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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된 공무원을 때려치려는 이유

선생님 하기 싫어요

나는 공무원이다. 국가에서 치르는 고시를 통과하고 임용된 교육공무원.


지금도 누군가는 간절히 되고 싶어 하는 선생님이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잘 밝히지 않는다. 스스로 교사라는 분명한 정체성과 사명감을 갖고 교사의 길을 밟아온 이들에게 교사는 정말 값진 일이지만, 나는 스스로 교사라는 사실그리 자부심을 느끼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며, 가끔은 그들의 인생을 바꾸고 목숨을 살린다는 점에서 분명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학교라는 집단 안에서 선생님이라는 탈을 쓴 나는 여전히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하고 손발이 묶인 듯 갑갑할 때가 많다.




휴직을 하면서 한동안 학교일을 잊고 지냈다. 아니 마음 저편에 꽁꽁 숨겨두고 애써 모른 척했다. 지금 당장 그곳에서 벗어나 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고, 적당히 자위하며 회피해 왔다. 그러던 오늘 오랜만에 학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2시간 가까이 통화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그곳으로 다시 끌려간 듯 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일관성 없는 업무지시, 일방적인 대화방식, 밑도 끝도 없이 감정적 오물을 투척하는 사람들로 인해 그간 애써 다잡아 왔던 마음은 삽시간에 만신창이가 됐다.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대었고, 답답해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화가 나서 온몸에 열이 오르더니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뒷목과 머리가 깨어질 듯이 조여왔다. 오랜만에 느끼는 신체화 증상이었다.


휴직 중인 나에게 연락해서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늘여놓는 그들의 행동에 신물이 났다. 겨우 지난 며칠 동안 ‘지금은 쉬는 중이니 조급해말고 천천히 나아가자'고 스스로를 달래 놓았건만,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미칠 듯이 불안해졌다. 그곳을 영원히 탈출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늦은 밤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다 몸을 일으켜 책상에 앉았다. 대체 무엇이 그렇게 싫은 것일까, 나는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걸까 혼자서 곰곰이 생각을 정리했다. 막연히 싫 힘들 버 알았는데, 적다보니 그곳을 싫어할만한 많은 이유들이 존재했다.


쓰레기통 혹은 무능력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업무특성으로 인한 감정적 소모였다. 상담교사 특성상 나는 학교 내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들의 중심에 있었다. 학교폭력, 자살 자해, 무단결석과 자퇴, 가출과 흡연, 음주, 폭행, 절도는 물론 각종 병리를 가진 아이들과 그들의 담임이 나를 찾았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학교일은 힘들지만 소위 예쁜 아이들을 보며 힘을 얻고 힐링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만날 수 있는 것은 아프거나 나쁜 아이들 뿐이었기에 아이들로부터 힘을 얻기란 쉽지 않았다. 당연하게 혹은 합법적으로 나는 아이들과 선생님의 욕받이 내지 쓰레기통 역할을 맡야 했다.


권위는 없고 책임만 있는 자리에서 나는 항상 약자였고 을이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힘든 원인을 학교 탓으로 돌렸고, 학교에서는 기승전-상담으로 아이들을 처분했다. 잘하는 건 당연했고 못할 경우 강한 질타가 뒤따랐다. 10년 넘게 망가져온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변하길 요구하는 어른들 앞에서 나는 자주 그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이 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는 현상유지 내지는 추가제를 예방하는 정도에 그쳤다. 인간의 긍정적 성장과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상담자가 되고 싶었던 나는 겨우겨우 생존을 돕기에 급급했다. 마이너스에서 0이 아니라 0에서 플러스로 나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은 늘 한정적이었고 아이들이 가진 상처의 골은 깊었다.


통제감, 자율성, 인정욕구의 좌절

나의 성향과 특성 또한 힘듦에 한몫했다. 어려서부터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며 살아온 나에겐 상황과 사건에 대한 통제력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아이들이 들이닥치고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의 연속인 학교환경은 나에게 ‘모든 것이 통제불가’라는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연속적인 업무처리가 불가한 상황 속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인정욕구가 높았던 나는 지금껏 속해왔던 조직 에서 항상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누군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우주대스타'라고 답하는 관종인 나에게 학교는 감히 나를 드러낼 수 없는 곳이었다. 표현욕구가 강한 나는 듣고, 수용하고, 나를 감춰야 하는 학교에서 행여 내 색이 바래질까 하는 두려움을 느꼈다.


유연성을 중시하고 선택에 대한 자율성을 원했기에 정해진 시간 동안 지정된 장소에 반드시 머물러야 하는 학교가 강제수용소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업무효율이 오르는지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틀 안에 나를 끼워 넣는 것을 뭣보다 싫어 나는 크고 견고한 학교라는 틀이 숨 막히게 답답했다


공무원의 결과 나의 결

공무원 조직이 가진 특성은 필요에 의해 갖춰진 것이겠지만, 근본적인 부분 납득지 않은 채로 수용하 힘들었다. 효율성을 따지기 보단 관습적이고 반복적으로 처리하는 업무들도, 성과에 따른 보상과 인정이 특별히 존재하지 않는 것도, 서류를 위한 서류를 만들고 과정을 위한 과정을 밟는 것도 일을 처리할 동기를 앗아갔다.


그에 반해 사람들이 극찬하는 유일무이한 장점인 ‘안정성’은 내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살면서 안정적인 환경에 놓여본 적이 없는 나로선 안정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정도의 조건이었다. 웬만큼 미친 짓을 하지 않는 한 잘릴 위험이 없는 철밥통은 30년 간 꼼짝없이 묶여있어야 하는 안전한 족쇄에 불과했다.


원활한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게 상의하달, 무조건 복종식의 의사소통 체계 또한 불합리다. 나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고 설득과 논의가 가능한 수평적인 조직구조를 기대했지만 조직 내 계급은 생각보다 견고했다. 까라면 까고 하라면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입바른 소리대신 내 목소리를 내려하는 나는 미운털을 박기 좋은 대상이었다.




학교조직에 몸담은 시간은 고작 3년 하고 반이 전부이다. 임용되기 전에 잠시 일했던 사립학교를 제외하고 신규로 발령받은 이곳이 나의 첫 근무지이다. 지금껏 고작 4명의 교장과 교감, 부장을 맞이하고 보내었으니 아직 학교조직이나 구성원에 대해 안다고 판단하기에 섣부를지도 모르겠다.


이곳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근무를 시작한 전 동료들은 끝판대장을 만나고 던전 밖으로 나오니 천국에서 천사들이 날아다닌다고 했다. 과연 그 말을 믿어도 되는 걸까, 이곳에서 남은 시간 전쟁을 견디고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면 그곳에서는 지금 느끼는 무수한 회의와 좌절, 분노와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나의 능력을 활용하여 나를 위해 일하고,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는 낭만적인 직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만의 망상일까? 망상이라기엔 이 세상에 이미 그 망상을 실현시킨 이들이 많고, 비현실적이라기나는 많지 않은 수입으로도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소박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남은 시간 동안 굳이 나와 맞지 않는 그곳에 돌아가지 않고도 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면 된다. 간절한 마음으로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일단 뭐든 해봐야겠다. 늦은 밤 남편에게 물었다.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월 300만 원을 6개월 간 벌게 되면 그때는 학교를 그만두게 해달라고. 남편은 뒷말을 흐렸지만 나는 마음에 결심이 선다.


일단 해보자. 비현실을 현실로 만들어보고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 될지 안 될지 뭐가 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실과 비현실이 서로 스위치 되는 그 순간이 올때까지 일단 뭐든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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