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의 생일이었다. 작년의 오늘 엄마는 환갑이었고 언니와 셋이서 병실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소리 없는 박수를 치며 축하했었다. 엄마는 나와 더불어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생일이란 걸 챙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엄마는 없지만 엄마의 생일을 모른 척할 수 없어서 납골당에 다녀왔다. 얼마 전 상복 차림으로 이곳에 서 있던 기억이 선명했다.
얼마 전부터 자꾸 낭패감이 든다. 정말이지 '낭패감'이라는 이 단어 세 글자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가 없는, 이 정체 모를 힘겨움을 꾸역꾸역 견디며 엄마가 없는 날들을 살아냈다. 그리고 며칠 전에야 비로소 이 감정의 정체를 알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생의 어두운 이면을 너무 일찍 엿본 자의 두려움이었다.
엄마의 오랜 투병을 바라보며, 그 가운데 수많은 갈등에 휩싸이며, 스물일곱 살에 엄마의 임종을 홀로 지켜보면서. 나는 내가 언제 아플지- 어떤 병에 걸려 죽을지 무서워졌고 행여 내 아픔이 누군가에게 폐를 끼칠까 봐,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까 봐 무서워졌다. 병마와 죽음 앞에 인간은 지독히도 무력하다. 5년 동안 무력함에 치를 떨고 나니 이제는 허무가 찾아왔다. 인간이 이렇게나 무력한 존재인데, 아등바등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요즘 별로 살고 싶지가 않다. 죽고 싶은 건 아니지만 딱히 살고 싶지도 않다. 삶이 이렇게 무서운 거라는 걸 사실을 알아버린 시점부터 내 인생은 이미 뭔가 잘못되었다. 5년의 시간이 내게 남긴 낙인이 데도록 뜨겁다. 삶은 정말이지 허무하고 죽음까지 다다르는 길은 굉장히 끔찍하다. 그리고 불행히도 나는 그 사실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 같다.
그 사실이 퍽 억울하다.
2
우리 가족은 목적지를 잃고 표류하는 돛단배 같다. 우리는 5년 동안 온 힘을 다해 지켜낸 사람을 별안간 잃었고, 각자 또 같이 방황하고 있다.
서로 예민하니 이런저런 갈등이 잦아진다. 우리는 오랜 시간 온전히 엄마에게만 집중하느라 갈등할 여유조차 없었다. 갈등은 상처를 남긴다. 좋던지 싫던지 꼼짝없이 같은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이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나에게도 내 상처를 돌볼 시간이 필요한데 남의 상처를 돌보느라 분주하다. 알게 모르게, 제법 오랜 시간 꽤나 폭력적인 날들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장 최근 갈등이 일어난 며칠 전에는 간신히 자려고 누웠는데 위경련 비슷한 증세가 찾아와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스트레스는 꽤 오랫동안 가엾은 내 아랫배를 쥐어짰다.
3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해서 얼마 전 만난 친한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언니가 보기에 내가 멘탈이 약한 사람 같아?
만난 지 좀 되어 정확한 대답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그런 건 아니라는 답변을 해주었다. 기가 센 사람은 아니지만 힘들 때 이겨내는 과정을 보면 멘탈이 마냥 약한 건 아니라고.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우울증에 너무 당연하게 걸렸을 것 같은 세월을 5년 동안 나름대로 씩씩하게 버텼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온갖 산전수전을 다 버텨낸 내 멘탈이 그럭저럭 쓸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요즘은 죽음의 공포와 싸우던 시절보다도 정말 버티기가 어렵다. 나는 갈등에 취약하다. 누군가 나에게 욕설을 하는 것, 화를 내는 것,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특별히 취약하다. 매일같이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집에는 아직,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이 남아 있다.
4
엄마가 떠난 후 동생의 상태가 좋지 않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버럭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진다. 얼마 전 크게 싸운 뒤 벌써 한 달이나 말을 안 섞었고 그게 편하지만, 오늘 납골당에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가 그동안 애써 무시하고 지낸 엄마의 유언을 떠올렸다. 엄마는 떠나기 전까지도 나에게 동생을 챙기라고 부탁했었다. 이런 게 떠오를 거면 그냥 오지 말 걸 그랬나. 인정하기 싫지만, 유언은 굉장히 힘이 세다.
엄마의 유골함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를 악물었다.
내가 가진 사랑으로는 도저히 그를 사랑할 수 없지만- 그게 천국에서 지켜보고 있을 엄마를 위한 일이라면, 아주 조금은 해낼 수 있을지도 몰라.
납골당을 떠나기 전 유골함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엄마, 생일 축하해.
5
하루에도 수십 번, 엄마가 떠난 날의 그 1인실 문 앞에 돌아가 서 있다. 아무런 수치도 뜨지 않는 기계를 멍하게 바라보다 마지막 남은 온기를 찾아 엄마의 손을 황망히 더듬는다. 외롭고 슬프고 끔찍했던 그 날의 기억이 도무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엄마 없이 살아가야 하는 세월이 아득하리만큼 길어서 절망스럽다. 행복해지고 싶지 않다. 행복한 순간을 엄마와 사무치도록 함께하고 싶으니까. 행복하면 엄마가 보고 싶어 지니까.
정말이지 괜찮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살아내면 언젠가, 조금은 괜찮아질 거라고 믿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