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앞에서, 미래를 기대하기

by 희량

정세랑 작가의 『목소리를 드릴게요』에 수록된 단편 「리셋」과 「7교시」는 새로운 세상을 묘사했다. 극단적인 사건으로 현재 사회가 붕괴한 이후에 새로 건설한 세상이다.「리셋」에서는 플라스틱을 먹는 거대 지렁이가 나타나 세상을 뒤집어 엎었고, 「7교시」에서는 '여섯 번째 대멸종'으로 인류의 3분의 1이 절멸했다. 두 사건의 원인은 현재 사회의 병폐다. 과잉생산과 과잉소비, 화석 연료 사용, 과도한 고기 섭취, 야생동물 멸종 등 인류의 욕심으로 나타난 각종 환경 문제가 그 원인이다. 현재의 문제의식을 통렬히 담고 있다. 사회가 붕괴할 정도로 거대한 사건을 겪은 인류는 그제서야 움직인다. 바꿔야 한다고 알고는 있지만, 직접적인(또는 극단적인) 계기가 있어야만 개혁을 시도했다. 소 백만 마리는 잃어야 외양간 수리를 시도하는 인간의 멍청함을 지적한다.


날카로운 풍자와 달리 결과는 이상적이다. 새로운 세상은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거대 지렁이가 석유 시추기지를 씹어먹고 플라스틱을 씹어먹은 덕분에 인간은 기존 사회의 문제점을 깊이 이해했다. 정신차린 인류는 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하고, 쓰레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자원 순환시스템을 구축했다. 축산업을 중단했으며, 동물은 기르지 않고 자유롭게 내버려두었다. 옷은 수선하거나, 재활용하거나, 버려진 페트병으로 제작했다. 사용하지도 않은 자원을 낭비하지 않았고, 필요한 만큼만 생산했다. 새로운 세상에서의 윤리는 현재와 같은 개념이 아니었다. 수요보다 많이 생산하고, 제품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않고 낭비하는 것은 불쾌한 일이었다. 인간의 울타리 안에 동물을 키우고, 먹고, 입는 것은 역겨운 일이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굉장히 이상적인 나머지 비현실적이었다. 과연 실현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던 건 윤리관이 발전한 세상을 보면서 느낄 수 있는 희망 때문이었다. 작가는 우리가 19, 20세기의 폭력을 역겨워하는 것처럼 23세기의 사람들이 우리를 역겨워할까봐 두렵다고 했다. 하지만 23세기의 사람들이 21세기의 윤리를 역겨워한다는 것은, 그들이 우리보다 진보한 윤리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니 희망적이다. 우리는 지금도 점점 차별, 혐오, 불평등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켜가고 있고, 미래에 지금보다 훨씬 윤리관을 완성시킬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많이 진보해왔다. 기술뿐만이 아니라 가치 측면에서도. 패션으로 살펴보자. 패션은 시대의 가치를 대변하는 특성이 있다. 16세기에는 귀족과 평민을 가르는 신분의 상징으로 표현되었고, 산업혁명 이후 19세기에는 경제적 부를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현재 패션의 의미에 대해 물어보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개성의 표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지금은 개인이 스스로에 대해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고 중요해진 시대다. 즉, 민주주의의 시대라는 것이 패션으로부터 똑똑히 드러난다.


이러한 개인의 시대를 맞이하기까지 많은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다. 평등한 투표와 교육과 같은 현재의 당연한 가치도 투쟁의 결과였다. 오랫동안 불의에 저항하고, 비윤리를 지적해온 결과다. 목숨 걸고 투쟁해서 독립을 이뤘고, 민주주의를 이뤘다. 민주주의뿐만이 아니다. 한동안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한창이었다. 드라마에서는 여성 연대가 가득하고, 점점 차별과 혐오에 대한 문제의식이 뚜렷해진다. 드라마 <마인>에서는 흔히들 기싸움으로 점철되기 마련인 재벌가 동서지간을 아주 협력적이고 끈끈한 우정으로 표현했다. 요즘 내 또래들 사이에서는 대놓고 외모 지적을 하거나, 동성애 비하 발언 등의 무심한 표현에 예민하다. 우리는 인종차별, 성차별 등등 각종 불합리에 대해 외쳤다.


이제는 기업도 사회와 환경을 챙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꾸준히 논의가 발전되어 왔고, ESG경영이 주목 받으며 중요도가 더욱 높아졌다. 사회와 환경,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챙길 수 있는 튼튼한 지배구조까지 갖춘 기업이 요구되면서 좀 더 실질적인 변화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사회공헌 프로젝트가 전부였던 과거보다 사회, 환경, 거버넌스라는 분명한 목표와 범위가 설정된 단계로 발전했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것도 맞지만, 많이 걸어오기도 했다. 인간의 인간다운 힘은 위기 앞에서 빛을 발할 것이고,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서로 뭉치고 함께 힘써서 얻어낸 결과는 강인하고도 따뜻할 것이다.


나는 모두가 함께 마주친 기후변화라는 위기를 앞두고 끊임없이 발전할 것을 기대한다. 나는 기대할 수 있는 미래가 있다고 믿는다.






*Yuniya Kawamura, 『Fashion-ology』Bloomsbury, 2018

*커버이미지 Jordan Wozniak,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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