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의례적으로 건네는 말이겠지만, 의례적인 말이 아니었다. 엄마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안타까운 눈빛 그리고 어깨를 무겁게 쓰다듬는 손길과 함께 수십수백 번은 들은 것 같은 문장. 들어도 들어도 아픈 문장이었다. 엄마는 떠나기 이틀 전에 심근경색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얼마 있지 않아 의식을 잃었다. 의식을 잃기 전 눈을 깜박여 힘겹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심근경색에 관련된 보험이 있으니 청구를 하라는 거였다. 마지막으로 한 얘기가 진단금 얘기라니 어이없었지만 엄마라는 사람에 대해 잘 아는 나로서는 참 엄마다운 마지막 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마련한 사람도 엄마였다. 엄마는 세 명의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돌보면서도 늘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집을 찾아다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엄마도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결코 노린 건 아니었지만, 잊을 만하면 만나곤 하던 119 구급대원 분들은 엄마를 이송하기에 넉넉한 오래된 아파트 특유의 넓은 엘리베이터를 반겼다. 엄마가 하늘로 떠난 지 한 달이 되던 날은 집의 담보대출이 만기 되어 갚아야 하는 날이었다. 엄마의 앞으로 나온 마지막 보험금은 남아있던 대출금과 정확히 일치했다.
엄마의 보험금으로 대출금을 마저 갚고 은행을 나오는 길에 많이 울었다. 엄마는 이 대출을 다 갚을 날을 언제나 기다렸는데, 내가 다 갚아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결국 엄마는 마지막까지도 우리가 살 집을 빚 없이 온전히 남겨놓고서 떠났구나. 평생 남에게 빚도 지지 않고 폐도 끼치고 싶지 않아했던 사람, 이것마저 정말 엄마다워.
요즘 빠져 있는 슈퍼밴드의 본선 2라운드를 보다가 이 노래를 들었다. 서정적인 기타와 바이올린 연주, 그리고 따뜻한 피아노 선율에 겹쳐진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목소리. 1절을 듣는 동안 지금까지 우리가 수도 없이 이사했던 집들이 생각났다. 거실 없이 방만 있었던 내 기억 속의 첫 집에는 불개미가 워낙 많아서 순두부찌개를 먹을 때마다 종종 뚝배기 속에서 불개미를 발견했었지. 불개미를 씹으면 톡톡하는 소리가 났다. 유난 떨 것 없다고, 지금까지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벌레를 먹었겠냐고, 다 단백질이라고 농담하며 우리는 깔깔 웃었다.
두 번째 집, 학구열에 불타던 엄마는 안 그래도 좁은 거실의 한 벽면을 책과 책꽂이로 가득 채워주었다. 온 벽면을 집어삼킨 책꽂이에 비해 금성 텔레비전은 너무 조그맣다 못해 초라해 보였다. 우리는 걸핏하면 지지직거리는 텔레비전 대신 그 책을 읽으면서 자랐다. 엄마는 생활이 어려운 달에도 우리에게 책을 사주는 데 한 번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세 번째 집에서 나는 고3이 되었고, 고3이라는 이유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방을 가져봤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았던 곳 중에서 가장 넓은 집이었지만 천장에서 물이 새서 엄마는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나는 1년간 내 방의 특권을 누리다가 대학생이 되자마자 다시 언니와 같은 방으로 쫓겨났다. 대학생활의 끝자락에 엄마가 환자가 되고 나서 도망치듯 지금의 마지막 집으로 이사를 왔다. 치울 수 있는 것을 다 치웠지만, 여전히 엄마의 흔적과 함께한 추억으로 가득한 집.
노래를 듣다가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차올라 무대를 보는 내내 울었다. 노래의 가사가 처음엔 내 이야기로 들리더니, 그다음에는 엄마의 이야기로 들렸다.
사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좀 이상했다. 언니를 위해 이상하리만큼 많은 양의 갓김치를 주문했고, 노총각인 삼촌에게 반찬을 보냈다. 떠나기 일주일 전에는 언니와 나에게 돈을 빌려서 대출을 조금 갚았다. 갑자기 딱 몇백만원만 대출을 더 갚자고 조르는 엄마가 이상했다. 한참 실랑이하다 결국 언니와 엄마가 원하는 액수만큼의 대출을 갚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확히 사망보험금만큼의 액수만 남겨둔 채로.
이 집을 떠나기 전 엄마는 떠나게 될 것을 예감했을까? 떠나기 직전까지 우리 생각밖에 없었던 엄마. 걱정이 무지무지하게 많았던 우리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우리를 남겨둔 채 눈을 감았을까.
엄마의 마지막 흔적이었던 간병침대를 팔기 전에 마지막으로 침대에 누워본 적이 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이며 텔레비전을 바라보니 엄마가 된 것 같았다. 응급실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나던 날 119를 기다리며 엄마는 이 침대에 누워 마지막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가 함께한 시간과 추억들을 잘 싸서 떠났을까.
노래를 듣는 동안 엄마가 너무너무 생각나서, 그래서 한참을 울었다. 노래는 너무 좋아서 계속 듣는데 들을 때마다 감정이 올라와 매번 울게 되는 야속한 노래와 무대.
이 집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되는 요즘이다. 위치를 잡는 일이 도통 쉽지 않다. 아빠에게는 어떤 딸이 되어야 할지, 어떤 누나가 되고 어떤 동생이 되어야 할지. 엄마의 빈자리를 어떤 방식으로 채워야 하는지. 또 그리움을 어떻게 껴안은 채로 살아가야 하는지.
엄마가 온 힘을 다해 쌓아 올린 안락한 철옹성 같은 이 집에서 안전하게 머물러야지. 그리고 이 집에 머무는 동안에도 그 이후에도 잊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