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생일날 갔던 납골당에는 칸칸이 이런저런 소품들로 가득했다. 온갖 미니어처와 조화, 사진, 고인을 추억하는 편지들이 가로와 세로 30cm 남짓한 공간 안에 채워져 있었다. 아, 납골당에는 이렇게 장식을 하는구나. 그 사이, 아무런 장식 없이 유골함만 덩그러니 들어 있는 엄마의 자리가 괜히 쓸쓸해 보여 마음이 쓰였다.
납골당에는 다양한 이들이 있었다. 어쩌다 이런 나이에 갔을까 싶은 어린 아이나 내 또래의 사람들, 불과 어제 안치된 사람들, 마찬가지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처럼 아무런 장식도 없는 사람들까지.
집에 돌아와 납골당에 넣을 만한 소품들을 검색해 봤다. 다양한 사진액자 제작 업체와 미니어처, 꽃, 화환 리스 등의 업체들이 쏟아졌다. 이런 시장도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면서도 씁쓸해졌다. 사진을 넣는 게 가장 무난할 것 같은데 우리에겐 제대로 된 가족사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멋진 사회인이 되어서 엄마와 같이 여행을 다니고 맛집을 돌아다닐 즈음이 되면 그때 부지런히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삶에 치이면 치이는 대로 그렇게 숨 가쁜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사진첩에는 엄마와의 사진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언제 찍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화질 나쁜 사진들을 보니 입맛이 썼다.
생각해 보면 투병 초기 때라도 진작에 가족사진을 찍어둘 걸 그랬나 싶었다. 별안간 우리에게 들이닥친 충격에 어안이 벙벙해서 하루 이틀 흘려보낸 시간들이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어느덧 5년이 된 걸 생각하니. 하루하루 쇠약해지고 고개도 가누지 못하는 엄마에게 사진을 찍자는 제의를 차마 할 수 없었다.
가장 후회가 되는 건 동영상을 많이 찍어두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플 테니 차마 자주 보진 못하더라도 동영상이라도 많이 찍어둘 걸. 화면 속에서나마 살아 움직이는 엄마를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나마 동생이 찍어 둔 짧은 동영상과 음성 녹음 파일이 서너 개 남아 있었다. 볼 때마다 눈물이 흐르지만 가끔 엄마가 아주 보고 싶은 날에만 들여다보는 기억들.
고민 끝에, 내가 가족사진을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기존의 개개인을 합쳐서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주는 업체에 의뢰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한 지 오래돼서 잘 기억도 안 나는 포토샵을 켰다. 엄마와 아빠, 언니와 나, 남동생의 사진을 각각 다른 사진에서 모은 뒤 누끼를 땄다. 기존의 다른 가족사진에서 배경을 추출하고, 조악하게 모은 각자의 사진을 한 레이어에 모았다. 아팠던 5년간의 인상이 너무 강렬했던 탓에, 건강했던 시절의 엄마 사진은 조금 어색했다.
처음에는 우리 가족만 할까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외가 식구들에게도 가족사진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일찍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요양병원에 계신 외할머니까지 합쳐서 함께인 사진을 만든다면, 이모와 삼촌들에게도 특별한 선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오랜 기다림 끝에 받은 그림 파일을 다시 사진 제작 업체에 보냈다. 비록 실제 사진도 아니고 완벽히 닮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각자 다른 곳에 있는 우리가 작은 액자 속에 다시 모인 순간을 보니 반가우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저릿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