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6 단어로 자신들을 울릴 소설을 써 보라고 내기를 걸자 그는 6 단어로 이런 초단편 소설을 지었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팝니다: 아기 신발. 사용한 적 없음.)
장례를 치른 후 한 달 동안 정말 원 없이 청소를 했다. 좁은 집에서 100L짜리 쓰레기봉투가 몇 개나 꽉꽉 채워 빠져나갔는지 헤아릴 수 없었다. 엄마의 흔적이 남은 것들을 버리면서는 많이 울었다. 장례 2일째에는 엄마에게 매일매일 타 주던 도라지 진액을 뜨거운 물에 녹여 싱크대 수챗구멍에 쏟아부었다. 작은 통을 사 먹고 변비에 효과를 보고서는 오래오래 먹으리라 다짐하며 큰 통을 재구매했던 게 불과 몇 주 전이었다.
이거 비싼 건데, 이렇게 버리는 거 엄마는 좋아하지 않을 텐데. 그래도 그 병을 매일 냉장고에서 마주칠 자신은 없었다. 엄마의 사망선고를 듣고서, 입원할 때 챙겨 왔던 도라지 병을 뚜껑도 제대로 닫지 못하고 아무 쇼핑백에나 던져 넣었었다. 마지막으로 입원한 5일 동안 밥이 도무지 먹히지 않았다. 먹을 수 있는 게 거의 없어 언니에게 가져다 달라고 했던 귤에 도라지 진액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이 귤을 다 먹기도 전에 엄마는 떠나버렸다.
정리에 혈안이 된 사람처럼 엄마에 관련된 것들을 버리고 또 버렸다. 떠나기 전 누워서만 지내느라 입은 지 한참 된 엄마의 옷들도 제대로 보지 않으려 애쓰며 거대한 쓰레기봉투에 쑤셔 넣었다. 마지막으로 코트 하나를 버리려다 흠칫하고 머뭇거렸다. 자신을 위해서는 돈 한 푼 제대로 쓴 적 없는 엄마가 유일하게 큰 마음먹고 사 왔던, 가장 좋아하던 브랜드의 코트. 남겨둘까 고민하다 펑펑 울면서 봉투에 넣었다.
의료에 관련된 것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엄마의 산소포화도를 재며 늘 곁에 붙어 있었던 산소포화도 측정기, 우리의 소통의 통로가 되어 준 자음판, 석션용 카데터와 온갖 소독용품들을 버렸다. 한시도 떼려야 뗄 수 없었던 인공호흡기와 산소발생기를 회사에서 회수해 가고 나니 늘 꽉 차 있었던 베란다가 허전해졌다.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석션기, 욕창매트, 네빌라이저는 중고로 팔았다. 7만 원짜리 네빌라이저를 내 돈으로 구입하면서 조금 고민이 되었지만 불안해하는 엄마를 위해 눈 꼭 감고 샀던 기억이 떠올랐다. 헤밍웨이처럼 나는 적었다.
'네빌라이저. 몇 번 쓴 적 없어 거의 새것입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6-7번째 이야기인 <혼혈 왕자>와 <죽음의 성물>은 주인공인 해리와 친구들이 작품 속 악당 볼드모트의 영혼(혹은 목숨)을 7개로 쪼개 놓은 존재인 '호크룩스'를 하나씩 파괴하는 내용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엄마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버리고 중고로 팔 때마다 엄마의 남아 있던 호크룩스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는 기분이었다. 해리 일행이 호크룩스를 하나하나 파괴할 때마다 파괴에 대한 대가로 고통을 겪게 되는데, 엄마의 호크룩스를 하나하나 지워가는 내 심경도 해리 일행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정리가 마무리되어 갈 무렵, 우리에게는 큰 고민거리가 생겼다. 거실을 점령하고 있는 거대한 마지막 호크룩스인- 엄마의 간병침대가 문제였다. 몇 년 전 교회 권사님의 시어머니께서 쓰시던 걸 받은 것이라 팔기도 애매하고, 볼 때마다 엄마 생각이 너무 많이 나는 물건이라 그냥 쓰기에도 쉽지 않았다. 가족들은 주춤거리며 가끔 침대에 앉기는 했지만 아무도 누워서 잘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루는 언니와 밤늦게 텔레비전을 보고 한번 용기를 내어 침대에 누워 봤다. 몇 년 동안 엄마가 바라보던 천장, 엄마가 바라보던 풍경은 이랬겠구나. 이 시선으로 엄마는 우리를 바라봤겠지.
그리움이 길어지기 전에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왔다.
고민 끝에 침대를 중고로 팔기로 마음먹었다. 담당자는 이번에도 나였다. 무려 중학생 때 중고나라에 경품으로 받은 로봇청소기를 팔아넘긴 화려한 중고거래 경력의 내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 거구의 전동침대를 판매하기란 쉽지 않았다. 처음에 뭣도 모르게 비싸게 올려둔 가격은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해서 조금씩 내려갔다. 찔러보는 사람은 몇몇 있었지만 그마저도 파투 나고 파투 나기를 반복했다. 거래가 성사된다면 용달까지 불러야 하는 특수한 물건이다 보니 그렇게 간혹 들어올 문의를 기다리며 몇 달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번개장터에서 번개톡이 왔다. 오늘 직접 보러 가도 되냐는 연락에 반가운 마음으로 주소를 알려주고 이름 모를 손님을 기다렸다. 가격을 내리고 내려서 20만 원에 올려놓은 침대를 조금만 깎아줄 수 있냐는 질문에 5만 원을 더 깎아주어 15만 원이 되었다. 오늘 이 손님과의 거래도 불발된다면 엄마를 너무 생각나게 만드는 저 침대와 몇 달을 더 동거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우선 침대를 실제로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손님은 장사에 쓰는 트럭을 가지고 온다는 말을 덧붙였다.
6시에 도착한다던 손님은 8시가 넘어서야 왔다. 문을 열자 내 키의 반 정도 되는 조그마한 키의, 왜소증을 가진 노부부가 서 계셨다. 거실로 들어온 할머니는 침대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더니 대뜸 오늘 당장 가져가겠다며 옮기는 걸 도와달라고 말씀하셨다. 함께 온 남편분은 환자여서 우리를 돕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이 무거운 침대를 장정 한 명 없이 우리 둘이서 차까지 옮겨야 한다고? 아빠와 나는 암담한 눈으로 잠시 서로를 마주 봤다. 해결책은 없어 보였다.
"허리 안 다치게 조심해."
"아빠도."
침대 매트리스와 뼈대를 분리하고 옆으로 뉘어서 간신히 문 밖으로 빼냈다. 낑낑대며 간신히 엘리베이터까지는 옮겼는데 엘리베이터에 싣는 게 또 문제였다. 1분에 1센티미터씩 조심스럽게 옮기고 있는데 문득 등 뒤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복도에 나가 운동을 할 때마다 마주쳤던 옆집 남자였다. 그는 어쩔 줄 몰라하는 우리를 보고는 선뜻 함께 침대를 넣어주었고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내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그의 도움으로 아파트 입구까지 무사히 나오고 나자 마침 밖에 나와 있던 언니와 트럭을 주차해놓고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가 다가와 침대를 함께 들었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힘이 깜짝 놀랄 정도로 대단했다. 저 작은 체구에서 나온 이런 힘으로 그녀는 한 평생을 능히 살아냈겠지.
온 힘을 다해 침대를 트럭에 실었다. 할머니는 트럭 운전석을 열더니 꼬깃꼬깃 접힌 5만 원권 세 장과 뻥튀기 세 봉지를 건네주었다. 오늘 팔고 남은 건데, 작지만 드리려고.
얼떨결에 뻥튀기를 받아 들었다. 오만 원권 세 장을 받아 쥔 손이 축축해졌다. 물론 받아도 되는 돈인 건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 든 손이 부끄러웠다. 어쩔 줄 몰라하다 곁에 서 있던 언니를 바라봤다. 언니의 눈시울이 이미 붉었다. 언니를 툭툭 치고 5만 원짜리 하나를 건네주며 눈으로 트럭을 가리켰다. 언니는 재빨리 운전석으로 달려가 5만 원을 돌려드렸다. 전부 돌려드리지 못한 내가 미웠지만 그 정도면 감사한 뻥튀기 세 봉지 값으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떠나는 트럭을 물끄러니 바라보며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마음으로 빌었다.
집에 돌아와 침대가 급히 빠져나간 자리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봤다. 침대 밑이라는 곳이 으레 그러하듯 미처 치우지 못한 엄마의 흔적들이 먼지에 뒤엉킨 채 남아 있었다. 그나마 일어날 힘이 남아 있을 때 사용했던 소변기, 손에서 미끄러져 놓친 약병들, 정체를 알 수 없는 안마기와 마지막으로 입원하던 날 구급대원들이 잘라낸 산소 호스. 산소 호스를 보다가 저 산소 줄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감정이 북받쳐서 급히 방으로 뛰어갔다. 왜 울어.. 묻는 언니에게 침대 밑에 산소 줄이 있길래,라고 대답했다. 나는 커다란 뻥튀기 봉지 곁에서, 언니는 그런 내 곁에서 울었다.
엄마의 마지막 호크룩스는 그렇게 사라졌다.
울어서 엉망이 된 얼굴 때문에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다 화장실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우리 삼 남매는 전부 엄마를 닮았는데, 나는 삼 남매 중에서 엄마의 젊은 시절을 가장 많이 닮은 딸이라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치 지금의 나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어쩌면 엄마의 진짜 마지막 호크룩스는 엄마를 빼닮은, 엄마를 평생 기억하며 살아갈 우리일지도 모른다. 침대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호크룩스는 실은 아직 셋이나 남아 있는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