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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Oct 06. 2021

언젠가 당신을 다시 만난다면

고영열, <그대의 날개가 되어>

  엄마가 떠난 뒤 두 번째 명절이 지났다. 설날은 명절이랄 것도 없이 어영부영 지나갔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뒤 맞는 첫 명절. 투병을 해오던 지난 5년간 우리에겐 명절이 없었다. 가족들은 모이지 않았고, 경관 유동식 외엔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엄마 앞에서 명절 음식은 할 일이 없었으니까. 다만 우리를 기억하시는 고마운 분들이 각자의 집에서 한 명절 음식을 조금씩 가져다주신 것으로 간신히 명절 분위기만 조금 흉내 내는 것이 전부였다.

  5년을 그렇게 지냈더니 명절 없는 삶에 익숙해져서일까. 이번 추석에도 딱히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연일 이어진 송편 수업 때문에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떡 공방에 추석의 한가함이란 사치나 다름없으니까.


  일을 하다 보면 공방 앞을 지나가는 노상 판매 트럭의 외침이 종종 들려온다. 의성 마늘, 오늘만 싸게 팝니다~ 얼른 나오셔서 사가세요~ 하는 식이다. 처음에는 조금 거슬렸던 그 소리는 이제는 어느덧 익숙해져서 이따금씩은 홀린 듯 귀를 기울이게 된다. 명절 전날 트럭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오징어. 명절에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정신을 차려 보니 나도 모르게 앞치마를 입은 채로 뛰어나와 오징어를 계산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만져보는 오징어, 손질법도 모르는데... 시세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열 마리에 만 원이면 나쁘지 않잖아? 하며.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오징어를 데리고 퇴근하는 길에 집 근처 마트를 지나다가 잠시 시선이 머물렀다. 진열대에는 한껏 포장된 과일 박스들이 즐비했고 뭔가를 봉투에 가득 담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 분주한 광경을 보다 보니 왠지 나도 모르게 조금 서러워졌다. 이런 광경에서 소외되는 건 너무 엄마 없는 집이라고 광고하는 것 같았다. 마트 앞에 서서 멍하니 마음을 돌아보니 명절 분위기를 내는 것 자체가 엄마에게 미안했던가 보다.

  마트 안으로 들어가서 얼린 동태포 두 팩과 부침가루를 집어 들고, 공연히 과일도 조금 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오징어와 동태로 전을 부쳤다. 난생처음 직접 해 보는 전이지만 다행히 맛이 나쁘지 않았다. 엄마 없이 우리끼리만 명절을 지내서 미안했지만 그렇다고 계속해서 풀 죽어 있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기운 내야 엄마도 좋아할 테니까, 엄마는 그런 사람이니까.


  밥을 먹고 나자 너무 배가 불러서 언니와 집 근처 동산을 올랐다. 동산이지만 높이가 제법 있어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이자, 엄마와 함께 운동하러 자주 왔던 곳. 한 시간 넘게 걷고 나서 벤치에 앉아 그날 나온 따끈한 신곡을 들었다. 가사 속에는 엄마와 하고 싶은 일들이 가득했다. 말갛고 파란 하늘 어딘가 엄마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자꾸 눈물이 났다. 바람이 불어오는 벤치에서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언젠가 엄마를 다시 만나는 날 함께 저 하늘을 날고 싶다. 훨훨 날아가 구름 위에도 앉아 보고, 별들의 노래도 들어보고. 둘 다 몸치지만 손을 잡고 눈을 감고 춤을 출 수도 있겠지. 따뜻하게 손을 잡고 우리가 가보지 못했던 먼바다도 느껴보자. 긴 말은 필요 없으니 그저 너른 해변가를 오래도록 걸으며 파도의 소리를 들어보자.

  휠체어 없이도 걸을 수 있도록, 5년간 그랬듯이, 다시 만나는 날에도 기꺼이 엄마의 날개가 되어줄게.


  엄마, 그곳의 명절은 잘 보냈어?

  나도 씩씩하게 잘 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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