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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Oct 24. 2021

벌써, 일 년: 엄마가 떠나도 봄은 오더라



  성큼 겨울이 왔다. 서늘한 거실을 향해 따뜻한 이불속에서 몸을 꺼내는 일이 겨울이 깊어질수록 점점 힘겨워진다.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양치를 한 뒤 세수를 한다. 세안 밴드를 한 채로 손바닥에 클렌징 폼을 쭉 짜다가 물끄러미 거울 속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왼쪽 뺨을 뒤덮었던 트러블들이 어느새 많이 가라앉았다.


  작년, 그러니까 2020년의 3분의 1에 가까운 4개월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딱딱한 갈색의 조그만 보호자 침대를 유일한 휴식처 삼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못한 데다 코로나 때문에 24시간 쓰고 있어야 했던 마스크 너머로 셀 수 없이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던 통에 마스크는 항상 젖어 있었다.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났지만 병원에 갇혀 있느라 약국에 가서 줄을 서 마스크를 구할 여유가 없었기에 눈물에 젖은 마스크를 말려서 또 쓰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1년을 보내는 동안 왼쪽 뺨에 붉은 피부 트러블이 우수수 생겨났다. 엄청나게 좋은 피부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별로 예민하지 않은 피부라 살면서 여드름 때문에 딱히 고민해 본 적은 없었는데. 뺨을 붉게 뒤덮은 여드름들을 슬퍼할 시간도 없이 온수가 나오지 않는 병원의 찬물로 세수를 했다.


  장례를 뒤에도 여드름은 여전히 붉게 남아 나를 괴롭혔다. 조금 나아지나 싶다가도 같은 자리에 계속해서 다시 올라오고 또 올라왔다. 어느 날은 거울을 보다가 '이건 정말 평생 안 사라질 것 같은데'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나름 좋다는 제품도 사서 써봤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나아졌다 싶다가도 다시 돋아나는 이 트러블들이, 문득 엄마를 잃은 내 마음 같았다. 이젠 좀 괜찮아졌나? 싶다가도 길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차오르는 눈물과 여전히 놓지 못한 추억들.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빈자리와 여전히 낡게 해어진 마음들, 줄어들지 않는 그리움까지.

  작년 겨울에 엄마를 떠나보내고 처음으로 엄마 없이 맞는 겨울이다. 작년 이맘 즈음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린 지 벌써 일 년이 되었고, 조금 있으면 엄마의 기일이 돌아온다.




  찬바람이 불어오기 무섭게 엄마 생각이 짙어진다. 겨울은 원래 싫어했던 계절이었지만 엄마를 보낸 뒤 더 싫어졌다. 지독히 추웠던 어느 날, 엄마가 긴 아픔을 끝내고 우리 곁을 떠났던 날. 찬 공기를 들이마시면 장례를 치르던 3일간의 기억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병원 앞에 서 있던, 엄마의 관을 실은 리무진에 타기 전 병원 정문을 쳐다봤었다. 우리가 극적으로 3개월 만에 퇴원을 했던 지난봄에는 퇴원하던 날 저곳에 목련이 피었었는데 발인을 하던 날의 목련나무 가지는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엄마가 떠난 이듬해를 보내며 가장 놀라웠던 건 다시 돌아온 봄이었다. 태어나서 28번째로 맞이하는 봄인데도 엄마가 없는 봄은 너무너무 어색하고 생경해서 위화감마저 들었다. 아니, 엄마가 없는데 봄이 온다고? 여전히 지독한 겨울을 나고 있는 마음은 제멋대로 따뜻해진 날씨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거부감마저 들었다. 따뜻해진 날씨에 아주 조금의 행복이나 기쁨이라도 느끼면 안 될 것 같았다. 계속해서 겨울을 살아내야, 오래도록 아프고 추워해야 엄마에게 덜 미안할 것 같았다.


  엄마의 사망신고와 행정적인 절차를 치르다 어영부영 겨울이 지났고, 2월의 끝자락에 엄마가 없는 첫 생일을 보냈다. 엄마가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었다는 어설픈 다행스러움을 곱씹으며 버티다가 기어이 그 합리화가 통하지 않는 순간이 오자 지독히도 아팠다. 그리움과 죄책감, 후회와 미안함이 엉켜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이런 내가 봄을 맞이할 자격이 있을까- 라는 물음표를 남긴 채, 다시 겨울이 왔다.


  다만 엄마가 없는 첫 사계절을 보내며 더 깊이 확신한 것이 한 가지 있다. 엄마를 그리워하며 지나온 삶의 이곳저곳을 반추하노라니 새삼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매일같이 깨닫게 된다. 어쩌면 나는 이 1년 조금 안 되는 시간을 그 사랑에 힘입어 살았다. 세상에 누군가 나를 이렇게까지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 그 사랑하는 사람이 내 인생에 잠깐이나마 함께였다는 것. 그 사실이 삶의 가장 힘겨운 시간을 능히 견딜 수 있게 했다.

  세상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엄마는 여전히 나를 살게 하고 있다.


  피부 트러블의 흔적이 옅게 남은 뺨을 어루만진다.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흔적들이 많이 아물고 가라앉았다.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언제 또 생길지 모르는 일이다. 상처도 계절도 이와 같아서 이 겨울이 지나면 다시 또 봄이 올 것이다. 아마 그때쯤에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진 마음으로 봄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날들이 여전히 겨울일지 봄일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리움을 녹여줄 따뜻한 순간들로 매일의 삶을 채워가야지.


  이 시간들이 내게 남긴 분명한 교훈 하나.

  엄마가 떠나면 영영 봄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봄은 오더라-

     

작년 4월, 퇴원하던 날의 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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