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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Apr 25. 2021

비지찌개를 끓이며 엄마를 생각해.

내 꿈은 요리왕


 먹고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니까 그중에서도, '먹는다는 것'이.




 엄마가 아파서 누워 있는 동안 매주 대전에서 올라와 우리 집의 모든 반찬을 도맡아 해 주었던 이모가, 어느 날 한숨을 내쉬며 하신 말이 있다. "도대체, 인간은 왜 밥을 하루에 세 번이나 먹어야 하는 거냐고!" 이모의 그 말을, 이제는 내가 절실히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엄마가 아프기 전인 20대 초반까지는 그 흔한 설거지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늘 그릇이 몇 개 이상 쌓이기도 전에 싱크대를 물 한 방울 없이 깔끔하게 정리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엄마 덕분에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자라온 내가, 이렇게 별안간 주부가 되어버릴 줄이야.


  요리를 시작하는 젊은 사람들 중 대부분이 그렇듯 나도 백종원의 참 쉽쥬? 를 들으며 요리를 배웠다. 불행히도 나는 이 집에서 요리에 관심이 있는 유일한 가족 구성원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손맛이 뛰어나거나 재능이 탁월한 것도 아니어서 처음에는 된장찌개 하나를 익히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노하우가 없으니 재료를 손질하고 레시피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량하고 순서를 맞춰 육수에 투하하는 동안 찌개 한 냄비에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한다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식구가 먹는 반찬은 하루하루 쑥쑥 줄어들었고, 국이 없으면 밥을 못 먹는 까다로운 아빠 때문에 뭐가 됐든 냉장고에는 늘 찌개가 있어야 했다.    

  제자리를 빙빙 맴돌던 나의 요리 실력과 가짓수는 엄마가 떠난 뒤 이모 대신 반찬 홀로서기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된장찌개만 끓일 줄 알던 내가 미역국과 참치찌개를 끓일 줄 알게 되고 두부조림이나 계란말이, 버섯볶음, 각종 볶음밥에도 익숙해졌다. 물론 다 간단하기 그지없는 메뉴들이지만 이제는 핸드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지 않아도, 계량 없이도 바쁘게 착착 해내는 내가 어색하고 신기하다.


  그나마 동생은 집에서 만든 반찬들을 잘 먹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편식이 심했던 동생은 밖에서 사 온 음식들만 좋아한다. 그러면 자기가 뭐라도 재료를 사다가 집에서라도 해 먹으면 좋겠는데 매번 치킨만 시켜 먹는다. 매번 반복되는 똑같은 반찬들만 먹는 아빠도 꽤나 물려할 것 같아 신경이 쓰이지만 아빠가 할 줄 아는 요리라곤 오직 라면뿐. 이 무능한 두 남자들을 먹여 살리려니 골치가 지끈거린다. 외면하고 싶지만 마음 약한 나는 도무지 그럴 수 없다. 엄마가 떠난 후 아빠는 예전보다 많이 초라해졌다.


  길어진 고민 끝에 밀 키트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주부 1단인 내가 하기엔 엄두가 나지 않고, 4인 가족을 배불리 먹이려니 양조차 가늠하기 힘든 음식들을 큰 어려움 없이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정 12시가 땡 치자마자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서 그날그날 바뀌는 '오늘만 할인' 제품을 살핀다. 늘 모든 것을 사는 건 아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네 명의 입맛을 적당히 맞출 수 있고, 가격도 적당하고, 저번 주에 먹은 것과 겹치지 않고, 양도 넉넉해야 하니 나름대로 고르는 기준이 엄격하다. 코로나 때문에 외식하기에도 쉽지 않아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밀 키트로 특식을 준비한다. 덕분에 칼국수나 감자탕, 전골 등의 음식도 쉽게 먹을 수 있다. 밀 키트가 워낙 잘 돼 있다 보니 어쭙잖게 요리하는 것보다 사 먹는 게 더 싸다. 초라해진 두 남자를 배불리 먹이고 나면 그 주의 할당량을 어느 정도는 채운 기분이다. 덕분에 채워질 일 없는 잔고는 외면하기로 한다.




  며칠 전에는 태어나서 비지찌개를 끓였다. 비지찌개는 엄마가 종종 해주던 음식이었는데 엄마가 아픈 이후로는 먹은 적이 없었다. 사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매정할지 모르지만, 엄마의 음식이 그립지는 않다. 엄마는 MSG를 굉장히 혐오해서 조미료를 일절 쓰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의 음식에서는 늘 자연친화적(?)인 맛이 났다. 모름지기 모든 음식은 쇠고기다시다나 연두를 넣어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걸 생전의 그녀는 왜 내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아빠가 며칠 전부터 비지찌개가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서 어디서든 비지를 꼭 구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중이었다. 우연히 놀러 간 친구네 집 근처에서 우리 동네에는 없는 전통시장을 발견했다. 친구에게 콩비지를 꼭 구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시장을 가로질러 가기로 했다. 우리는 시장 중간쯤에서야 비로소 손두부 가게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토록 구하기 쉽지 않았던 콩비지들이 비닐봉지에 야무지게 묶여 매대에 놓여 있었다. 귀한 콩비지 두 봉을 계산하면서 두부 가게 아주머니께 비지찌개 끓이는 방법을 물어봤다. 사장님, 이거 찌개는 어떻게 끓여야 돼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비지를 사고 있는 나를 보며 친구는 남몰래 눈물을 닦았다고 했다.



  요리를 하다 보면 엄마가 유독 보고 싶어 진다. 엄마는 거실에 누워 지냈기 때문에 요리를 하다가 궁금한 게 생기면 늘 쪼르르 엄마에게 달려가서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다.  이 요리는 국간장을 넣어야 하는지 진간장을 넣어야 하는지, 생선 손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실 인터넷에 쳐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문제들이지만 그래도 괜히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어 지는 건 왜일까.       

  비지찌개가 한소끔 끓었다. 한 숟갈 떠서 맛을 본다. 처음 끓인 것치곤 제법 나쁘지 않지만 뭔가 밍밍하고 2% 부족한 맛, 엄마가 해 주던 바로 그 맛이다. 그러나 그녀와 달리 그녀의 딸은 여기에서 안주하지 않을 것이다. 망설임 없이 냉동고 문을 열어 다시다를 한 숟갈 퍼서 넣고 조금 더 끓인다. 비로소 깊은 맛(?)의 비지찌개 완성. 엄마가 본다면 등짝을 한 대 때리겠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맛이 중요하니까.

  엄마, 부디 이해해 줘. 아빠가 두 그릇 먹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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