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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Apr 06. 2021

삶의 모든 곳에 당신이 묻어 있다

그리움에 대하여



  

  지난밤에는 꿈을 꾸었다. 오래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엄마와 응급실에서 입원 수속을 밟고 있었다. 나는 의식을 되찾은 엄마의 손을 반갑게 부여잡았고 엄마는 내가 좋아하던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봤다. 엄마, 의식이 없는 동안 무섭지 않았어? 내 질문에 엄마는 말이 안 나와서 무서웠어,라고 답했다. 케이크를 보냈던 병동의 간호사 선생님들과도 멋쩍게 조우했다. 다시 올 줄 알았으면 케이크 안 보내는 건데, 하고.

  지긋지긋해하던 응급실이었지만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엄마가 떠난 후로 달력이 몇 장 속절없이 넘어갔는데도 나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이 흐릿해질 것이라고 믿었고, 제발 그래 주기를 기대했다. 달력이 고작 몇 장 지나갔다고 그리움이 흐릿해지길 바란 건 욕심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리움은 시간에 반비례하지 않았다. 바쁘게 살 때는 조금 괜찮아진 것 같다가도, 순간순간 거칠게 돋아나 가슴 한복판을 찌르고 사라졌다.

  그 그리움 한복판에 미처 지우지 못한 엄마의 흔적들이 있었다.


  27년 동안 함께 살아온 엄마의 흔적을 지우기란 쉽지 않았다. 삶의 모든 곳에, 집안의 곳곳마다 엄마의 손길이 묻어 있었다. 거의 2년 동안은 침대에 누워 있기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흔적은 우리 방, 냉장고 안, 거실 곳곳에 가득했다. 미처 지우지 못한 엄마의 흔적들을 발견할 때마다 기억은 바로 어제처럼 삽시간에 되살아나 목이 꽉 메도록 만들었다. 양말 통 안에서 우연히 발견한 엄마가 신던 수면양말이라던지 엄마가 떠나기 일주일 전에 사라고 했던 갓김치 같은 것들. 나는 3kg만 사자고 했고 엄마는 5kg을 사라고 했다. 김치냉장고도 좁아 죽겠는데 굳이 5kg을 주문하라는 엄마와 한바탕 설전을 벌였었다. 아니 3kg도 많은데 다 먹고 또 사면 되지, 왜 굳이 5kg를 사야 되는데? 답답해하는 내 목소리에 엄마는 자음판으로 대답했다.


  너네 언니가 좋아해.


  엄마의 그 말 한마디에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주문했던 그 갓김치는 오늘 저녁에도 우리의 식탁에 올랐다. 언니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갓김치를 먹는다. 그렇게 갑자기 떠날 걸 알아서, 엄마는 그렇게 5kg을 사라고 우겼던 걸까.

  예상한 슬픔은 대비할 수 있지만 예상치 못한 그리움에 대비하기란 어렵다. 우리의 집과 내 삶에 묻어 있는 엄마의 온갖 흔적들이 자꾸 일상에 서글프게 스며든다. 못 보던 조그만 숟가락이 있어서 이 숟가락은 뭐지? 하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엄마에게 도라지청을 타 주던 전용 숟가락이라는 게 생각났다. 유난히 속이 안 좋아서 점심으로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할 때면 이럴 때마다 내게 짬뽕을 사주고 싶어 하던 엄마가 떠오른다. 예쁜 것을 보면 엄마와 이 풍경을 함께 보고 싶고, 맛있는 것을 먹을 때면 엄마와 이 음식을 함께 먹고 싶다. 좋은 일이 생기면 엄마와 함께 기뻐하고 싶다. 자랑스러운 일이 생기면 엄마에게 자랑해서 뿌듯해하는 엄마를 보고 싶다. 그리고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비로소 실감한다.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그리움이 유독 짙어지는 날이 있다. 엄마의 흔적들은 생각보다 너무 사소한 곳에까지 남아 있어서 그 사실에 종종 놀란다. 오랫동안 여행을 가지도, 먹지도 못한 엄마는 백종원 씨와 떠나는 세계 미식 여행을 좋아했다. 우리는 자막을 외울 정도로 그 방송을 보고 또 봤고, 오늘은 어느 나라 여행 갈까? 하고 물으면 엄마는 원하는 도시를 고르곤 했다. 다음에는 후쿠오카 편을 보자고 했었는데 후쿠오카 편을 보기 전에 엄마는 떠났다. '스트리트 푸드파이터' 방송이 이렇게나 자주 재방송하는지 몰랐다. 케이블 tv 채널을 돌릴 때마다 늘 멈칫한다. 엄마가 좋아했던 방송들, 엄마와 같이 봤던 방송들을 나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엄마가 보고 싶지만 엄마 생각이 나는 건 힘이 든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작년에는 구급차를 참 많이도 탔다. 거리에서 앰뷸런스 소리가 들릴 때면 아직도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소방서에서 운영하는 앰뷸런스인지, 사설 앰뷸런스인지를 살핀다. 응급 상황은 아니지만 거동이 불가능한 환자들이 개인 비용을 들여 타는 게 사설 앰뷸런스다. 오랫동안 우리는 모 사설 앰뷸런스 업체의 vip여서 이용로 7만 5천 원에서 5천 원을 할인받곤 했다. 앰뷸런스 소리가 들리면 엄마와 같이 탔던 앰뷸런스 안 장면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내가 한시라도 곁에 없으면 불안해했던 엄마 때문에 동승은 늘 나의 몫이었고, 내가 발치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엄마의 발을 토닥이곤 했었다. 가슴이 떨린다. 저 사설 앰뷸런스 안에는 또 어떤 삶이 담겨 있을까.


  흔적을 발견했을 때의 반응은 늘 똑같다. 잠깐 얼어붙은 듯 멈춰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흔적을 매만진다. 그 흔적을 따라 떠오르는 엄마와의 기억들이 가슴에 그리운 생채기를 남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엄마를 떠올릴 것이다. 내뱉는 숨결과 집안 구석구석과 지나치는 풍경마다.

   

  엄마는 이제 세상에 없지만, 내 세상은 여전히 엄마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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