌아왔고, 잠들 수 있었으며, 더 이상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몸이 조금씩 정상궤도를 찾아가자 이내 마음이 분주해졌다. 사라져 버린 이전의 길 대신 어서 새로운 길을 찾고 싶다는 생각에 조급증이 났다.


처음 가져보는 이 여유로운 시간에 뭘 해야 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 나에게 좋은 내가 될 수 있는 건지. 답 없는 질문을 붙들고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스스로에게 1년 간의 휴가를 주기로 했다. 그것은 서른을 맞이한 내가 20대에 10년이라는 시간을 치열하게 살아내느라 고생한 나 자신에게 주는 일생일대의 선물이었다.


'그래.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더 간이 쪼그라들기 전에, 더 많은 책임과 이유가 생기기 전에 정말 해보고 싶었던 것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들을 마음껏 해보는 거야!'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자마자 '여행'이라는 두 글자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새로운 각오로 무장한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생애 첫 장기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서른에 맞이한 생애 첫 휴가

호기롭게 배낭을 들쳐 메고 한국을 떠난 나는 이곳저곳 발길 닿는 데로 돌아다니며 매일 새로운 곳에서 침을 맞이했다. 오감으로 경험하는 모든 것이 새로웠고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큰 자극을 받았다. 마주하는 모든 풍경에 감격했고, 매일 뜨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경이에 차올랐다.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된 휴식을 경험해본 적 없었던 내가 조금씩 쉬는 법을 배워갔다.


길 위에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 다양한 인종과 삶의 배경을 가진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들의 눈을 통해 내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엿보았다. 세상에 정말 많은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는 깨달음. 꼭 한 나라에 살지 않아도, 꼭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꼭 정해진 방식을 따르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매일같이 챙겨보았던 일출과 일몰, 그리고 달 그림자
이국의 아침과 저녁


뜻밖의 '우연'이 소중한 '인연'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많은 질문들이 오갔고 그 사이에는 꼭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이 끼어있었다. 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심리상담을 '했었다'라고 답했다. 가끔 '심리학 = 독심술'이라 오해하는 이들 중 몇몇이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질문세례를 퍼붓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무슨 생각 하는지 다 알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웃으며 얼른 화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배운 게 도둑질인지라 이야기는 종종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담으로 이어지곤 했다. 깊은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누군가는 눈물을 보였고, 누군가는 고맙다고 했으며, 몇몇은 내게 '넌 참 좋은 상담자'라 해주었다.


상담을 못해서 도망친 마당에 좋은 상담자라니.. 그들이 건넨 달콤한 말에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렇게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적잖은 위안이 됐다.


온 세상에 흩어져있는 나의 소중한 인연들


일상이 되어버린 여행

시간이 지나면서 여행에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머지않아 여행은 또 다른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좋은 곳을 가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신나는 걸 해도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찾아왔다. ‘나는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 즐겁게 웃고 떠들며 놀다가도,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쉬다가도 불쑥불쑥 현타가 찾아왔다.


장기 여행자들이 흔히 겪는 여행 권태기겠거니 하고 넘겨보려 했지만 내가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마주해야 할 문제들을 외면한 채 도망치 듯 떠나온 여행은 직면할 상황을 조금 유예시켜줄 뿐 결코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았다.


당장은 감당할 자신이 없어 마냥 나중으로 미뤄두었던 여러 가지 삶의 숙제들이 줄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내 삶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모든 것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수많은 문제들을 못 본 척 덮어본들 내 마음이 편해질 리 없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누군가의 말처럼 낙원을 찾아 도망친 어느 곳에도 낙원은 없었다. 단순히 여행을 위한 여행을 지속하는 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없다는 결론에 이르른 나는, 여행을 중단하고 나중으로 미뤄두었던 현실적인 문제들을 마주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는 것

여행에서 돌아와 좋은 기회로 몇 번의 여행강연을 했다.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노래에 녹여내어 공연을 하기도 했고, 다양한 주제와 여행을 함께 엮어내어 여행을 사랑하는 이들과 소통하기도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고작 몇 번의 여행을 다녀온 초보 여행자에 불과했던 나는 마치 대단한 모험을 다녀온 여행가라도 된 양 나의 여행 이야기를 겁 없이 풀어내었다.


그 와중에 나를 속상하게 만들었던 것은 여전히 상담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분명 상담이 싫어 여행으로 도망쳤건만 강연을 하면서도 여행 고민 상담소를 열어 여행 상담사를 자처하고, 여행을 통해 자기 탐색을 하라며 여행을 빙자한 상담을 권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 나는 여전히 상담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약도 답도 없는 상담병에 아주 단단히 걸렸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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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와 덕규의 여행고민 상담소 Copyright © SURI All Rights Reserved


그러나 모든 것이 이전과 같지는 않았다. 아니,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전에 내가 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했다면 지금의 나는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다. 매일같이 들어야 했던 어둡고 부정적인 이야기 대신 밝고 긍정적인 이야기들을 하면서 나의 마음을 밝게 채웠다. 몇 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준비했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몰랐다. 이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강연이 끝난 뒤 주최 측으로부터 소정의 강의료를 받았던 날, 뭐라 쉽게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몇 달의 준비기간과 그간 쏟아부었던 에너지에 비하면 결코 많은 돈이 아니었지만, 소모적으로 나를 갈아낸 대가가 아니라 내가 즐겁게 했던 일이 돈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고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할 수 만 있다면 평생을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과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쉴 새 없이 가슴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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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y '어떤 여행'이 선물해준 감사한 강연기회들


백수가 되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그러나 가슴 뛰는 일을 쫓으며 살아가기에 현실은 마냥 호락하지 않았다. 한창 상담일을 하며 경력을 쌓고 있는 동기들을 볼 때마다 아무 상관없는 일들을 벌리고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30대 초반. 모두가 바지런히 앞으로 나아가며 '안정이라는 닻'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 이 시기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있다가 이제서야 '꿈이라는 돛'을 달고 표류를 시작하려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도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멀쩡한 직장을 그만둔 걸 보니 철이 덜 들었다' , ' 선생이 얼마나 좋은 직업인데 아직 세상을 모른다' , '여행이나 다니고 팔자도 좋다', '그런 거 해서 얼마나 버냐', '그래서 돈은 언제 모으냐' , '결혼은 안 할 거냐', '지금까지 뭐했냐' , '지금은 뭐 하고 있냐', '앞으로는 뭐 할 거냐...'


나에 대한 관심과 걱정을 가장해 수많은 이들이 내게 던진 말에는 부러움과 한심함이 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단 한 번도 요구한 적 없는 투머치 한 의견들은 이따금씩 내 마음을 헤집고 들어와 가뜩 치 않아도 혼란한 마음을 들쑤셔 놓았다. 그리고 마치 내가 얼마나 바보같이 순진했었는지 비웃기라도 하는 듯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나의 기대를 '이대로 있다가는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조급함으로 바꾸어 주었다.


언제부터 저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으셨습니까...... 제발 좀 꺼(져) 주세요. Copyright © 노콩 All Rights Reserved


뜻밖의 백수 계약 연장

내게 허락했던 1년의 휴가를 끝내고 제자리로 돌아온 나는 오랜 고민 끝에 남자친구와 미뤄왔던 결혼을 준비했다. 겨우 현실을 벗어나 비현실적인 삶에 살짝 발을 담궈본 나로서는 다시 돌아가 현실에 부딪혀보겠노라 마음먹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마음 한켠에서는' 겨우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을 찾았는데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지 않냐'는 용기가 불쑥 솟아 올랐다.


'계속해서 여행을 지속하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일로 먹고사는 방법을 찾게 될지도 몰라'


지금 생각하면 고개가 지레 절레절레 거려질 만큼 허무맹랑한(그 당시에는 몹시 원대했던) 꿍꿍이를 품은 나는 신랑에게 결혼 후 조금 긴 신혼여행을 떠나자 제안하며 대신 여행 후에는 착실하게 살아가겠노라 약속했다. 신랑이 의 꿍꿍이를 몰랐던 것인지, 알면서 모른 척해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기꺼이 나의 꼬드김에 넘어가준 덕분에 나는 그와의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결혼식을 올리고 꿈에 그리던 신혼여행을 시작하던 그때까지만 해도 다시는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기왕이면 이대로 시간이 영영 멈춰버리기를) 간절히 바랬다. 가끔은 너무 행복해서 내가 이런 행복을 누려도 되는 건지, 한 번도 쉬운 적이 없었던 내 삶이 이렇게나 수월하게 풀릴 수 있는 건지 매 순간 물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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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1-2번째 국가인 네팔과 터키에서 Copyright © 노콩 All Rights Reserved


그러나 달콤한 행복도 잠시, 신혼여행에서 일어난 사고로 짧았던 나의 행복은 산산조각 났다. 이제 막 시작된 신혼여행을 그 자리에서 끝내고 2달 만에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한국에 돌아오면서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빌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신은 내게 가혹했다. 내게 주어진 지금의 상황은 꿈이라 믿고 싶은 현실,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끔찍한 악몽 같은 현실이었다.


한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기나긴 정밀검사 끝에 최소 6개월 이상의 재활과 회복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다. 귀국 후 반년 간 계획했던 무수한 일들(집들이, 어른들 인사드리기, 취직 준비)은 휴식과 재활의 명목으로 무기한 연기되었다. 산산이 부서진 몸과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꿈꿔왔던 것들을 하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지금 당장 치열하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묘한 안도감이 교차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주는 절망감은 찰나에 스치듯 느꼈던 안도감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처절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사고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제멋대로 어그러뜨렸고, 그렇게 나의 백수생활은 생각지도 못하게 연장되었다.



본 이야기는 '전직 심리상담자의 백수일기 3'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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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노콩님의 Instagram : @rohkong_


덕규의 신혼여행이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brunchbook/duckyou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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