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몰랐다.
나는 내 고향 김제가 예쁘다는 걸 알았던가.
그때도 지금도 보이는 건 다 논뿐이다. 텅 빈 논, 모 심은 논, 벼가 자라는 논, 벼가 익는 논, 다시 텅 빈 논, 그리고 눈 내린 평야. 그저 계절마다 다른 논만 볼 수 있는 곳.
들판에서 자라 보이는 게 지평선뿐이라 지평선을 보고 살았고, 지겹고 질려도 볼게 그 지평선 밖에 없었다. (지평선을 김제에서만 볼 수 있다는 건 김제를 떠나 살면서 알게 되었다) 지긋지긋하게 지겹다는 그 지겨움보다는 그게 지겨운 건지도 몰라서 아무것도 안보였다가 맞는 표현일 것 같다.
넓은 들에 집만 한채 덩그러니 서 있거나, 작은 마을 하나가 섬처럼 떠 있는 풍경이 낯설고 신비롭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느끼는 감정처럼 예쁘다거나 평화롭다거나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넓은 황금빛 들판, 초록과 황금사이의 들판을 바라보다 '혹시 이거 예쁜 건가?'라는 의심을 품어본 기억이 있다. 그때 그 감정을 의심할게 아니라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면 예쁜 거라는 소신이 있었더라면 나는 내 고향의 풍경을 좀 더 일찍 사랑했을지도 모르겠다. 눈이 소복이 내린 12월의 겨울날 교회 2층에서 크리스마스 전구를 달다가 내 눈앞에 펼쳐진 하얀 들판이 어느 핀란드 시골 마을 못지않게 예쁜 것 같아 한참 넋 놓고 논멍을 때린 기억이 있다. 그때 눈멍, 논멍 이런 단어가 있었더라면 그때의 나는 충분히 행복했으려나. 그때의 행복감을 삼십 년도 더 지나서 되새겨본다. 그때의 나는 그 경치가 특별하다거나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생각보다 오늘 10번 버스가 들어오나 안 오나 그게 더 궁금했을 것이다. 건조한 김제의 기후만큼 메마른 청소년기를 보낸 그때의 나는 내 고향이 예쁘다는 걸 몰랐다. 십대의 청소년에게는 뜨거운 햇빛과 광활한 대지가 주는 평화는 쓸데없었다.
어른이 되어 일 년에 서너 번만 찾아오는 고향이 된 김제의 초록색과 황금색이 다시 보였다.
예쁘다. 평화롭다. 광활하다. 고요하다. 뜨겁다. 풍요롭다. 그러나 여전히 가끔은 지겨운 들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