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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Jul 06. 2021

어른이 되는 법을 연습하기로 해.

어른이 되고 싶은 어른이


  독립을 했다.

  라고 말하니 친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뭐야. 지역 어딘데? 같은 동네야? 뭐야 갑자기? 언니랑 같이 사는 거? 갑자기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 봐!

  낚시가 성공한 것을 확인하고 씩 웃으며 덧붙였다.


  아, 내가 독립한 건 아니고, 아빠가.


  



  그러니까, 아빠는 갑자기 강원도로 가겠다고 했다. 엄마가 떠난 직후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나서, 세 달 동안 받아 온 실업급여가 끝나 구인구직 사이트를 드나들기 시작한 지 정확히 5일 만의 일이었다.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지역과 업종은 계속해서 바뀌었다. 그제는 포항으로, 어제는 태안으로, 오늘은 강릉으로. 아빠는 일하게 될지도 모를 곳을 미리 보고 온다며 홍길동처럼 신출귀몰하게 전국을 쏘다녔다. 최종 목적지는 사흘 만에 강원도로 정해졌다. 오랜 시간 공무원이었던 아빠의 직업은 나와 함께 간병인이 되었다가 택시기사가 되었다가, 이제는 한 휴양시설의 관리인이 되었다.

  케이크 위에 그림을 그리던 중에 아빠의 연락을 받고 마음이 어지러웠다. 요즘 2-30대가 많이 쓰는 단어로 표현하자면 아빠는 '급발진'했다. 일하기로 한 시설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예 그날 밤은 하룻밤을 자고 돌아왔다. "야, 여기 풍경이 아주 끝내준다!" 하는 아빠의 목소리에서 흥분이 묻어났다. 아빠가 보고 있을 강원도의 별 많은 밤하늘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무심코 핥은 입술이 썼다. 아, 만약 실업급여가 아니었다면 장례를 마치자마자 떠났겠구나. 조금은 묘한 기분으로 전화를 끊었다.


  아빠랑 그렇게 정다운 사이도 아니었는데, 이 우습게 서운한 마음은 뭘까. 또래에 비해 우리를 늦게 낳은 편이라 그렇지 아빠도 벌써 60을 훌쩍 넘긴 어르신이다. 아빠도 자식들에게서 벗어나 아빠의 인생을 살 때가 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아픈 엄마의 곁을 지키는 동안 아빠가 가장 많이 본 프로그램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것도, 늘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것도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8년을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한 집에서 살다가,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갑작스럽게 떨어져 살게 된 사실에 단번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도 다 큰 성인이고 아빠와도 충분히 따로 살 나이가 되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공연히 그런 마음이 들었다. 시골에 살고 싶다던 자신의 꿈을 위해 또 떠나겠다는 아빠가 조금은 이기적으로 느껴져 미웠다. 엄마가 살아있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엄마가 떠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아빠도 우리를 떠나겠다니. 아빠는 정말 평생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구나.


  처음에는 낯선 상황들에 약간 겁이 났다. 우리 집에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세면대가 막히면? 갑자기 차단기가 내려가면? 컴퓨터가 고장 나면 누가 고쳐주지? 아빠는 세면대가 막히면 세면대 아래의 파이프 부분을 분리해서 뭔가를(?) 하곤 했었는데. 지금까지는 늘 아빠가 이런 일들을 해와서 손을 댈 일조차 없었다. 아빠, 이거 고장 났어. 아빠, 이거 해 줘. 하면 어느새 뚝딱 되어 있었으니까.

  그러나 실은 낯선 일들과 마주해야 하는 두려움보다는, 올해 들어 갑자기 급변해 버린 상황들을 받아들이는 게 여전히 조금은 버거웠다. 분명 반년 전까지는 다섯 명이서 복작거리면서 살았는데 엄마가 갑작스레 하늘로 떠나고, 이제는 아빠까지 타지로 떠난다니. 평생을 서울에서만 살았는데 서울이 조금 다른 동네처럼 느껴졌다. 이제 서울에서는 세면대 뚫는 법도 모르는 애 세 명의 이상한 동거가 시작될 예정이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라도 아빠의 빈자리는 애써 줄이려 노력해 온 엄마의 빈자리를 다시 생각나게 만들었다. 늘 사람이 빈 적 없었던 거실에는 이제 아무도 없다. 구인구직을 위해 컴퓨터가 필요하다며 엄마의 침대가 있던 자리를 차지한 아빠의 새 책상은 배달 온 지 열흘 만에 주인을 잃었다.


  아빠가 짐을 싸서 떠난 날에는 독립 기념 파티로 언니와 치킨을 먹고, 늘 그렇듯 야구를 봤다. 냉장고를 정리하면서 아빠의 반찬을 죄다 버리는 바람에 거대한 음식물 쓰레기통을 두 번이나 비웠다. 언니는 야구가 역전당하자마자 텔레비전을 끄고 종이와 펜을 가져왔다. 비상대책위원회를 열기 위해서였다. 흰 종이 위에 그동안 아빠의 영역이었던 일들을 꼼꼼히 적고 가사 분배에 대해 논의했다. 비대위를 마치고 난 뒤 나는 시무룩하게 말했다.


  "아빤 너무해. 엄마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언니는 펜을 놓고 허탈하게 웃었다.


  "야, 나 올해 서른이야."  

  "아. 인정."



 

  조선시대였으면 이미 애가 다섯쯤은 있었거나, 아니면 과거에 급제해서 열일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어른스럽게 굴어보려던 노력이 무색하게도 현실의 나는 이렇게 아직 한참 어린애였다는 걸 엄마 아빠가 내 삶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5년 동안 엄마의 일을 하나하나 넘겨받았듯이 시간이 흐르면 아빠랑 같이 살지 않아도 척척 세면대를 고칠 수 있게 되겠지.


  독립생활 2주일 차. 오전 내내 자도 날 깨울 사람이 없고, 하루에 라면을 두 번 먹어도 잔소리할 사람이 없다. 생각지 못한 삶의 질 향상을 얻었다.

  오, 이 정도의 거리. 꽤 나쁘지 않은 걸..?


강원도와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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