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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ㅁㅈ Nov 11. 2024

생활 포지셔닝_자영업 편

일상에서도 포지셔닝이 필요합니다 04.

한국은 유난히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은 나라 중 하나이다. 지난 통계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의 약 20%에 달하는 비중으로 OECD 국가 중에서도 상위권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자영업이라고 하면 역시 카페일 것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인구 100만 명당 카페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 실제로 번화가나 작은 동네까지 점령한 카페들을 보면 카페 자영업 시장이 얼마나 치열한 지 알 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카페 자영업의 3년 이내 폐업률은 70%에 달한다고 한다. 살아남은 카페와 사라지는 카페, 무엇이 둘의 생존을 가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내세울 만한 특장점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쌀로 밥 짓는 당연한 소리 아니겠냐 싶겠지만 70%의 폐업률을 보면 생각보다 그런 특장점을 만들어내지 못한 곳이 많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 카페의 특장점은 무엇이 있을까?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카페들을 분석함으로써 카페가 가져갈 수 있는 특장점에 대해 해보고자 한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작은 골목 상권이 있는데, 합쳐서 2km가 채 되지 않을 이 작은 상권에 카페 공화국답게 2개의 프랜차이즈를 포함하여 총 6개의 카페가 있다. 내가 이 동네를 산 지 벌써 3년이 되었고, 폐업률 통계에 비춰보면 어느 하나가 사라졌을 법도 한데, 각자가 성행하고 있다. 그게 너무 신기해서 6개의 카페를 하나씩 뜯어봤다.


1) 저가커피의 전성시대

저가 커피 5사의 매출 추이 (출처: 모바일인덱스)


고물가 고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저가 커피 브랜드들의 매출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 커피 프랜차이즈의 넘버원은 메가 커피(매장수 기준)와 컴포즈 커피(영업이익률 기준)라고 한다. 요즘엔 지방에 내려가도 읍내에서 흔하게 두 카페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두 브랜드는 맥도널드와 버거킹의 관계가 생각날 만큼 서로 같은 상권에서 경쟁하고 있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이 동네도 예외는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대로변에 두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나란히 위치해 있다. 저가 커피 브랜드의 포지션을 공유하고 경쟁하고 있는 두 브랜드답게 눈에 잘 띄는 위치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영업하고 있고, 성업하고 있다. 불경기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둘의 성업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 그래도 역시 카페는 분. 좋. 카

한 때 SNS와 커뮤니티 등을 통해 진짜 커피, 가짜 커피 밈이 유행한 적이 있다. 가짜 커피는 직장인이 평일에 회사 근처에서 카페인 충전을 위해 마시는 커피이고, 진짜 커피는 주말에 카페에서 편안하게 즐기는 커피를 이야기한다. 


회사 밖에서, 주말인 것도 중요하지만 더 좋은 건 예쁜 인테리어, 예쁜 디저트로 분위기를 만들어 낸 카페여야 한다.

개인이 운영하는 우리 동네의 C 카페가 그렇다. 독특한 인테리어와 수제 디저트로 방송에도 두어 차례 나온 이 카페는 주말만 되면 사람이 가득 찬다. 안개나무가 핀 뒷마당에서 내리쬐는 햇살에 광합성하면서 디저트와 함께 즐기는 커피는 동네 사람들 뿐만 아니라 타지 사람들에게까지 사랑받고 있다.


3) 평일엔 카공족, 주말엔 교인들을 위한 공간

교회 바로 앞에 위치한 2층 D 카페는 다인 고객을 위한 널찍한 테이블과 1인 고객을 위한 편안한 자리를 동시에 제공한다. 넓은 공간으로 쾌적함을 주는 이 카페는 평일에는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동네의 1인 고객들과 카공족들이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되고, 주말에는 바로 옆에 있는 교회 교인들의 사랑방이 되고 있다. 


그 덕분인지 평일이든 주말이든 이 동네에 이렇게 사람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꽉 차 있는 좌석을 보여주고 있으며, 평일엔 스터디 카페 같은 조용함을, 주말엔 하하 호호 수다 소리를 들려주는 두 얼굴의 모습을 가진 카페가 되었다.


4) 커피는 전문성

E 카페는 다섯 자리 밖에 되지 않고, 의자도 불편하고, 이용 시간도 최대 두 시간으로 제한되고 있다. 이런 조건들을 보면 금방 사라질 법도 한데, 최근 6주년을 맞이했다. 무엇이 이 작고 불편한 카페를 이 골목의 터줏대감으로 만들었을까 하고 보니, 이 카페는 전문성으로 승부한다. 남미부터 케냐, 심지어 인도네시아 같은 아시아 지역까지 다양한 지역의 원두는 물론, 에스프레소 / 핸드드립 / 융드립 / 사이폰까지 커피를 내리는 방식까지 고를 수 있다. 원두별로 적합한 최적의 로스팅으로 제공하는 것은 물론, 최근엔 지역 상생 프로그램을 통해 가정 로스팅까지 강의할 정도로 돋보이는 전문성으로 승부하고 있다. 특히나 커피를 좋아하는 필자의 최애 카페이기도 하다.


5) 수요 있는 저 세상 컨셉

마지막으로 소개할 F카페는 이게 대체 무슨 컨셉일까 싶은 저 세상 컨셉은 마이너 취향의 고객들의 성지가 되었다. 회전초밥을 연상케 하는 1층부터, SAMSUNG 대신 GAMSUNG을 적어두고, 카페라면 절대 고르지 않을 블루 라이트로 조명을 채운 2층의 인테리어, 은은한 광기가 돋보이는 베이커리 디테일까지, 수요가 공급을 만든 건지, 공급이 수요를 만든 건지 헷갈리게 만드는 MZ 감성의 카페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말만 되면 이 동네에서 보기 어려운 패션을 한 20대의 남녀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6개의 카페를 정리해 보면, 서로 겹치지 않고 각자의 강점으로 명확히 나눠진 포지션이 겹치지 않는 수요를 각각 끌어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프랜차이즈인 두 브랜드를 제외하고, 각 카페의 사장님들이 모두 포지셔닝 전략에 입각하여 상권을 분석하고 저마다의 강점을 정한 건 지는 알 수 없다. 그보다는 각자가 자신이 잘하는 것에 집중했고, 운이 좋게 다른 카페들과 겹치지 않아서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게 선택이 분산되었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새로운 카페가 이 골목에 들어온다면 어떨까? 이미 저가부터 전문성, 저 세상 컨셉까지 좁은 골목을 가득 자리 잡은 카페의 강점들과 겹치지 않는 또 다른 강점을 연구해서 와야 살아남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꼭 카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카페도, 라멘도, 돈카츠도, 꽃집도, 주변 상권 내에서 남들과 다르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각자만의 강점을 가지고 있고, 그 강점을 소비자들에게 인식시킬 수 있다면 좁은 골목의 경쟁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나만의 강점이 꼭 압도적일 필요도, 전국구일 필요도 없다. 주변의 다른 곳과 유의미한 차이가 있고, 상권의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이면 충분하다. 


자영업도 포지셔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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