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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체험 극과 극

전직 심리상담자의 백수일기 3

백수 1년 차.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누리던 백수생활은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출근에 쫓기지 않고 나른한 아침 햇살을 즐길 수 있었고, 모두가 일하고 있는 평일 낮 시간에 여유롭게 카페와 동네 목욕탕을 돌아다니며 소박한 사치를 부릴 수 있었다. 

원할 때 어디로든 떠날 수 있고, 
하고 싶었던 것들은 뭐든지 할 수 있으며,
보고픈 이들을 언제든지 마음껏 만날 수 있는 삶.


1년 간 내가 누린 그 시간들은 흔히 백수가 되고픈(그냥 백수 말고 돈 많은 백수) 모든 이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 그대로였다. 모든 '해야 할 것'들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사는 삶은 하루하루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평온하고, 자유롭고, 만족스러웠다.


백수 2년 차. 그 이듬해에 어느 것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원치 않게 주어진 백수생활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모든 일정은 병원 치료를 중심으로 돌아갔고, 오전에 병원을 다녀와 기진맥진한 상태로 한숨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끝나 있었다.


환자인 우리에게 재활치료 외엔 딱히 '해야 할 것'이 없었고 바닥으로 떨어진 체력 탓에 사실 크게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보다 길어진 백수생활이 생각지 못한 환자 생활과 겹치면서 '자유롭고 행복했던 백수'는 '아프고 고독한 백수'가 되어버렸다.




우울증에 걸린 상담자

이전에 나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뻔질나게 바깥을 쏘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고 후에는 병원에 오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보내는 집순이가 되었다.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가, 이렇게 시간을 허비해도 되는 것인' 따위의 생각들을 하면서 한숨을 쉬는 게 유일한 일과였다. 


낮과 밤이 뒤바뀌어 어슴푸레 새벽이 밝아올 즈음에야 몸을 뉘었다. 낮에는 안방 침대에 누워 죽은 사람마냥 움직이지 않았고 늦은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해 불 꺼진 거실을 서성거렸다. 허한 마음에 닥치는 대로 음식을 입에 쑤셔 넣었더니 한 달 사이 몸무게가 5kg 가까이 불어났다. 변해버린 내 모습이 싫어 거울을 보지 않게 됐다.


가끔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고 간혹 걷잡을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와 통곡을 하기도 했다. 한껏 예민해져 아무것도 아닌 일에 애먼 신랑에게 갖은 짜증을 쏟아내곤 했고,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내가 왜 이러지,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짓을 반복했다.


낯설게 느껴지는 내 모습은 지난 몇 년 간 보아왔던 내담자들의 모습과 사뭇 닮아있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모든 증상들이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울증이 온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스멀스멀 우울이 찾아왔고, 그 뒤를 따라온 불안이 내 마음을 갉아먹었으며, 끝을 알 수 없는 무기력이 나를 저 깊은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우울증에 걸린 상담자라니. 어이가 없고 속이 상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제 아무리 상담자라 해도 스스로를 상담할 수는 없었으니까. 나의 내담자들과 함께 한 시간들에 내가 그러했듯이, 나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것 또한 그저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가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것뿐이었다.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다시 원래의 내 모습을 되찾기까지 그 이후로도 몇 달의 시간이 더 걸렸다. 


나와 하루 종일 함께 누워 있어준 그대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보냅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 시간들을 무사히 견뎌내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잠을 이겨내며 밤낮을 되바꾸려 애썼고, 잠시라도 바깥공기를 쐬며 햇볕을 받았다. 불안한 마음이 쿵하고 찾아올 때면 곤히 자고 있는 고양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보드레한 털의 온기와 자그마한 콧구멍에서 불어 나오는 숨결이 내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줬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우울이 찾아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해치려는 시도 대신 신랑에게 달려가 그를 끌어안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고 나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그럼에도 살아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 당시 나의 곁에 (정말 손을 뻗기만 하면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나를 압도하는 몹쓸 생각들을 떨쳐내게 해 줄 존재가 있어줬기에 나는 살아남아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를 살린 여행

이대로 있다가는 썩어 문드러지겠다 싶을 때 즈음 친한 동생 콩이가 나를 집 밖으로 끌어냈다. 뭐라도 좋으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해보라던 그녀는 나에게 여행 이야기를 하는 유튜브 채널을 함께 시작해보자고 제안했다. 여행이라곤 반년 간 다녀온 배낭여행과 실패하고 돌아온 신혼여행이 전부였지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신 있었기에 나는 냉큼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룰 줄 아는 거라곤 한글 프로그램이 뿐이었던 내가 영상을 찍고, 컷을 편집하고, 자막을 더듬더듬 달아 넣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지는 오직 그녀 만이 알고 있다. 컴퓨터에 젬병인 나에게 영상편집을 가르치는 것은 여든 되 신 할머니에게 웹서핑을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답답하고 속 터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흔한 짜증 한 번 없이 늘 나를 격려해주었다. 


1시간 안에 끝낼 작업을 10시간에 걸쳐 하고 있자면 가뜩이나 낮아진 자존감이 땅굴을 파고 지하 암반을 두드렸다. 그러나 몸에 익은 상담 기술로 그녀와 대화를 나누거나, 다년간 다져진 축어록 풀기 스킬로 함께 나눈 이야기를 타이핑할 때면 짐짓 뿌듯함을 느꼈다. '대체 이게 무슨 쓸모가 있을까' 했던 것들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이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유튜브 채널 '취존여관' & '어떻게 사나'


나를 살린 브런치

유튜브를 하며 용기를 얻은 나는 그녀의 응원을 등에 업고 신혼여행 이야기를 브런치에 적어 올리기 시작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적어낸 작가 신청서가 기적처럼 통과된 이후, 나는 마치 그간 쌓인 한을 풀듯 매일 같이 글을 토해냈다. 어느 누가 봐주지 않아도 그저 내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는 것만으로 족했다.


어느 덧 열심히 적은 글이 한 권의 책이 되었고, 어느 날 그 책이 메인에 올라 많은 이들에게 읽히게 되었다. 신나서 춤이라도 춰야할 날에 나는 기쁨 대신 두려움을 느꼈다. '이건 그저 아무것도 아닌 내가 적은 실패한 신혼여행에 관한 이야기일 뿐인데.. ' 잔뜩 위축되어있던 나는 혹여나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비웃거나 평가하지 않을까 하며 조마조마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왜곡된 상상과는 달리 글을 읽은 이들은 '잘 읽었다고, 힘내라고, 내 삶을 응원한다'고 말해주었다.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타인이 내게 건네준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가 이렇게 큰 위안이 되어 줄 수 있는 건지 처음 알았다. 


그들이 적어준 댓글들을 한 자 한 자 찬찬히 짚어가며 읽는 동안 마치 누군가 내 등을 다독 다독 토닥여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뜻밖의 댓글을 읽고나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던 그 날,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큰 상처 하나가 스르르 녹아내렸다. 


그 글을 쓰기 전까지 나의 신혼여행은 내게 큰 아픔을 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 아픔은 글로 쓰고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조금씩 아물어 갔다. 누군가에게 읽히기 전까지 내 글은 부족하기 짝이 없는 나만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것을 읽고 마음을 나눠줌으로써 가치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글쓰기가 가지는 치유에 힘을, 그리고 그것을 통해 받았던 응원과 용기를 절대 잃어버리지 말아야 겠다. 





그 이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음속에 뒤엉켜 있던 것들을 글로 풀어내며 하루하루 조금씩 삶의 의욕을 되찾아갔다. 그렇게 만약 그녀가 아니었다면, 그때 유튜브와 브런치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 시간들을 훨씬 더 힘겹게 지나 보냈을 것이다. 


나를 어둠의 구렁텅이에서 끌어내 세상에 빛을 보게 해 준 그녀에게도, 내게 글 쓸 기회를 줄 브런치에게도,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응원 메세지를 보내준 모든 이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를 보낸다. 



본 이야기는 '전직 심리상담자의 백수일기 4'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duckyou-story/47



덕규의 브런치북이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brunchbook/duckyoustory


노콩과 덕규의 어떻게사나 (브런치 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uXLfAE9IDvM&t=312s



이전 02화 백수가 되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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