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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나쁜(혹은 아픈) 선생님입니다

상담교사의 치유일기2 - 치료가 필요한 상담자

학교폭력과 폭력교사 사이

귀엽고 앙증맞은 고민들을 들고 상담실을 찾아오는 아이들과는 웃으면서 대화를 나눈다. 간식을 내어주고 눈을 맞히며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은 만족스러워하니 나 또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담은 100번에 1번 꼴로 주어지는 선물과도 같은 시간일 뿐, 나머지 99번의 상담은 매시간 마치고 나면 마음이 너절해질 만큼 무겁고 버거운 것들로 채워져 있다.


남학생들의 경우 자신이 쎈지, 친구가 쎈지를 알아보기 위해 밑도 끝도 없이 싸움을 걸고 서로를 치고받아 온다. 그들 선에서는 서열이 정리되고 치고받은 두 녀석의 오른손에 나란히 깁스가 채위지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교내에서는 학교폭력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관리자와 다수의 교사, 학부모들이 모두 모여 오랜 시간의 논의를 거친다. 나는 그 과정을 통해 똥을 싸는 사람이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을 배웠다.


여학생들의 경우 유치하고 속 시끄러운 감정싸움이나 관계 문제를 들고와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친다. 차라리 남학생들처럼 시원하게 치고받아 결과라도 내면 좋겠건만 다들 자기가 잘못한 부분만 쏙 빼고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말한다. 자신들이 마음대로 행동하며 문제를 일으켜 놓고선, 뒤늦게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해결해 달라고 찾아온다.


적정한 선에서 해결할 방법을 알려줘도 그들은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 그 사실을 알기에 대충 마무리 지어 돌려보내곤 하는데 대부분 같은 문제를 다시 갖고 와서 또 징징거리는 상황이 무한정 되풀이된다. 같은 문제로 몇 날 며칠 씩 상담을 하고 있자면 화가 불쑥 치밀어 오른다. '니가 니 마음대로 싸질렀으니 니가 싼 똥은 알아서 치우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보살이다'를 되내며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것 뿐이다.


자살과 자해 사이

자해나 자살사고가 있는 친구들은 매일 아침마다 자해를 했는지 온몸을 더듬으며 확인한다. 그리고 새 상처가 생긴 날엔 새빨간 생채기로 가득한 팔목과 발목, 허벅지를 차례로 걷어가며 약을 바르고 거즈로 덮는다. 칼로 죽죽 그은 상처는 주로 얕고 가느다란 실선을 그리지만 때로는 깊고 굵은 틈으로 벌어져 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상처에는 후시딘을, 생긴 지 조금 지난 상처에는 마데카솔을 발라주는 게 전부지만 아이들은 그런 케어조차 크나큰 관심과 사랑으로 여긴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상처를 소독하려 노력하지만 매일 봐도 익숙해지기 힘든 온갖 상흔에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을 때가 많다. 나는 왜 이러냐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그러지 말라고 화를 낼 수도 없기에 마치 기계처럼 '그때의 감정이 어땠는지, 그런 마음이 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앞으로는 참아 줄 수 있겠는지'를 부탁하며 아이들을 달랠 수밖에 없다.


밑도 끝도 없이. 특정한 이유나 해결 방법도 없이 그저 '너무 힘들어서 죽고싶다'고 호소하는 친구들도 많다. 그들은 주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너무 우울하고, 너무 힘들고, 너무 슬프고, 너무 무기력해서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고. 나는 살 가치가 없고, 나만 없으면 이 세상 모두가 행복할 것이고, 나 하나쯤은 없어져도 이 세상은 아무 일 없이 잘 돌아갈 거라고 정말 약속한듯이 똑같은 말을 한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다짜고짜 상담실을 찾아와 죽고 싶으니 상담을 해달라던 그 친구는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상담을 하는 1시간 내내 무기력한 표정으로 계속 죽고 싶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그제도 어제도 '그때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얼마나 힘들었겠는지, 그런데 어떻게 죽지 않고 버텨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를 물어보았는데, 오늘은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고 되묻고 싶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계속해서 놓이는 것이, 나를 점점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싶었다

어느 날 문득 상담실 문을 열고 내 책상 가까이로 다가오는 아이들이 '침범적'이라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 공간에 들어오는 것도 나에게 말을 거는 것도 끔찍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 계속해서 내게 말을 쏟아내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버럭 소리를 지른 뒤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놀란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갔고 나는 멍한 상태로 한참을 멈춰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매번 학생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이야기하며 신세한탄을 하는 학부모님이 있었다. 어느 날 학생이 자해를 한 것 같다기에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갔었는데 그 뒤로 계속 집으로 찾아와 상담을 해달라며 여러 번 전화를 걸어왔다. 계속해서 한 학생의 가정방문을 할 수는 없다고 거절하자 매일 아침마다 전화를 걸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본인이 힘들다는 호소를 이어갔다.


1시간씩 통화를 이어갈 때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숨을 쉬어보려고 한숨을 몰아쉬었지만 답답함이 가시지 않아 가슴을 여러 번 내려쳤다. 끊어질듯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고있자니 '제발 그만하시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전화기로 책상을 내리치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고 대신 창밖으로 나를 집어던지고 싶어졌다. 다시 한번 '내가 왜 이러지' 라고 생각했다.




최근 1달 매일 아침마다 눈뜨는 것이 지옥처럼 느껴졌다. 출근해서 상담실에 들어서면 신경성 편두통에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팠다. 급식시간에 먹은 점심은 항상 체한 듯 위장을 꼬아놓았고 식도염이 도진 것인지 신물이 올라와 늘 목구멍이 쓰라렸다. 작은 일에도 짜증과 화가 몰려왔고 예민하게 날이 선 채로 반응하기 시작다.학교라는 공간에서 8시간을 버티는 것이 숨 막히게 느껴졌고 집으로 돌아오면 죽은 듯이 누워만 있었다.


별 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생각했던 내가 전혀 잘 지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무렵, 상담을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생각과 함께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누군가의 상담자로 살아가기 위해 나에게도 상담이 필요했는데, 5년 전 마지막 상담 이후 한번도 상담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곳저곳에 수소문해 나를 돌봐 줄 상담자를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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