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예의지국의 놀이터 대화_두번째 이야기
지난번 놀이터에서 만난 오지랖 태평양 할머니와 또 마주치고야 말았다.(https://brunch.co.kr/@sandew/58) 왠지 불쾌한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느낌에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조개처럼 입을 꼭 다물고 있었는데 자리를 슬쩍 옮기시더니 갑자기 훅~ 들어오신 게 아닌가.
여기 앉아 있다 보면 별 사연을 다 보게 돼요.
네..(대답하지 말걸 그랬나 하며)
항상 손주를 데리고 나오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어느 날부터 안 보이시더라고.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 글쎄!(순간 극적 효과를 위해서였는지 잠시 멈추셨다) (한껏 탄식의 목소리로)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그 아들이 이혼해서 할머니가 손주를 봐주고 계셨더라고. 그러다 갑자기 돌아가신 거지.
네…
(딱히 대꾸할 말이 없어서) 애기 아빠가 힘들었겠네요… 한마디를 건넸는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고 불효지 불효. 그런 불효가 없지. ‘오죽’했으면 이혼을 했을 것이고 ‘오죽’했으면 할머니가 손주를 봐주다(?) 돌아가셨겠어요. 평생 한으로 남았을 거예요 그쵸오…..?
순간, 당황스러움보다.. 화가 났다고 해야 할까.
저분은 내가 어떤 사정인 줄 아시고 함부로 저런 말씀을 내 앞에서 하실까.
심지어 나는 그 집을 알지도 못하는데..
졸지에 남의 집 불효자 얘기를 들고 기분이 상한 1인은,
할머니 그런 말씀 함부로 하시다가 나중에 할머니 딸이 그 일 겪어요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왜냐면 그 분은 나를 공격할 의도도 불쾌하게 만들 의도도 전혀 없었고 이 일은 앞으로 그런 의도가 없는 수 많은 사람들에 의해 내가 겪을 일이었으니까. 누가 머라 한 것도 아닌데 괜스레 얼굴이 화끈해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100주년 어린이날이라는 오늘,
2년 만에 마스크를 벗고 엔데믹을 알리듯 거리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축제와 같은 이 날에,
존재만으로도 축복받아야 할 우리 집 어린이는,
꼴랑 5인 가족 중, 아빠와 누나, 형아 없이 엄마와 외할미하삐와 저녁을 먹으며 반쪽짜리 어린이날을 자축했다.
반쪽이라는 말은.. 온전한 한 개가 있다고 전제할 때 존재하는 말이다.
하지만 반쪽짜리 사과도 사이즈가 작을 뿐 똑같은 사과 맛일진대
반쪽짜리 가정도 그 형태를 잃었을 뿐 가정의 의미는 똑같이 소중하다.
엄마빠와 활짝 웃는 아이들로 이루어진 가정의 모습이 가장 먼저 그려지는 가정의 달,
(나 또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그림 중 하나였다)
반쪽짜리 가정에서 자란 우리 어린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한 부모 가정이든, 두 부모 가정이든, 어떤 가정도 그것이 온전체가 아니라는 결핍(?)으로 인해 그들의 삶이 함부로 평가받지 않기를,
그리고 그 부모 된 자 또한, 비록 가정을 지키는 데는 실패했을지라도 누군가의 가정에서는 소중한 ‘어린이’였음을 기억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세 아이들과 북적하게 보냈던 이 날을 모두가 아는 이유로 조촐하게 보내는 중, 애써 아이와 교감하고 즐거워 해주시던 너무 노쇠하신 부모님을 보며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아팠던 딸은,
오늘뿐 아니라 나도 모르게 훅 치고 들어오는 일상의 모든 순간에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불효자로 낙인찍힌 아이 아빠와
할머니를 잃은 아이,,, 그리고 사정이야 어쨌든 아이를 아빠에게 보내야 했던 엄마도..
각자의 자리에서 여전히 소중하고 의미 있는 날이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