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세월호 침몰 사고가 있었다. 나는 생일이 빨라서 학교에 빨리 입학했으니, 세월호 피해 학생들은 나와 동갑이었다. 한창 열심히 공부하던 그 때, 나와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겪은 그 사고는 참 충격적이었다. 며칠 내내 통학 버스에 타서 창밖을 바라보며 그 사고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그 아이들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지, 죽음이란 뭔지, 나는 죽음이란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리고 열심히 공부만 해야 하는 지금 이 시기가 덧없게 느껴졌고,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삶의 목적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행복이어야 할 것 같았다. 저 멀리 아프리카에 태어난 아이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행복이어야 했다. 그렇게 누구에게나 주어진 이 삶이 공평하지 않아도 공평했으면 했다.
그때 내렸던 결론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행복이었다. 당시엔 남자친구가 없었으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그리고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이 내가 최고의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시간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매일 아침 멀리 출근한 아빠한테 사랑한다고 문자를 보냈었고, 엄마아빠한테 뽀뽀도 서슴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는 절대 공부하지 않고 친구들과 아주 재밌게 어울려 놀았다. 이것이 낭랑 18세의 인생관이었다.
7년이 지난 지금, 난 여전히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삶에 별표를 잔뜩 친다. 학교나 회사 등 인간에 환멸을 느낄 만한 일들은 많고, 이게 항상 해결책이 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강조하고 싶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동물인 건 변함 없으니까.
한동안 유행한 명대사가 있다.
뭣이 중헌디 - <곡성>
이 영화를 보진 않았는데, 유행한 맥락은 명확하다. 먹고 살기 바쁜 삶에 치인 나머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를 잊지 말자는 거다. 같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들. 사랑, 우정, 생명, 윤리 그런 것들. 뻔하지만 뻔해도 중요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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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했다. 세상은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고, 우리는 사람을 보고 살아간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해보면, 우리는 사람을 보기 전에 돈을 보고 경제를 보고 문명의 이기를 본다. 대학교 졸업생 커뮤니티에 가끔 들어가보는데, 얼마 전에는 결혼에 대한 문제로 시끄럽더라. 연인의 경제적 수준 차이로 인해 결혼이 고민된다는 글 때문이었다. 글쓴이는 부유했고, 애인은 가난했다. 애인은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애인과 결혼했을 때 글쓴이가 현재 누리고 사는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망설여진다고 하더라.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사랑으로 결혼했다 돈 때문에 고생하는 지인의 이야기를 곁들여가며, 결혼은 현실이라고 외쳤다.
정말 그럴까? 고민이 됐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고 싶다는 바람만으로는 이 시대에서 살아가기 힘든 것일까? 집값과 강도높은 업무환경, 갈수록 심각해지는 소득불평등... 돈을 따져야만 하는 이유는 많다. 하지만 내 행복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그건 물질이 아니라 마음에 있었다. 사고 싶은 물건을 실컷 사는 것보단, 가성비만 따지는 쇼핑이더래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에 있었다. 물론 내가 최소한의 의식주 걱정은 없을 정도의 경제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수도 있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와중에 현재의 만족을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은 내 주변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결핍을 경험한다. 돈이든, 애정이든, 누군가의 이해, 위로 등등 무엇이든 결핍을 경험할 수 있다. 결핍은 분노와 폭력을 불러온다. 경제적으로 부족한 사람은 돈 앞에서 쉽게 화가 나고 싸우게 될 것이고, 권력에 상처입은 사람은 권력 앞에서 불만과 분노가 가득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내 결핍을 한 가지 꼽아보자면 서울에 집이 없다는 것. 서울살이 7년차인데, 7년동안 8번 집을 옮겼다. 잔뜩 오른 집값과 거지 같은 집 상태에 화가 잔뜩 났다. 서울에 집도 없는 나 자신과, 서울 부동산 시장이 이따위 상태가 되도록 만든 누군가에게.
하지만 아낌없이 응원해주고 지원해주시는 부모님과 피곤한 줄도 모르고 도와주는 남자친구, 관심 갖고 물어봐주는 친구들 덕분에 화를 잠재울 수 있었다. 어느 정도의 권력과 경제의 불평등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우리가 당장 해결하기는 힘든 문제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한 분노는 사랑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뻔한 소리 같지만,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고 화내는 순간이 내 슬픔과 분노를 살며시 풀어줄 때면 그 뻔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게 된다. 만약 결핍이 폭력으로 연결된다면, 애정으로 채워줄 수 있다고.
지하철에서 난동을 부린 사람을 꼭 안아주어 진정시킨 청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 중년 남성이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출동한 경찰도 어쩌지 못해 난감해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한 청년이 남성에게 다가가 꼭 끌어안은 것이다. 분노에 찬 목소리는 잦아들었고, 상황은 해결되었다. 사람의 온기가 가진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나보고 똑같이 하라 하면 무서워서 못할 것 같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여지는 거칠고 폭력적인 모습 너머에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기억해야 할 것 같았다. 힘에 힘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햇살로 맞서는 방법을 기억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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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안녕을 강화하는 것으로 증명된 다섯 가지 활동이 있다.*
주변과 관계 맺기
몸을 활발히 움직이기
세상에 주목하기
새로운 기술 배우기
주위에 베풀기
함께 산다는 걸 기억하고, 신체와 뇌를 충분히 움직이며 사는 것이 우리의 안녕한 삶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함께 산다는 건, 서로 주고 받는 애정과 도움에서 힘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하지만 어렵다. 나도 옆집 사는 분들과 인사도 안 하는 개인주의적인 애라, 어렵다. 어렵지만, 적어도 누군가 도움을 청했을 때 무시하지는 않을 자신은 있다.
이전에 기후변화가 촉발시킬 수 있는 폭력성을 언급했다. 우리가 마주한 위기가 폭력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불안정한 사회를 걱정했다. 그래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평소에 잘 챙기고 있는 거다. 경기가 안 좋으니 돈을 둘러싼 스트레스가 매서워지겠지만,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까지 포기하진 말자는 거다. 안정적인 애정장벽을 세우는 건 위기 상황에 견고한 힘이 될 거다. 폭력성은 애정이 달래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나는 세상 모든 사람과 친구 맺고 잘 지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못된 사람도 분명히 있고,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이유 없이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내가 누군가 혹은 어떤 것으로 인해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나고 힘들 때, 그게 엉뚱한 곳으로 튀지 않도록 다듬어줄 수 있는 애정 어린 손길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뭣이 중한지, 잊지 않고 챙기며 살자.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이 충만해질 때, 큰 위기도 탈 없이 지나가볼 수 있을 것이다.
*김상기, "'포옹으로~' 당산역 취객 제압한 청년 영상에 울컥", 국민일보, 2019.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