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펭귄 Apr 16. 2021

내 손으로 엄마를 만든 날

역대급 흑역사도 함께 만들었다.


  아침 8시. 장롱 위까지 까치발을 한 채 손을 뻗어 봤지만 역시나 손이 닿지 않아 의자를 가져왔다. 도무지 들여다볼 일이 없는 이불장 위 공간에는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것들이 가득하다. 오래전 고장 났지만 왜인지 버리지 않은 노트북, 학보사 시절 모아둔 신문 더미,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 등등. 고개를 쭉 빼고 살피다 몇 년 전 정리하다 만 앨범을 발견했다. 인화해 둔 사진을 언제 한 번은 정리해야겠지 싶은 마음에 대차게 도전했다가 결국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고 중간에 포기한 그 날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무슨 깡으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지. 몇십 년 전 사진 속 건강한 모습으로 활짝 웃고 있는 엄마를 보니 마음이 갈래갈래 조각나는 것 같아 결국 잔뜩 펼쳐놓기만 하고 그만뒀었다.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사진을 꺼내본 적이 없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사진을 보아야만 했다.

  대충 묶어둔 비닐을 풀고 거꾸로 뒤집자 빛바랜 사진부터 비교적 최근의 사진까지 수백 장의 사진들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엄마, 사회 초년생 시절의 엄마, 아기인 나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 엄마가 살아있을 때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이라는 사실 때문에 건강한 시절의 엄마 사진을 보는 게 힘들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아파서 누워 있던 엄마의 사진을 보기가 어렵다. 아마도 최근의 사진을 보면 엄마의 생전 모습이 떠올라서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보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나갈 시간이 곧 임박했으므로 감상에 빠질 여유 따윈 없었다. 수백 장의 사진을 손끝으로 빠르게 훑고 그중 가장 맘에 드는 사진을 다섯 장 정도 골라 황급히 가방에 넣었다. 빠른 속도로 언덕길을 달려 내려가 간신히 지하철에 올라탔다.

  턱끝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아 비로소 사진을 다시 꺼내봤다. 다섯 장의 사진을 돌려보며 어떤 사진이 가장 나은지 가늠하는 나를 옆자리 아주머니가 힐끔 쳐다봤다. 이 사진을 들여다보는 나의 심정을 그녀는 상상조차 못 할 것임이 틀림없다. 찬찬히 사진을 들여다보는 동안 그제야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이 흘렀다. 아직 감정 관리가 잘 되지 않아서 거리에서든 공방에서든 감정을 억제하기가 힘들다. 코로나는 정말 싫지만 마스크를 쓰는 건 어떻게 보면 다행이다. 마스크가 없었다면 꽤나 난감했을지도?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차는 부지런히 목적지를 향해 미끄러져 나갔다.




  - 선생님,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거기 앉아서 잠깐 기다려 주시겠어요?


  외투와 가방을 벗어 걸어놓고 의자를 조심스럽게 끌어당겨 앉았다. 두근거리고 약간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다양한 모습의 사람 모형이 전시되어 있는 공방에서는 달큼한 향이 났다. 엄마와 아빠의 모형을 만들 수 있는 원데이 클래스를 들으러 온 참이다.


  - 사진은 가져오셨나요?

  - 네, 여기...

  

  다섯 장 중에 고심해서 고르고 고른 엄마와 아빠의 사진을 내밀었다. 선생님은 사진을 가져가 컴퓨터로 이것저것 작업하더니, 곧 A4용지에 큼직하게 인쇄된 사진을 내 눈앞에 걸었다. 조그만 사진으로조차 보기 힘들었던 엄마였는데. 커다란 종이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와 눈을 마주치니 가슴속으로 뭔가가 훅, 하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환하게 웃는 엄마와 아빠의 사진을 걸어둔 채 수업이 시작되었다. 먼저 살색 반죽으로 얼굴과 몸통, 팔과 다리를 빚었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게 그저 신기했다. 남자 정장 만드는 법을 배워 아빠에게 옷을 입히고, 엄마의 옷도 만들어 입혔다. 반죽에 색을 내고 밀대로 밀고 재단하는 동안 시간이 훌쩍 빠르게 흘렀다.

  엄마의 옷은 엄마가 자주 입던 검은 외투에 검은 바지, 그리고 스카프. 더 예쁘고 화려한 옷으로 하고픈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엄마의 상징이었던 이 옷을 입혀야 진짜 엄마'스러울' 것 같았다. 엄마가 좋아했던 호피무늬 스카프까지 둘러주고 나니 모형이 꽤나 그럴듯해졌다. 신발은 엄마가 즐겨 신던 검은 단화로 정했다. 선생님은 어디선가 장식품이 담긴 통을 가져오시더니 원한다면 넣으라고 말씀해 주셨다. 와 정말요, 감사합니다! 대답하고서 고민 끝에 예쁘게 반짝이는 큐빅을 두 개 집었다. 신발에 큐빅을 박아 넣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괜히 서글퍼졌다. 겨우 이런 걸로 기분이 좋아지다니. 엄마한테 뭐라도 해준 것 같은 기분이 들다니 말이야. 열심히 몰두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선생님이 말했다.


  - 그런데 어머니께서 미인이시네요.

  - 앗ㅎㅎㅎ 그런가요? 감사해요..!


  울지 않기 위해 빠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사진을 보면서 계속 마음이 싱숭생숭했지만 간신히 참고 있던 참인데 선생님, 이렇게 훅 들어오시기 있나요.

  절대 울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정신을 부여잡고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이 말까지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선생님이 따뜻하고 좋은 분이셔서 말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고민하던 문장도 덧붙였다. 저, 사실 엄마가 몇 달 전에 돌아가셨거든요. 엄마가 이 수업 제가 꼭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간병하느라 못 오다가 이제야 왔어요. 엄마 납골당에 선물해 주고 싶어서요.


  - 어머, 그런 일이 있었군요.. 예쁘게 만들어가실 수 있게 제가 최선을 다해 알려드릴게요. 혹시 가방 만드는 것도 보여드릴까요?


  가방까지 알려주신다는 말에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의 상징이었던 버건디색 인조가죽 가방이 선생님의 손끝에서 조금씩 만들어졌다.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을 만들어 붙일 차례였다. 검은색 반죽을 머리카락 모양으로 재단하고 접착제를 발라 하나하나 붙였다. 사실 아무리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기고 가방을 들었어도 모형이 대머리일 때는 도무지 엄마 같지가 않았는데, 숱이 많아서 검고 풍성했던 엄마의 머리까지 완성하니 정말 엄마 같았다.

  온종일 누워 있었던 데다 산소호흡기 때문에 개운하게 씻을 수가 없어 머리가 거추장스럽다며 삭발을 하겠다던 엄마와 삭발은 안된다던 나는 엄마가 떠나기 며칠 전까지 머리 문제로 언쟁을 벌였었다. 헤어스타일에 관심이 많아서 늘 머리를 풍성하고 웨이브 있게 손질하곤 했던 엄마. 머리를 다 붙인 순간 마치 엄마가 되살아나 내 눈앞에 있는 듯한 착각에 휩싸였다. 내가 이렇게 만들어낸 엄마를 보여줬다면 엄마도 엄청 좋아했겠지? 내 손끝에서 만들어진 엄마와 눈앞의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를 보는 순간, 수업 내내 애써 억눌러 온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 아 선생님 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근데 너무 엄마랑 닮아서요.. 아 진짜 이런 거 처음인데. 어떡해요. 죄송해요...


  무슨 말씀이세요, 괜찮아요. 울고 싶을 땐 마음껏 울어야죠. 선생님은 놀라는 대신 따뜻한 위로와 함께 휴지를 건네주셨다. 나도 가게를 운영하고 있고 원데이 클래스도 하고 있는데 원데이 클래스를 와서 우는 수강생이라니, 그리고 그게 나라니 말도 안 돼. 역대급 흑역사를 생성했다는 얘길 하며 우리는 함께 웃었다. 아마도 나는 꽤 기억에 남는 수강생이 될 것 같다.


  집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원데이 클래스에서 만든 작품을 보여주었다. 아빠는 두 사람의 모형을 식탁 위에 놓아두고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가 오늘 찾아낸 사진들도 한참 동안 뒤적이면서, 오래오래.  


    

 

 

이전 09화 삶의 모든 곳에 당신이 묻어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