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는 "아니야 없던 질문으로 하자!" 하며 허둥지둥 질문을 철회했다. 철회한 이유는 이렇다. 태아 인생 8개월 차 봄은 이미 귀가 다 발달했고 엄마아빠의 말소리가 다 들린다는 사실을 엊그저께 임신 출산 대백과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세심한 태도에 감격하며 동시에 좀 더 물어봐주었으면 했다. 왜냐하면 나도 오늘 아침에 샤워를 하면서 같은 질문을 품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임신. 노산. 자유를 중시하는 삶의 태도. 술과 휴식, 여행을 사랑하는 삶.
만일 시간을 돌려 다시 살 수 있다면 난 과연 지금처럼 임신할 것인가?
만일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현재 임신 8개월 차.
모체가 무려 43세인데도 여태껏 아무 이벤트(?) 없었던 건 봄(아기)의 복이다. 덕분에 병원에 갈 때마다 폭풍 칭찬을 받고 있다. 아주 좋다고, 모든 것이 잘 있다고.
봄은 주수에 맞게 잘 클 뿐 아니라 한 톨의 유전자 미세결실도 없다. 특이한 알레르기 반응도 없다. 늦은 입덧은 적당한 시기에 끝나주었고 피부는 임신 전보다 반들거린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여전히 두렵다. 임신 기간에는 되도록 운전을 자제하기로 해서 이번주로 올해 모든 업무가 마무리된다. 쉬는 날이면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당기고 느긋하게 뒹굴거리며 달콤한 잠을 부여잡고 있다. 태동이 심해 새벽에 깨서 화장실에 다녀올 때면 밤샘 육아가 떠오르고 공포감이 밀려온다. 난 잘할 수 있을까?
두렵다. 후회하게 되면 어쩌지? 나는 40년이 넘도록 그저 자기 하나만 신경 쓰면 되는 어른으로 지냈다. 자기 자신의 욕구조차도 제대로 달래주지 못해서 고민하는 내가 과연 아기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채워줄 수 있을까?
그러나 남편의 질문을 받고 내 입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왔다.
난.... 시간을 돌려도 임신할 것 같아. 어쩌면 조금 빨리? 분명히 그럴 거야.
마니 컸쥬?
태어나 경험하는 수많은 일들 중에 가장 위대한 경험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출산에 대한 궁금증은 미련이 되고 눈덩이처럼 커져서 후회가 될테니까.
인생에서 꼭 필요한 경험이라는 확신이 들어. 봄은 가장 좋은 날의 나에게 스스로 와준 거야. 봄은 우리를 선택했고 나의 염려가 무색하게 자기 인생을 잘 살아갈 거야.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와 만나서 결혼을 하고 너와 나의 유전자를 반반 섞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경이롭고 기뻐.
말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두려움 속에서 진심이 싹을 트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이미 주사위는 굴려졌다. 나는 딩크로 돌아갈 수 없다.
언젠가 인생을 마무리할 때쯤, 뉴욕의 어느 클래식한 바에서 와인을 마실테다. 그리고 여전히 멋진 남편과 춤을 출 테다. 전화벨이 울리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받을테다. 어딘가에 있을 봄으로부터. 눈처럼 하얀 백발의 나는 전화기 너머의 봄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