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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Jul 27. 2021

삶은 정말이지, 돌발성 난청 같은

우리의 면역력이 더 단단해질 때까지



  친한 친구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가장 친한 친구 S의 집들이를 갔다. 가계약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친구가 좋아하는 토토로 식기 세트와 무드등을 집들이 선물로 주문해 두었었다. 비닐도 떼지 않은 무드등을 몰래 켜보면서 마음이 설렜다. 고등학교 1학년에 만나 10년 넘게 절친으로 지내온 S가 독립을 하기까지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대단히 똥차였던 전남친 몇 명이 스쳐 지나갔고, 부모님과 수도 없이 싸웠으며,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회사에 취직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청춘을 보냈다. 그리고 그녀의 파란만장한 페이지에는 늘 내가 함께 있었다. 첫 자취라니, 내 집이 생긴 것처럼 감격이었다. 그러니 어떤 집들이 선물을 줘도 아깝지 않을 수밖에!


  집을 보러 다닐 때도 같이 다녔지만 정작 새로 계약한 곳에는 가보지 못했다. 기대되는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고 집들이 선물도 꼼꼼히 챙겨 쇼핑백에 넣었다. 30분 거리에 살고, 한 달에 한 번씩은 만나니 특별할 것 없는 만남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무려 집들이가 아니던가. 버스를 타고 S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유독 날씨가 좋았다.


  퇴근길에 만난 S와 반가운 상봉을 한 뒤 그녀의 첫 자취방에 앉아 차곡차곡 모아둔 한 달치의 수다를 떨었다. 입주한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아 방은 아직 어수선했다. 붙박이장의 크기와 위치 선정에 대해 평가하고 밥솥은 누가 사준 건지 물어보고, 빨래건조대의 배치는 이게 최선이었는지에 대해 토론하는 사이 배달음식이 도착했다. S가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주문해 둔 파스타와 필라프도 맛있었지만 그보다는 세트메뉴에 포함되어 있던 청포도 에이드가 압권이었다. 분명히 저녁을 배불리 먹었는데도 디저트가 아쉬워서 케이크를 사러 산책을 나왔다. 어스름한 저녁이 내려앉은 거리를 여유롭게 걷다가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케이크를 한 조각 사고, 그러고도 아쉬워서 편의점에 들어가 롤케이크를 하나 더 샀다.


  다시 자취방에 돌아오니 그사이 도착한 택배들이 우수수 쌓여 있었다. 케이크는 식탁 위에 잠시 올려두고서 함께 택배를 뜯었다. 주방 파티션과 모던한 수저, 암막커튼과 커튼에 길게 거는 알전구 등등. 분명 꼭 필요한 것만 샀다고 했는데... 알전구를 꺼내며 S를 째려봤다. 야, 너 꼭 필요한 것만 샀다며? S는 황급히 내 손에서 알전구 묶음을 낚아채고는 머쓱하게 웃었다.

  택배를 마저 뜯고 있는데 핸드폰에 길게 진동이 울렸다. 언니의 전화였다. 우리는 대부분 카톡으로 연락을 하기 때문에 급한 일이 아니면 웬만하면 전화를 거는 일이 없었다. 지금 친구 집에 있는 거 알 텐데, 무슨 일로 전화를?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너 지금 친구 집이지?

- 응응. 왜?

- 나 회사에서 갑자기 귀가 먹먹하고 삐- 소리가 나기 시작했는데, 증상을 검색해보니 돌발성 난청인 것 같아. 응급실에 가보려는데, 혼자 가기가 좀 그래서.. 미안하지만 같이 가줄 수 있어..?

- 어. 일단 끊어봐. 지금 당장 갈게.


  S는 창백해진 내 얼굴을 보더니 빠르게 큰 길가로 함께 나와 택시를 잡아주었다. 그 와중에 미안해서 어쩌지... 케이크는 너 먹어! 하고 애써 웃어 보이는 나를 서둘러 택시에 밀어 넣고 이따 연락하라며 손을 흔들었다. 일단 집으로 가서 언니를 택시에 태워 함께 병원으로 갈 참이었다. 연예인들의 기사에서 얼핏 본 것 같기도 하지만 처음 알게 된 돌발성 난청을 인터넷에 검색해봤다. 1/3의 확률로 청력을 잃을 수도 있는 증상이라고 했다. 택시 뒷좌석에 앉아 손톱 아랫부분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오랜만에 심장이 뛰었다.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정해야 했던 건 물론 어느 병원에 갈 것인지였다. 우리가 태어나고 엄마는 떠난, 가장 가까운 병원이 있었지만 언니는 그 병원에는 가기 싫다고 했다. 저녁이라 응급실에 가야만 했는데- 우리에게 그 병원 응급실은 눈을 감고도 그 풍경이 눈에 선할 만큼 익숙하고도 지긋지긋하며 더불어 너무 아픈 기억들이 묻어 있는 곳이라 언니가 그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고민 끝에 조금 멀지만 집에서 그나마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우리는 말이 없었고 서로 창밖을 바라봤다. 우리는 응급실에 가는 길이었으니, 아마 언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였다.


  여전히 코로나 시국이라 응급실에 들어가는 길은 제법 삼엄했다. 방문자 명부를 작성하고, 응급실 앞에 임시로 설치된 부스에 가서 난청 증세와 코로나에 관련된 간단한 문진을 거쳤다. 안전요원은 나를 흘낏 바라보더니 환자분과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라고 물었다. 동생이에요. 짧게 대답한 문장이 어색했다. 불과 작년에는 이 대답을 수도 없이 했었다. 아, 제가 보호자고요. 딸이에요.

  저 대답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왠지 조금 슬퍼졌다.


  응급실로 들어서는 언니의 뒤를 열심히 따라가 나란히 의자에 앉았다. 저녁을 지나 밤이 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응급실은 분주했다. 엄마가 떠난 이후로는 한 번도 병원에 간 적 없었는데, '병원'과 '응급실'이라는 단어는 듣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었다. 응급실 의자에 앉아 응급실의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엄마와 함께 갔던 수많은 응급실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늘 그 응급실에서 제일 중한 환자의 보호자였는데, 이 포지션은 아무래도 영 어색한 걸.


  "저기, 보호자 비용은 얼마 주시나요? 제가 중증환자 전문 고급 인력이라, 거동이 가능한 환자는 처음 맡아보는데."


  다소 긴장한 표정의 언니에게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이후에도 꽤 오래 기다린 끝에 청력 검사와 피검사 등 각종 검사가 이어졌다. 청력검사를 받는 언니의 뒷모습을 검사실 밖에서 지켜봤다. 괜히 더 조그매 보이는 어깨가 안쓰러웠다. 예상대로 돌발성 난청이 맞았다. 다행히 그리 심한 정도는 아니어서 경과를 지켜보기로 하고, 스테로이드제를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언니는 스테로이드 부작용이 걱정됐는지 급히 다음날 병가를 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채 이불을 깔고 나란히 누웠다.

  미친 듯이 가고 싶었던 최애 가수의 콘서트까지 포기해가며 조심한 결과 한 달 후에는 청력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다행스러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의 삶에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있겠지. 그 가운데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일들도 허다하겠지. 마치 오늘의 돌발성 난청처럼 말이야. 언젠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삶이니까- 이 삶을 살아내는 동안 그 정도는 각오해야 하겠지.

  그래도 심하지만 않으면 좋겠다. 우리의 삶에 돌발성 난청 같은 무언가가 닥쳐올 때 택시를 타고 금세 데리러 갈 수 있는 거리에 내가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디 엄마를 보내며 쇠할 대로 쇠한 우리의 마음이 크고 단단하게 회복되어 면역력이 아주아주 강해지기 전까지는- 아니 그 후에도 아무 일도 없기를.

  오늘도 무사히, 이 삶을 견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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