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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Aug 13. 2021

엄마는 우리를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Will Jay - House I used to call home



Will Jay - House I Used to Call Home


It was here on this floor  

that I learned to crawl

여기 이 바닥에서 기는 법을 배우고

 

And I took my first steps  

in the upstairs hall

위층의 복도에서 첫걸음마를 떼었죠

 

Crazy back then how it  

seemed so big to me

이상하죠 그땐 복도가 어찌나 커 보이던지

 

I can still see the

marks on the closet door

장롱 문에는 아직도 표시가 남아있네요

 

Mam and dad started

measuring me at four

엄마 아빠는 네 살부터 키를 재 주셨거든요

 

That was always  

my favorite spot for hide and seek

장롱은 숨바꼭질할 때 숨기 제일 좋은 곳이기도 했어요  


So to whoever lives here next

I have only one request

이 집에 머물 다음 주인에게 한 가지만 부탁드려요

 

Promise me that you'll take care

Of the place that knew me best

나를 가장 잘 아는 이 공간을 잘 돌봐주세요

 

I'll pack my memories and go

So you'll have room to make your own

저는 그만 추억을 싸서 떠나요

그래야 당신의 추억이 채울 공간이 생길 테니

 

Just be good to the house

That I used to call home

내가 집이라 부르던 이곳을 잘 부탁해요  


(중략)

      

Now I've gathered my things  

in a cardboard box

내 모든 짐을 이 박스에 담았고요

 

Found the old blanket  

I thought was lost

잃어버렸다 생각했던 오래된 담요도 찾았네요

 

It's the last time that I'll feel this  

floor under my feet

이 바닥의 촉감을 느끼는 것도 마지막이겠죠

      

I'll pack my memories and go

So youll have room to make your own

저는 그만 추억을 싸서 떠나요

그래야 당신의 추억으로 채울 공간이 생길 테니

 

Just be good to the house

That I used to call home

내가 집이라 부르던 이곳을 잘 부탁해요  


As I'm leaving, this house never  

looked so small to me

떠나려는데, 이 집이 이렇게 작게 느껴지긴 처음이에요

      




  엄마의 장례를 치르며 가장 많이 들은 문장 중의 하나는 이거였다.

  "너희 엄마가, 너희를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보통은 의례적으로 건네는 말이겠지만, 의례적인 말이 아니었다. 엄마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안타까운 눈빛 그리고 어깨를 무겁게 쓰다듬는 손길과 함께 수십수백 번은 들은 것 같은 문장. 들어도 들어도 아픈 문장이었다. 엄마는 떠나기 이틀 전에 심근경색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얼마 있지 않아 의식을 잃었다. 의식을 잃기 전 눈을 깜박여 힘겹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심근경색에 관련된 보험이 있으니 청구를 하라는 거였다. 마지막으로 한 얘기가 진단금 얘기라니 어이없었지만 엄마라는 사람에 대해 잘 아는 나로서는 참 엄마다운 마지막 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마련한 사람도 엄마였다. 엄마는 세 명의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돌보면서도 늘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집을 찾아다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엄마도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결코 노린 건 아니었지만, 잊을 만하면 만나곤 하던 119 구급대원 분들은 엄마를 이송하기에 넉넉한 오래된 아파트 특유의 넓은 엘리베이터를 반겼다. 엄마가 하늘로 떠난 지 한 달이 되던 날은 집의 담보대출이 만기 되어 갚아야 하는 날이었다. 엄마의 앞으로 나온 마지막 보험금은 남아있던 대출금과 정확히 일치했다.


  엄마의 보험금으로 대출금을 마저 갚고 은행을 나오는 길에 많이 울었다. 엄마는 이 대출을 다 갚을 날을 언제나 기다렸는데, 내가 다 갚아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결국 엄마는 마지막까지도 우리가 살 집을 빚 없이 온전히 남겨놓고서 떠났구나. 평생 남에게 빚도 지지 않고 폐도 끼치고 싶지 않아했던 사람, 이것마저 정말 엄마다워.

 



  요즘 빠져 있는 슈퍼밴드의 본선 2라운드를 보다가 이 노래를 들었다. 서정적인 기타와 바이올린 연주, 그리고 따뜻한 피아노 선율에 겹쳐진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목소리. 1절을 듣는 동안 지금까지 우리가 수도 없이 이사했던 집들이 생각났다. 거실 없이 방만 있었던 내 기억 속의 첫 집에는 불개미가 워낙 많아서 순두부찌개를 먹을 때마다 종종 뚝배기 속에서 불개미를 발견했었지. 불개미를 씹으면 톡톡 소리가 났다. 유난 떨 것 없다고, 지금까지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벌레를 먹었겠냐고, 다 단백질이라고 농담하며 우리는 깔깔 웃었다.


  두 번째 집, 학구열에 불타던 엄마는 안 그래도 좁은 거실의 한 벽면을 책과 책꽂이로 가득 채워주었다. 온 벽면을 집어삼킨 책꽂이에 비해 금성 텔레비전은 너무 조그맣다 못해 초라해 보였다. 우리는 걸핏하면 지지직거리는 텔레비전 대신 그 책을 읽으면서 자랐다. 엄마는 생활이 어려운 달에도 우리에게 책을 사주는 데 한 번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세 번째 집에서 나는 고3이 되었고, 고3이라는 이유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방을 가져봤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았던 곳 중에서 가장 넓은 집이었지만 천장에서 물이 새서 엄마는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나는 1년간 내 방의 특권을 누리다가 대학생이 되자마자 다시 언니와 같은 방으로 쫓겨났다. 대학생활의 끝자락에 엄마가 환자가 되고 나서 도망치듯 지금의 마지막 집으로 이사를 왔다. 치울 수 있는 것을 다 치웠지만, 여전히 엄마의 흔적과 함께한 추억으로 가득한 집.


  노래를 듣다가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차올라 무대를 보는 내내 울었다. 노래의 가사가 처음엔 내 이야기로 들리더니, 그다음에는 엄마의 이야기로 들렸다.

  사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좀 이상했다. 언니를 위해 이상하리만큼 많은 양의 갓김치를 주문했고, 노총각인 삼촌에게 반찬을 보냈다. 떠나기 일주일 전에는 언니와 나에게 돈을 빌려서 대출을 조금 갚았다. 갑자기 딱 몇백만원만 대출을 더 갚자고 조르는 엄마가 이상했다. 한참 실랑이하다 결국 언니와 엄마가 원하는 액수만큼의 대출을 갚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확히 사망보험금만큼의 액수만 남겨둔 채로.


  이 집을 떠나기 전 엄마는 떠나게 될 것을 예감했을까? 떠나기 직전까지 우리 생각밖에 없었던 엄마. 걱정이 무지무지하게 많았던 우리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우리를 남겨둔 채 눈을 감았을까.




  엄마의 마지막 흔적이었던 간병침대를 팔기 전에 마지막으로 침대에 누워본 적이 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이며 텔레비전을 바라보니 엄마가 된 것 같았다. 응급실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나던 날 119를 기다리며 엄마는 이 침대에 누워 마지막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가 함께한 시간과 추억들을 잘 싸서 떠났을까.

  노래를 듣는 동안 엄마가 너무너무 생각나서, 그래서 한참을 울었다. 노래는 너무 좋아서 계속 듣는데 들을 때마다 감정이 올라와 매번 울게 되는 야속한 노래와 무대.


  이 집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되는 요즘이다. 위치를 잡는 일이 도통 쉽지 않다. 아빠에게는 어떤 딸이 되어야 할지, 어떤 누나가 되고 어떤 동생이 되어야 할지. 엄마의 빈자리를 어떤 방식으로 채워야 하는지. 또 그리움을 어떻게 껴안은 채로 살아가야 하는지.

  엄마가 온 힘을 다해 쌓아 올린 안락한 철옹성 같은 이 집에서 안전하게 머물러야지. 그리고 이 집에 머무는 동안에도 그 이후에도 잊지 말아야지.

  당신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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