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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May 10. 2021

다만 당신에게 한 줌의 반짝이라도 있었다면

유품을 정리하다가



  또 한 차례의 숨 가쁜 어버이날이 지나갔다. 공방을 차린 이후로 두 번째로 맞는 어버이날이다. 모든 업무를 혼자 하다 보니 어버이날이 다가오는 게 못내 긴장이 되어서 몇 주 전부터 초긴장 상태였다. 일주일 내내 거의 쉬지 못했고 어버이날 당일에는 밤을 새웠다. 어버이날 주간은 주문제작 케이크 업계의 연중 최대 성수기지만 작년 어버이날에는 엄마를 돌봐야 해서 주문을 몇 개 받지 못했었다.


  어버이날이라 엄마 생각이 많이 날 줄 알았는데, 바쁘니까 엄마 생각이 나지 않네...?라고 생각하자마자 생각이 너무 나서, 새벽 두 시에 체에 쌀가루를 내리다 말고 앞치마 자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움은 늘 방심한 순간에 찾아온다. 이제 좀 괜찮아졌나? 하는 생각은 마치 총잡이의 흔하디 흔한 사망플래그 같다. '... 해치웠나?'라고 읊조리는 순간 뒤에서 몇십 배쯤 되는 적이 나타나 뒤통수를 겨누는 일.  

  어버이날 영업을 무사히 마치고 공방 문을 닫고 나와서 이틀 동안 죽은 듯이 이불속에 파묻혀 잠을 잤다. 바빴던 기간이 끝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꿀 같은 휴일을 맞이한 오늘은 좋아하는 동네 맛집에 가서 혼자 점심을 먹었다. 패기롭게 점보 사이즈를 시켰는데 배가 너무 불러서 끝내 다 먹지 못하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일주일 동안 너무 바빠서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더니 그새 위가 작아진 모양이다. 터덜터덜 걸어 근처의 카페에 들어가 노트북을 켰다.


  그러니까, 혼자 카페에 온 게 얼마만이더라? 혼자 카페에 와서 이런저런 작업들을 하는 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상 중 하나였는데 엄마가 아픈 뒤로는 너무 사치스러운 일이 되어서 카페에 오지 못했다. 카페에서 글을 쓴 건 대학교 졸업작품을 쓰던 날 이후로 처음이다. 거의 3년 만의 일. 오랜 시간 불가능했던 일들이 가능해진 지금, 평소 같았으면 행복했어야 할 순간들의 온전한 행복을 조금은 잃어버린 것 같다. 엄마가 없는데 행복해도 되나? 싶은 서글픈 마음들이 자꾸 발목을 붙잡는다.

  치즈케이크를 포크로 허물어뜨리면서, 주문한 어버이날 케이크를 찾아가던 손님들의 행복한 표정을 떠올려 본다. 그 표정이 너무 부러웠다. 수십 송이의 카네이션을 만들고 수십 개의 '엄마 아빠 사랑해요' 글씨를 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정작 내 엄마에게는 아무런 어버이날 선물도 줄 수 없었다. 선물 준비하는 거 하나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자신 있는데 말이지.

  퍽 싱숭생숭한 어버이날이었다.




  



  카페에서 돌아와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던 일상들을 정리했다. 헝클어진 책상을 정돈하고, 아무렇게나 벗어둔 옷들을 제대로 걸고 나서 그동안 미뤄둔 일들 가운데 하나를 하기로 결정했다. 엄마의 몇 안 되는 유품을 정리하는 일.

  사실 정말 가짓수가 몇 개 안돼서 정리랄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흔적들을 모아 두기로 했다. 유품 정리함을 하나 살까도 생각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서 그만두었다. 대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라이언 바구니에 엄마의 흔적들을 담았다. 유품이라기엔 너무 민망할 정도로 물건이 몇 개 없었다. 작년 결혼기념일에 사 왔던 분홍색 안개꽃 다발, 입관예배 때의 순서지, 몇 안 되는 장신구, 엄마가 좋아했던 머리핀과 엄마의 환자 침대 머리맡에 늘 걸려 있었던 기도하는 천사 장식품, 엄마의 주민등록증.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온 카드 청구서도 고민하다가 바구니에 넣었다. 엄마의 계좌는 내가 관리했었는데 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공인인증서를 차마 삭제할 수가 없어 놔두었다가 어느 날 보니 저절로 없어져 있어서 그게 뭐라고 또 한참을 속이 상했었다. 대신 내 주거래 은행도 아닌 농협의 엄마 보안카드는 버리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버리지 않을 것 같다. 이것마저 버리면 엄마의 흔적이 점점 희미해질까 봐 겁이 난다. 엄마 생각이 나면 슬퍼지니까 이 감정들이 시간이 흘러 옅어지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희미해지지 않게 붙들어두고 싶은 이상한 양가감정들.


  초등학생이던 시절, 치매로 고생하다 돌아가신 친할머니와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곁에 앉아 있다가, 할머니가 손가락에 끼고 계시던 옥가락지 하나를 몰래 빼서 주머니에 넣었다. 할머니와는 딱히 각별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그냥 그런 물건이라도 하나 간직해 두고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경황이 없어서 그랬는지 어른들은 옥가락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도 아직 철없이 훔쳐낸 그 옥가락지를 볼 때 할머니 생각이 나는 걸 보면 아예 효과가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몇 가지 안 되는 엄마의 유품들을 보니 허탈해서 웃음이 났다. 몇 개 안 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엄마는 오래전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결혼반지를 팔았다고 했다. 우리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사주던 엄마였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 뭔가를 사는 일은 보지 못했다.

  억울함과 부아가 치밀어서 어딘지 더 남아있을지 모를 엄마의 물건들을 찾아 거실의 서랍들을 샅샅이 뒤졌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모조품임에 틀림없는 진주 목걸이와 엄마의 코트에 달려 있던 브로치를 간신히 찾아냈다. 반짝이는 것들이라곤 채 한 줌도 되지 않는다. 절반도 채 차지 않은 유품함에 평생 검소하고 소박했던 엄마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 같다. 언젠가 천국에서 만나는 날 나는 엄마한테 알이 엄청 크고 굵은 진짜 진주 목걸이를 선물해 줄 거야. 그동안 밀린 어버이날 선물로 말이지.



  마지막으로 한라봉 열쇠고리를 넣고 뚜껑을 닫았다. 엄마의 장례식 다음 날 떠났던 이별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 시간을 남겨놓고 싶어 제주공항에서 집어 온 녀석이다. 조그만 한라봉을 손에 쥐고 어루만졌다. 다만 당신에게 한 줌의 반짝이라도 더 있었다면 조금은 맘이 나아졌을까.

  그래도 괜찮아. 화려하게 반짝이진 않아도 이게 엄마고, 나는 그런 엄마를 사랑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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